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네모반듯하고 길쭉한 콘크리트 건물이 대세다. 빠른 건축, 관리의 효율성을 중시하는 근대주의와 도시 문화의 소산이다. 우리의 전통 건축은 원래 흙, 돌, 나무를 동원해 지었다. 무조건 튼튼한 재료, 최신 공법이라고 좋은 것이 아니다. 지역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여야 생명력이 길고 지역민에게 사랑받는다. 이는 우리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지구상 생명력 긴 건축과 미술이 지닌 특성이다.
특히 지역의 돌과 흙, 나무는 지역의 풍광과 풍토에 더할 나위 없이 어울린다. 건축과 미술의 재료가 되기 전부터 지역 사람들과 함께 기쁘거나 혹은 가혹한 상황을 겪어왔기에 재료와 사람 둘 사이에는‘함께’라는 무언의 연대가 있다.
흙이 많은 곳은 황토를 볏짚과 함께 틀에 꾹꾹 눌러 넣어 흙벽돌을 만들거나 덩어리 형태로 굴려 벽돌처럼 만들어 건축을 쌓는다. 바람세고 도처 돌 많은 곳은 흙보다 돌이 좋다. 큰 돌 위에 중간 돌을 쌓고, 틈은 자갈이나 작은 돌인 ‘고임돌’로 메우며 단단하게 벽을 축조한다. 마을 집마다 각도, 선, 높이를 달리하여 쌓은 흙담, 돌담을 보면 집주인의 안목과 더불어 단단함과 반듯함을 유지하는 바지런함이 고스란히 읽힌다. 그것이 마을의 생명력과 개성, 사람의 성품, 생활 문화를 만든다.
옛 돌담, 고향의 향수를 느낄 수 있는 장소를 희구하는 이가 많으나, 납작 돌과 황토를 절묘히 섞어 건축한 시골 풍광 보기가 갈수록 요원하다. 1970년대 새마을운동이 굽이 돌던 개천만 곧게 펴고 지붕만 개량한 것이 아니다. 평온한 토지에 오랫동안 인간과 더불어 꿋꿋하게 조응하며 살던 건축물을 모두 무(無)로 만들어버렸다. 텃밭 주위 공예품처럼 아름답고 정교하게 쌓은 축대, 색과 질감 다른 흙과 돌을 오밀조밀 섞어 모양낸 황톳빛 토담, 작은 돌과 진흙을 쌓아 올리고 맨 위에 큰 판석으로 마감한 후원의 돈대 등이 모두 사라졌다. 사라진 것이 건축, 풍광, 추억뿐이랴. 우리가 정작 잃은 것은 감각이다.
도심 속 웅장한 콘크리트 벽을 보고 감촉하고 자란 이와 담쟁이넝쿨 올라탄 낮은 담벼락에 앉거나 기대어 여름 서늘한 그늘과 따뜻한 겨울 햇살을 맞아본 이의 감각은 다르다. 낮은 담 사이로 이웃집 마당과 살림살이가 그대로 보이던 이가 머릿속에 그리는 공간감, 소리의 공명, 묵직함과 가벼움, 높고 낮음의 판단은 반짝거리는 유리 그리고 햇빛을 그대로 반대편 건물에 튕겨내는 것을 보는 이의 감각과 어떻게 같을 수 있을까. 예술가들은 재료에서 언어를 찾는 사람이다. 재료마다 다른 울림을 듣고 건네는 말을 달리 들으려는 사람들이다. 흙의 자연스러운 질감과 붉은 색감은 소박하고 따뜻한 미감을 느낀다면, 돌에서 흙이 가지지 못한 단단하고 묵직한 느낌을 읽는다. 결국 사물을 어떻게 다루느냐, 사물의 본질이 사람의 손길과 어떻게 만나는가, 재료가 어떤 언어를 내뱉게 할 것인가를 두고 예술가는 고민한다. 특히 한국 작가들은 원초적이면서 현대적인 것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거기에 내 사상과 철학을 어떻게 드러낼 것인가 바란다.
