우리가 모르는 한국의 美, 파리는 무엇을 발견했나?

3 weeks ago 17

에펠탑이 바라보이는 파리 16구의 이나 광장(Place d’Iéna)과 마주한 곳. 유럽 최대 아시아 예술의 보고인 국립 기메 동양 박물관 외벽에 한글 현수막이 걸렸다. ‘2026년’이라는 선명한 시각적 선언은 한·불 수교 140주년을 맞아 박물관의 연간 프로그램을 한국 콘텐츠로 채우겠다는 신호탄이다. 이 거대한 서사의 첫 페이지는 ‘K-뷰티’에 할애되었다. 18세기 규방의 풍경부터 아이돌들의 무결점 비주얼까지 하나의 정교한 궤적으로 엮어낸 이번 전시는 오히려 우리 안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과연, 프랑스인들이 조명한 한국의 아름다움이란 무엇일까?

Kim Insoong, Femme, 1966, Collection of National Museum of Modern and Contemporary Art Korea, Courtesy of the Artist Family

Kim Insoong, Femme, 1966, Collection of National Museum of Modern and Contemporary Art Korea, Courtesy of the Artist Family

‘완전한, 한국(K-ompletely Korea!)’ 시즌 개막

국립 기메 동양 박물관(Guimet Musée National des Arts Asiatiques)은 이집트와 아시아 유물 수집가인 에밀 기메(Émile Guimet)가 1889년 설립했으며, 개장 초기인 1893년 한국관을 개관했다. 그 어느 때보다도 풍성하게 준비된 이 특별 시즌은 한국인의 삶을 관통해 온 통시적이고 다면적인 흐름을 짚어내는 방대한 파노라마다. 이를 위해 국립중앙박물관, 국립현대미술관, 국립고궁박물관, 코리아나 화장박물관, 국립경주박물관은 물론이고, 런던 빅토리아 앨버트 박물관, 세르누치 파리 시립 아시아 예술 박물관과 샤넬 패트리모니 등 국내외 기관들이 긴밀하게 협업했다. 여기에, 주프랑스한국문화원도 주요 파트너십의 가교 역할을 자처하며 기념비적 프로젝트의 성사에 기여했다.

첫 전시 ‘K-뷰티 한국의 미. 하나의 현상이 되기까지(K-Beauty. Beauté coréenne, histoire d’un phénomène)’는 3월 18일부터 7월 6일까지 박물관 2층에서 진행된다. 기메 박물관의 클레르 베티넬리(Claire Bettinelli)와 클레르 트랭케-솔레리(Claire Trinquet-Solery)가 공동 큐레이팅한 K-뷰티는 18세기 회화에서 동시대 시각문화에 이르기까지 한국인의 정체성을 형성해 온 미적 코드를 입체적으로 해부한다.

전시는 크게 네 가지 섹션으로 나뉜다. 그 첫 번째, ‘조선의 미’에서 본 신윤복의 붓끝에서는 욕망을 지닌 능동적 주체이자 우아한 존재로 격상된 조선 후기 여성들의 모습이 생생하게 펼쳐진다. 특히 남녀 공용 공간에서 자유롭게 활동하던 기생을 모티프로 한 짙은 화장과 화려한 가체, 다채로운 복식은 당대 파격적인 미의 기준을 대변한다. 전통의 맥은 한복 디자이너 이영희의 작품을 통해 현대적인 미감과 조우하며, 아름다움의 영속성을 잘 보여준다. 나아가 조선 시대 관료의 초상화나 노리개, 탕건 같은 과거의 요소들은 현대 사진, 영화, 웹툰 이미지와 병치되어, 시대와 매체를 넘나들며 끊임없이 변주하는 한국의 미를 목도하게 한다.

