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한국의 현실은 훨씬 참담했다. 차라리 비위를 저지를 후견인이라도 있다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후견인이 있다는 건 최소한 그 노인이 법원의 감시망 안에는 들어와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취재 현장에서 만난 피해 노인 중 후견인을 선임해 법의 울타리 안에서 보호받는 경우는 전무했다. 그들은 모두 사법망의 사각지대에 철저히 방치된 채 사냥꾼의 손쉬운 표적이 되고 있었다.
컨트롤타워 없이 책임 떠넘기는 국가기관들
후견제도가 도입된 지 12년이 흘렀지만, 당사자와 가족에겐 여전히 철저히 외면받는 제도다. 정신이 온전할 때 미래의 돌보미를 미리 정해두는 ‘임의후견’은 최선의 예방책으로 꼽히지만, 실제 제도를 이용한 이들은 2023년 기준 단 32명뿐이다. 서민이 이용하기엔 너무 비싸고 불편하기 때문이다.더 큰 문제는 이 고장 난 시스템을 고칠 ‘컨트롤타워’조차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후견인 선임과 감독은 법원이, 노인 돌봄은 보건복지부와 지방자치단체가 맡는다. 법원은 후견인의 부정행위를 잡아내는 사후적 감시자 역할에 집중할 뿐, 제도를 복지 서비스로 확대하는 기능은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돌봄’에 대해선 전문성이 없는 기관이기 때문이다.
복지부는 노인, 아동, 장애인 관련 부서가 후견 업무를 쪼개서 관리한다. 그렇다 보니 정책의 통일성을 기대하기 어렵다. 제도를 확대할 방안을 묻는 질문에 “후견은 법원의 몫”이라며 선을 긋는 부처까지 있었다. 사냥을 당한 뒤에야 개입하는 경찰조차 치매 노인 대상 범죄 건수가 얼마인지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후견의 대안인 신탁 제도를 담당하는 금융위원회도 뒷짐만 지고 있다.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올 5월 치매 머니 규모를 추정하고, 문제 해결에 나서겠다고 했다. 그러나 성공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정책을 실행할 강제력 없는 ‘조정자’ 역할에만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전담기관 만든 日-獨 참고해야 우리보다 앞서 고령화의 파고를 넘은 선진국은 일찍이 컨트롤타워를 만들어 후견 제도를 확대했다. 우리나라처럼 부처 간 칸막이로 고통받던 일본은 2016년 ‘성년후견제도 이용 촉진법’을 제정하고 총리실 산하에 전담 기구인 ‘성년후견이용촉진회의’를 만들었다. 이를 통해 전국 지자체 70%에 후견지원센터를 세웠고, 센터를 통해 후견 관련 상담부터 서류 작성까지 ‘원스톱’으로 지원했다. 그 결과 건강할 때 후견인을 정해 두겠다고 신청한 이들이 한국에서 229명에 그칠 때, 12만 명을 넘어섰다.
독일과 영국은 ‘후견청’이라는 전담 기구를 만들어 후견인 선발부터 교육, 감독을 맡았다. 그 결과 독일에선 임의후견을 이용하는 노인이 수백만 명에 이른다.
치매 노인 100만 명 시대, 그들이 보유한 자산은 올해 기준 172조 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고령화 흐름 속에서 치매 노인과 자산 규모는 더욱 늘어날 것이다. 이 거대한 치매 머니를 지킬 방패인 후견 제도는 고장 난 채 멈춰 있다. 해외 사례는 이미 충분하다. 이제 국가가 응답할 차례다. 컨트롤타워를 지정하고, 외면받은 정책을 근본적으로 개혁해야 한다.
이상환 히어로콘텐츠팀장 paybac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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