고향 마을 어딘가 비바람을 맞고 풍화된 화강암이나 짚과 흙을 다져 쌓은 흙담에서 자신의 성정과 미적 취향을 찾았던 이가 화가 박수근(1914~1965)이다. 캔버스에 유화 물감을 흙가루와 섞어 반복적으로 덧칠하고 다시 나이프로 긁고 쌓길 거듭하며 머릿속에 그리는 모종의 표면에 가까이 다가서고자 했다. 한국 땅 어디든 화강암은 흔하다. 흰색, 갈색, 회색을 위주로 물감을 거듭 쌓아 깎아 만든 박수근 특유의 모노크롬 표면은 단순히 거칠기만 한 것이 아니라 동네 흙담, 석축처럼 따사롭고 푸근하다.
박수근은 강원도 화천 출신이다. 한국전쟁 이후론 서울 창신동에서 살았다. 장터, 아낙네 모여 앉은 우물가, 빨래터 등 작가의 눈에 비친 익숙하고 비근한 풍경 속에서 몸은 고향을 떠났어도 절대 잊히지 않는 원형, 언제든 자신의 기억과 마음속에서 끊임없이 상기되는 형상과 질감을 떠올렸다. 그것은 억지로 한국스러운 것을 찾고 추구하여 그린 것이 아니다. 굳이 설명이 필요 없어도 이 땅에서 태어나 터전 삼아 사는 이라면 보지 않고도 가보지 않더라도 익히 아는 것이고 내 것으로 간주할 수 있는 것이다. 박수근 사후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우리가 여전히 그의 그림에서 한국 전통 미술로부터 이어져 온 영원성과 미감을 발견하고 애정하는 이유다.
공예가 중에서도 어릴 적 쥐고 놀았던 흙과 돌의 감촉과 낮은 흙담의 기억을 그리워하고 조형감각의 원형으로 삼는 이가 적지 않다. 이천에서 작업하는 도예가 김상만은 어두운 흙바탕 위에 미색 흙물 머금은 붓을 여러 번 두드리고 깎아 깊은 밀도와 거친 질감을 만든다. 소성하고 나면, 붉은 흙의 성분과 하얀 흙물의 성분에 불의 효과까지 더해 깊고 단단한 돌을 보는 듯하다. 고온의 불로 익히는 과정만 더할 뿐, 김상만의 방식이 박수근의 화법과 별다르지 않다.
작가도 유년기 흙담이 에두른 시골 마을에서 살았다. 낮은 흙담을 경계로 집과 집이 어깨를 맞댄 좁은 골목길이 그의 놀이터였다. 흙담을 배경으로 비집고 올라오고 퍼지는 풀들의 생명력을 보고, 굽이진 골목길을 따라 흐르던 바람의 촉감, 푸석푸석 땅과 흙벽을 긁어 땅 그림을 그리는 손의 촉각성과 울림이 그가 지금 만드는 흙 작업의 원형이요, 조형감각이다.
국토 어디라도 이름 없는 시골 석수가 만들고 언제부터 있었는지도 모를 미륵불, 석물 하나 없는 동네가 있을까. 김상만이 흙으로 빚고 불로 구운 상(像)은 비례 출중하고 비범한 모습이 아니다. 풍상에 마멸 되어가는 빗돌(碑石) 같다. 단순한 포름, 다소곳한 몸의 형상, 퇴화한 손과 발, 지그시 감은 눈을 보노라면, 누군가의 얼굴이 떠오른다. 친구, 이웃...나 그리고 작가의 모습까지. 뜨거운 용암이 굳은 돌처럼 흙으로 빚고 불고 구운 단단한 상에서 무엇을 보고 누구를 떠올리는가. 무엇이든 작가의 형태 감각, 촉감, 재질감, 색감이 우리 마음에 불러낸 각자의 상이다.
홍지수 공예 평론가•미술학 박사•CraftMIX 대표

8 hou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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