신윤복의 '거문고 줄 고르는 여인', Album de scènes de genre - desoksu - Musée national de Corée

신윤복의 '거문고 줄 고르는 여인', Album de scènes de genre - desoksu - Musée national de Corée

두 번째 섹션 ‘화장품과 처방: 돌봄의 기술’에서는 오늘날 전 세계가 주목하는 한국의 다단계 스킨케어 루틴의 기원을 확인할 수 있다. 관람객은 전시를 통해 이 세심한 관리법이 신체를 부모가 물려준 소중한 자산으로 여긴 효 사상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15세기 왕실 교육서에 따르면, 몸단장은 내면의 덕목을 가꾸는 수양의 과정이었다. 이러한 미적 가치관은 동의보감에 기록된 천연 약재 제조법과 연결되며, 미용과 건강의 밀접한 상관관계를 입증한다. 조선 사회에서 맑은 피부와 머릿결은 신분의 지표였는데, 이는 여전히 유효하다. 경건한 의식을 위해 사용된 탁상용 거울, 나전과 백자로 빚은 분합, 섬세하게 세공된 족집게와 같은 도구들이 마치 장식적 오브제처럼 귀하게 느껴진다. 요즘 전 세계인이 공유하는 K-뷰티 산업에 앞서, 작고 화려하지만 소박하고 탐미적인 순간들이 있었음을 나지막이 일깨운다.

[좌] 19세기에 사용된 거울 [우] 대한제국의 매화 문양이 장식된 은제 분통 / 사진. © 코리아나 화장박물관

[좌] 19세기에 사용된 거울 [우] 대한제국의 매화 문양이 장식된 은제 분통 / 사진. © 코리아나 화장박물관

세 번째, ‘긴장 속의 아름다움, 변화하는 시선’은 격동의 20세기가 불러온 미적 규범의 충돌과 변혁을 다룬다. 기메 박물관의 루이 마랭 기금(Le fonds Louis Marin) 기록물들과 더불어 19세기에 등장한 사진관의 초상화들은 구한말 한국인들의 자화상을 증언한다. 전통 복식을 갖춰 입고 유럽 부르주아풍 소품을 활용한 모습에서 미묘한 긴장감이 전해진다. 외세의 지배와 서구 문물의 유입, 그리고 1920년대, 소년처럼 짧은 머리와 직선적인 실루엣의 가르손(Garçonne) 스타일의 영향을 받은 신여성들은 긴 머리를 자르며 구시대적인 가치관에 도전했다. 한국전쟁 이후 밀려든 미국 문화의 파고 속에서 전통과 서구적 면모가 혼재하게 되었는데, 이는 1956년 개봉된 영화 자유부인이나 양산을 든 채 한복과 양장 차림으로 거리를 거니는 여성들을 포착한 한영수 사진가의 1958년 작 ‘명동’에서도 볼 수 있다. 또,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의 소장품인 김인승 화백의 1966년 작 ‘청(Listening)’에서는 달항아리와 고가구, 레코드플레이어가 놓인 배경 앞에 서양식 단발머리와 의상을 한 젊은 여성을 묘사하며, 독자적인 정체성을 정립했다.

[좌] 김인승, 청(Listening), 1966,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소장, Courtesy of the Artist Family [우] 한영수, (Myeongdong), Seoul, Korea, 1958 / 사진. © Han Youngsoo Foundation

[좌] 김인승, 청(Listening), 1966,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소장, Courtesy of the Artist Family [우] 한영수, (Myeongdong), Seoul, Korea, 1958 / 사진. © Han Youngsoo Foundation

피날레를 장식하는 네 번째 섹션, ‘한국의 미에서 K-뷰티로’에 들어서면 ‘한류’ 열풍의 변천사를 체감하게 된다. 1990년대 말 아시아 금융 위기를 기점으로 급성장한 한류의 위상은 2010년대에 이르러 ‘K-’라는 강력한 브랜드 자산으로 진화했다. 이 접두사는 이제 독보적인 권위를 획득하며 세계적 현상을 견인하고 있다. 달항아리나 매병의 유려한 곡선을 화장품 용기에 담아내려던 브랜드들의 시도들과 부드러운 남성성을 뜻하는 꽃미남의 등장, 완벽하게 관리된 신체에 대한 갈망은 현재에도 화두다. 전시는 단순히 화려한 성공만을 비추지 않는다. 무결점 피부와 정형화된 미를 향한 열망 이면의 그림자로, 사회적 인정을 받기 위한 강박적인 외모 지상주의와 성형 문화라는 논쟁적 현실까지도 담아낸다. 마지막 공간에서는 아이돌과 배우를 홍보대사로 내세운 거대한 문화를 대변하는 각종 굿즈와 응원봉들을 마주하게 되는데, 이제 K-뷰티가 화장품 산업에 머물지 않고 K-팝과 결합한 하나의 라이프스타일임을 공고히 하며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달항아리를 모티프로 한 화장품 케이스 디자인 / 사진. © musée Guimet, photo Dmitry Kostyukov

