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김현수]반도체 호황의 뒷면, 통상 갈등의 그림자

17 hours ago 6

김현수 산업1부장

김현수 산업1부장
1년도 채 안 됐다. ‘반도체 슈퍼사이클’이 공식화된 게 작년 12월이니 말이다. 하루 이익이 1조 원 가까이 몰리자 반도체 기업 영업도 재무도 어찌할 바를 몰랐다고 한다.

첫 역대급 호황이 온전히 반영된 1분기(1∼3월) 실적 발표 이후, 삼성전자 성과급을 둘러싼 노사 갈등과 이를 중재한 정부발 ‘초과이윤’, ‘초과세수’ 논란이 쉴 새 없이 이어졌다. 아직 들어오지도 않은 이윤을 두고 분배 논란이 대한민국을 흔든 것이다.

이 ‘행복한 고민’은 국내 언론뿐 아니라 전 세계 외신으로도 생중계됐다. 인공지능(AI)발 슈퍼사이클이 본격화하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향한 외신의 취재 경쟁은 어느 때보다 뜨겁기 때문이다.

안보 문제로 비화하는 반도체 호황

문제는 ‘삼전닉스’의 행보가 세계 각국의 이해관계와 맞물려 있다는 점이다. 비싼 메모리칩을 가장 많이 사는 쪽은 미국 빅테크이다. 칩이 필요한 유럽, 일본도 한국 반도체의 눈부신 이익률을 매의 눈으로 지켜보고 있다.

이 때문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내부에선 고객사와 각국 정부를 자극하지 말아야 한다는 위기감이 고조돼 왔다. ‘한국만 너무 가져간다’는 서사가 강해지면 견제와 저항, 추격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15일 대한상공회의소 하계포럼에서 메모리 공급난을 “아비규환”이라 표현하며 “칩플레이션이 지속되면 지정학적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고 경고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부족한 칩을 구하려는 상상 못 할 로비와 압력이 한국 기업에 들어오고 있고, 이 압력은 기업을 넘어 우리 정부로 향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반도체 공급 부족은 각국 산업 안보와도 직결돼 있다.

수요는 느는데 추가 공급이 없고 한국만 돈을 쓸어 담으면 미국의 통상 압박이나 중국의 견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도 시사했다. 실제로 한국의 역대급 수출은 상대국엔 ‘역대급 무역적자’이고, 한국의 초과이윤은 상대국엔 ‘초과 마진 전가’로 읽힐 수 있다. 이는 무역적자를 줄이려는 미국의 정책 기조와도 정면으로 충돌한다. 재계 안팎에서 “미국이 한국의 반도체 초과이익 논란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美中 반도체 견제 경계해야

게다가 이번 호황은 자유무역이 막을 내리고, 경제안보와 지정학적 갈등이 자리한 시대에 찾아왔다. 특히 반도체는 지정학적 갈등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대만 TSMC의 행보가 이를 보여준다.

중국과 대만 간 위기가 고조되던 2020년, 미국에선 ‘대만 반도체의 미국 이전론’이 나왔다. 대만에만 몰려 있는 첨단 반도체가 공격받으면 세계 산업이 멈춘다는 논리였다. 6년이 지난 현재 TSMC 미국 팹은 현실화됐다. 미 애리조나주 TSMC 클러스터 1기는 흑자를 내기 시작했고, 최근엔 추가로 1000억 달러 투자도 발표해 미국 팹이 후공정 포함 12기로 늘게 된다. 이는 미-대만 무역합의에 따른 대미투자 이행 차원으로도 풀이된다. 반도체 공급 확대 요구와 미국의 통상 압박을 동시에 뚫겠다는 의도다.

한국 사정도 비슷하다. 메모리 몸값이 TSMC의 파운드리처럼 전략자산급으로 올라갈수록 통상 압박 대상이 된다. 이미 올 초부터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은 한국 메모리 팹을 찍어 미국에 지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반도체 호황은 중국이란 추격자도 키운다. 품질이 떨어져도 당장 칩을 달라는 세계의 아우성 덕에 중국 메모리 기업 CXMT는 투자 재원과 고객 네트워크를 확보할 기회를 잡았다. 이 역시 한국 반도체엔 위협 요인이다.

반도체 호황의 앞면엔 막대한 이익이 있지만, 뒷면엔 지정학적 갈등과 추격자의 부상이 도사리는 것이다. 우리의 성과를 자축하고 나누는 일보다 위협 요인에 대한 대비가 먼저다. 호황의 앞면만 보고 초과이윤 분배라는 김칫국부터 마실 때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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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수 산업1부장 kimh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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