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피가 흐르는 여당 출신 의장”
사람은 누구나 사적 동기로 움직인다. 그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동기가 어떻든 공익에 기여할 수 있다. 그런 메커니즘으로 설명하기 좋은 직업이 정치인이다. 다만 은밀한 동기는 잘 감춰 둬야 한다. 정치를 한다면 꿈꾸는 두 종착지, 대통령과 국회의장이 특히 그렇다. 우 의장이 ‘그 이상’을 바라며 계엄 직후 얻은 명성을 사유화한다는 논란에 휩싸였던 것도 이 때문이다. 의장이 그 이상을 위해 뭔가를 한다고? 국민에게는 이물감이 느껴질 일이다.
이재명 대통령 정무특보를 지낸 조정식 의원이 22대 국회 후반기를 책임지게 됐다. 형식적인 본회의 선출 과정만 남았다. 당내 의장 후보 경선 과정에서 조 의원은 우려를 불렀다. “민주당의 파란 피가 흐르는 집권 여당 출신” “의장이 컨트롤타워가 돼 정부의 입법 속도전을 견인” “협치보다는 속도” 등으로 여당 선봉대를 자임한 탓이다. 내부에서 표를 얻기 위한 호소였다 해도 한 정파의 대리인이 되겠다는 선언은 지나쳤다. 의장 재직 동안 당적을 박탈하는 국회법 정신, 여야 간 중재와 타협의 마지막 보루이길 바라는 민심과 거리가 있다.늦지 않았다. 성공한 의장으로의 여정은 이제 시작이다. 하나만 견지하면 된다. 내겐 다음이 없다는 생각. 공직 수명을 연장할 자리는 물론 있다. 의전 서열이 더 낮은 국무총리(2위→5위)도 괜찮다면. 대신 정세균 전 의장처럼 입법부 수장이 행정부 참모로 가려면 굴욕은 감수해야 한다. 18대부터 약 20년간 9명의 의장을 지켜봤다. 반짝 인기에 대선 주자로 거론된 이도 있다. 그러나 결국 그 자리를 끝으로 자연히 무대에서 페이드아웃됐다. 예외는 없다. 의장의 인기는 본질적으로 직(職)에서 오는 것이지 인물에서 오는 게 아니다.
한때 단골 뉴스였던 여당 출신 의장과 입법 속도전에 나선 여당 간 갈등은 양측의 존재론적 기반, 즉 사적 동기가 다른 데서 비롯됐다. 여당은 성과를 내 정권을 재창출하는 게 중요하겠지만, 의장은 커리어를 마무리하며 역사에 ‘나쁜 의장’으로 기록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까마득한 후배 의원들이 “욕먹을까 봐 몸을 사린다” “임기 끝나면 복당 불허” 등으로 망신을 줘도 소용없다. 역사에 남을 내 이름을 당신들이 책임질 수 없다는 냉철한 계산 속에 청와대 중점법안을 전광석화처럼 처리해 달라는 압박에 버틸 만큼 버티는 것이다.
강성 당원 말고 역사와 대화하라대통령이 여론에 아랑곳하지 않고 신념을 담은 사업을 밀어붙일 때 정치권에서 하는 말이 있다. “역사와 대화하고 가겠다는 것 아닌가.” 대통령은 더는 정치적 경로가 없으니 먼 훗날의 평가에 기대기 쉽다. 요즘 의장은 훗날을 도모하려다 보니 당이나 강성 당원들과 대화하려는 유혹에 빠진다. 의장의 이름은 역사에 남는다. 지금의 대결적 정치 구조에서도 의장은 운용의 묘를 발휘할 수 있다. 때로 외로워지면 된다. 역사가 반드시 명예로 보답할 것이다. 그러니 행여라도 김칫국 마시지 말고 역사와 대화하라. ‘국회의 대표’는 그런 자리다.홍수영 오피니언팀장 gae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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