달항아리를 모티프로 한 화장품 케이스 디자인 / 사진. © musée Guimet, photo Dmitry Kostyukov

'K-뷰티 한국의 미. 하나의 현상이 되기까지' 전시 전경 / 사진. © musée Guimet, photo Dmitry Kostyukov

'K-뷰티 한국의 미. 하나의 현상이 되기까지' 전시 전경 / 사진. © musée Guimet, photo Dmitry Kostyukov

한편, 오는 4월부터 박물관 외벽에 이슬기 작가의 대형 설치물 ‘달다리. 달과 다리(DAL DARI. La Lune et les Jambes)’가 관람객을 맞이할 예정이다. 전시명은 정월대보름에 자기 나이대로 다리(橋)를 밟으면 그해에는 다리(脚)에 병이 나지 않는다는 신앙적인 풍속 ‘다리밟기’에서 착안했다. 큐레이터는 기메 박물관의 현대 미술 프로젝트 매니저인 세실 다조르(Cécile Dazord)가 맡았다. ‘신라, 황금과 신성. 한국의 왕실 보물(Silla: l’Or et le Sacré. Trésors royaux de Corée, 기원전 57년~서기 935년)’ 전은 5월 20일부터 8월 31일까지 열린다. 기메 박물관의 한국·고대 중국 컬렉션 큐레이터인 아르노 베르트랑(Arnaud Bertrand) 박사와 국립경주박물관 부큐레이터 윤서경이 공동 기획했으며, 해외에서 최초로 선보이는 국보를 포함해 대표 유물들이 한자리에 모인다.

마지막으로, 9월 16일부터 2027년 1월 4일까지 예정된 ‘환영의 캐비닛. 트롱프뢰유의 지식, 한국(Le cabinet des illusions. Savoirs en trompe-l’œil, Corée,18세기-20세기)’은 정조 시대의 ‘책거리’를 당대의 지적 열망이 응축된 독보적인 시각 양식으로 재조명한다. 서구의 트롱프뢰유(눈속임 기법)를 주체적으로 수용해 탄생한 이 화풍은 당시 조선이 외부 세계와 미학적 교류를 적극적으로 이어갔음을 상징한다.

국립 기메 동양 박물관 관장 야닉 린츠와의 인터뷰

▷올해 선보이는 전시는 그 규모부터 압도적입니다. 단순히 수교 140주년을 기념하는 차원을 넘어, 2026년을 한국 문화에 헌신하는 ‘완전한, 한국!’ 시즌을 기획하게 된 계기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지난 10년간 한국 문화는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프랑스인들의 일상에 깊숙이 스며들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뜨거운 애정과는 별개로, 우리가 한국의 내면을 온전히 알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습니다. 그간 박물관이라는 학술적 공간에서 한국은 이웃 나라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조명이 적었으며, 그 유구한 역사의 층위 또한 대중에게는 다소 생소한 영역이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훌륭한 한국 컬렉션을 보유한 기메 박물관은 이 지점에서 깊은 책임감을 느꼈습니다. 이번 시즌에서 한국 미학의 다층적인 면모를 심도 있게 펼쳐 보이는 것이야말로 양국의 우정을 기리는 가장 좋은 방식이라고 판단했습니다."

국립 기메 동양 박물관 관장 야닉 린츠 / 사진. ⓒDorian Prost

국립 기메 동양 박물관 관장 야닉 린츠 / 사진. ⓒDorian Prost

▷세 가지 전시의 주제를 ‘K-뷰티, 신라, 책거리’로 선정하신 배경이 궁금합니다. 특히 해외에서 최초로 공개되는 신라의 국보급 유물들이 포함되어 있어 기대되는데요?
"우리의 목표는 방문객, 그중에서도 새로운 세대에게 한국의 동시대적 감각이 유구한 예술적 전통과 어떻게 유기적으로 맞닿아 있는지를 일깨우는 것입니다. 신라와 책거리 전시는 그간 서구 사회에 단편적으로만 알려졌던 한국 미술사의 심연을 보여줄 것입니다. 무엇보다 국립경주박물관의 협조 아래 해외 반출이 극히 드문 걸작들을 한자리에 모을 수 있어 영광입니다. 찬란한 과거를 돌아보는 여정은 한국의 풍요로운 역사와 현대의 역동성을 단일의 연속된 흐름으로 이해하는 데 소중한 계기가 될 것입니다."

