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각색-제작 허평강 감독
“아날로그 작업 고수, 원작에 감성 더했죠”

“소피,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까.”
김초엽 소설가의 팬이라면, 낯익은 문장일 것이다. 그의 첫 소설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의 수록작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에 나오는 글귀다.
3일 이 소설을 바탕으로 한 동명의 애니메이션이 개봉했다. 메가폰을 잡은 이는 허평강 감독(44·사진). 국내에선 아직 생소한 이 연출가를 2일 서울 중구의 한 사무실에서 만났다.
그가 책을 접한 건 2019년 제작사 추천이었다고. 7개의 단편 중 ‘순례자들…’이 유독 눈에 띄었다. 시초지에서 고향 행성으로 돌아오지 않는 순례자들을 다룬 단편을 읽으며 허 감독의 머릿속엔 다채로운 이미지가 떠올랐다.이듬해 김 작가와 애니메이션 판권 계약을 맺고 제작에 돌입했다. 허 감독은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동안 ‘대’ 김초엽 작가님이 되셨다”면서도 “이 점을 의식했다면 과감한 도전은 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영화는 원작의 큰 설정들을 대범하게 변주한다. 일례로 원작에서 소피는 편지를 받는 수신자에 그치지만, 영화에선 행성의 규칙에 의문을 갖고 시초지로 향하는 적극적인 캐릭터로 탈바꿈한다. 허 감독은 “원작을 읽으며 ‘소피가 누구이길래 데이지가 이런 편지를 남긴 걸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고 했다. 영화는 데이지와 소피의 관계성을 추가하며 감성적인 터치를 더했다.
허 감독이 그에게 주문한 건 딱 두 가지였다. “너무 예쁘지 않을 것”, 그리고 “대신 그들의 결핍이 보면 볼수록 사랑스러울 것”. 허 감독은 “핸디캡이 있는 유전자를 갖고 태어난 소녀들의 이야기이기에 완벽하진 않아도 사랑스러운 캐릭터를 원했다”고 말했다.
‘데스노트’, ‘명탐정 코난’ 등을 연출하며 일본 콘텐츠 산업에 깊숙이 몸담았던 허 감독은 이 영화가 한국에서 첫 메가폰을 잡은 작품이다. 그에게 한국 콘텐츠 시장은 어떤 매력으로 다가올까.
“일본은 실패하지 않는 게 중요해요. 드라마만 봐도 원작 판매 부수에 따라 영상화가 결정되죠. 그래서 프로듀서와 배우의 ‘촉’을 믿고 도전하는 한국 시장만의 매력을 느낍니다.”
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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