▷앞서 말씀하신 것처럼, 완성도 높은 전시를 위해 국내외 주요 기관과의 유기적인 협력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가장 심혈을 기울이신 대목은 무엇인가요?
"기메 박물관은 유럽 내 최대 규모이자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아시아 미술 컬렉션을 보유한 선도적 기관으로서, 늘 최고 수준의 작품을 엄선하고 그 가치를 전하는 데 전력을 다해 왔습니다. 한국 관계자분들은 학술적 깊이와 대중적 확산력을 동시에 확보하고자 하는 진정성에 깊이 공감해 주셨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경의를 전합니다."

로툰다에 걸린 김홍도의 작품 / 사진. © musée Guimet, photo Dmitry Kostyukov

로툰다에 걸린 김홍도의 작품 / 사진. © musée Guimet, photo Dmitry Kostyukov

▷프레스 프리뷰를 통해 전시를 둘러보며 한국인인 저조차 알지 못했던 서사나 향수를 자극하는 전시품을 보게 됩니다. 기획 과정에서 관장님이 가졌던 기존의 인식을 완전히 뒤바꿔 놓을 만큼 경이로웠던 유산이나 기억에 남는 일화가 있다면 소개해 주시겠습니까?
"박물관 소장품 중 신라 시대 금동관, 삼국 시대의 반가사유상, 그리고 고려 시대의 관세음보살상이 떠오릅니다. 개인적으로는 2019년 기증받은 이영희 컬렉션에 각별한 애정을 느낍니다. 고 이영희 디자이너의 한복뿐만 아니라 창작의 원천이 된 고풍스러운 복식과 장신구들까지도 말입니다. 특히 전통의 엄격한 형식을 세련된 현대적 패션 언어로 치환해낸 그녀의 통찰이 놀랍습니다. 실제로 한국을 방문했을 때, 젊은 세대들이 색다른 추억을 남기기 위해 한복을 입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한복 디자이너 이영희의 작품 / 사진. © Maison de LEE YOUNG HEE

한복 디자이너 이영희의 작품 / 사진. © Maison de LEE YOUNG HEE

▷그렇다면, 관장님의 개인적인 취향을 반영해, 자택에 두고 싶을 만큼 매료된 ‘단 하나의 작품’을 고르신다면요?
"저는 책거리 병풍에 매료되어 있습니다. 사실 최근에 아주 특별한 병풍 한 점을 소장하게 되었고요. 이상적인 서재의 풍경을 그려 넣어 일상의 장식적인 요소로 활용한다는 개념이 참으로 매력적입니다. 언젠가 소유하고 싶은 진귀한 수집품들을 모아 자신만의 경이로운 캐비닛을 재현한다는 철학적인 아이디어는 예술적 상상력을 자극하는 정수라고 생각합니다."

▷관장님이 책거리에서 발견하신 지적 유희처럼, 본 전시가 프랑스 대중에게 한국을 트렌디한 팝 문화의 발신지를 넘어, 깊이 있는 미학을 간직한 국가로 각인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을까요?
"물론입니다. 그것이 바로 제가 이번 시즌에서 지향하는 궁극적인 지점이기도 하니까요. 2022년 취임 이후 저는 격년으로 특정 국가에 집중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해 오고 있습니다. 2024년 중국 시즌이 역대 최다 관람객 기록을 경신했다면, 올해 한국 시즌은 그 이상의 성취를 거둘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전시 외에도 영화 상영, 강연, 워크숍, 나아가 판소리 공연과 콘서트, 추석 행사까지, 2026년에는 기메 박물관 전체가 한국의 활기찬 에너지로 가득 찰 것입니다."

'K-뷰티 한국의 미. 하나의 현상이 되기까지' 전시 전경 / 사진. © musée Guimet, photo Dmitry Kostyukov

'K-뷰티 한국의 미. 하나의 현상이 되기까지' 전시 전경 / 사진. © musée Guimet, photo Dmitry Kostyukov

파리=유승주 아르떼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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