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티로더는 화장품을 단순한 ‘소비재’가 아니라 고객의 자존감과 라이프스타일을 바꾸는 ‘경험’으로 바꿨다. 루스 핸들러는 바비 인형으로 장난감 시장의 고정관념을 흔들었고, 사라 블레이클리는 속옷 브랜드 ‘스팽스’를 ‘보정속옷의 대명사’로 성장시켰다. 멜라니 퍼킨스는 디자인 소프트웨어 기업 캔바를 창업해 전문가의 영역으로 여겨지던 디자인을 누구나 쉽게 쓰는 도구로 바꿨다. 리사 수 AMD 회장은 반도체 기술 경쟁의 한복판에서 회사를 다시 성장 궤도에 올려놓은 대표적 여성 경영인으로 꼽힌다.
◇ 기술 혁신 주도하는 여성 기업인
이들 기업의 공통점은 여성이라는 정체성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시장의 빈틈을 읽는 감수성, 고객의 불편을 기술과 제품으로 바꾸는 실행력, 조직을 설득하고 연결하는 리더십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기술만으로는 시장을 창출하기 어렵고, 감성만으로는 기업을 지속 성장시킬 수 없다. 기술과 감수성이 결합할 때 기업은 고객과 더 깊게 연결되고, 산업의 질서를 바꿀 힘을 얻는다.
올해 열린 ‘제5회 여성기업주간’의 슬로건이 ‘기술로 성장하고 감성으로 연결하는 여성기업’으로 정해진 배경도 여기에 있다. 중소벤처기업부와 한국여성경제인협회는 지난 1일 서울 중구 신라호텔 다이너스티홀에서 제5회 여성기업주간 개막식을 열었다. 행사에는 조정식 국회의장을 비롯해 여성기업인, 여성경제단체 관계자, 중소기업 협·단체장, 신산업·신기술 분야 기업인 등 500여 명이 참석했다.
올해 여성기업주간은 여성기업의 역할을 단순히 ‘창업 확대’나 ‘일자리 창출’ 차원에 가두지 않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인공지능(AI), 디지털 전환, 첨단 제조, 푸드테크, 플랫폼 비즈니스 등 산업 지형이 빠르게 바뀌는 상황에서 여성기업인이 기술 혁신의 주체로 전면에 나서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았다. 동시에 고객 및 근로자, 지역사회와 소통하는 공감 능력이 기업 경쟁력의 핵심 요소가 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개막식에서는 경제성장과 일자리 창출에 기여한 모범 여성기업인에게 정부포상이 주어졌다. 금탑산업훈장은 김연선 대한오케이스틸 대표가 받았다. 김 대표는 47년간 철강 외길을 걸어온 기업인이다. 냉연 철강재 제조와 유통 분야에서 전문성을 쌓았고, 충남 당진과 경남 김해 등 지방 거점으로 제조 기반을 확장해 지역 일자리 창출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철강은 대표적인 남성 중심 산업으로 여겨져 왔지만, 김 대표는 오랜 현장 경험과 경영 역량으로 산업의 벽을 넘어섰다.
은탑산업훈장은 남미경 한만두식품 대표에게 돌아갔다. 남 대표는 보험 영업 현장에서 쌓은 끈기와 고객 이해를 바탕으로 식품 제조업에 뛰어든 기업인이다. 대기업 중심의 냉동만두 시장에서 갈비만두, 주꾸미만두 등 차별화한 제품을 내놓으며 새로운 수요를 창출했다. 소비자의 입맛 변화와 생활방식 변화를 섬세하게 읽어낸 감각이 기술 개발과 제품 기획으로 이어진 사례다.
◇ 여성 기업인, 韓 새로운 동력
이날 수상자들의 면면은 여성기업의 성장 방식이 얼마나 다양해졌는지를 보여준다. 전통 제조업에서 수십 년간 기술과 거래 신뢰를 쌓아온 기업인이 있는가 하면, 식품·생활소비재 시장에서 고객의 감정을 읽고 새로운 제품군을 개척한 기업인도 있다. 과거 여성기업 정책이 창업 저변 확대에 초점을 맞췄다면, 이제는 기술 고도화와 글로벌 시장 진출, 조직문화 혁신까지 포괄하는 단계로 확장했다.
여성기업의 강점은 ‘섬세함’이라는 말로만 설명하기엔 부족하다. 핵심은 문제를 다르게 정의하는 능력이다. 기존 산업이 효율과 규모에 집중할 때 여성기업인은 사용자의 불편, 현장의 위험, 직원의 지속 가능성, 지역사회와의 관계를 함께 본다. 이 관점은 제품 개발의 출발점이 되고, 브랜드의 신뢰를 높이며 조직의 이탈을 줄인다. 기술이 고도화할수록 인간을 이해하는 능력이 더욱 중요해지는 이유다.
박창숙 여경협 회장은 개회사에서 “수많은 여성기업인은 각자의 현장에서 치열하게 고민하며 기술과 혁신으로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며 “기술로 성장하고 감성으로 연결하는 대한민국 여성기업의 저력을 확인해 더 큰 미래로 나아가는 새로운 동력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병권 중기부 제2차관도 “기술이 고도화할수록 타인의 감정을 섬세하게 읽고 소통하는 능력이 기업의 최종 경쟁력이 될 것”이라고 했다.
제5회 여성기업주간은 개막식을 시작으로 정책토론회, 여성창업경진대회 시상식, 여성기업 판로역량 강화 MD 상담회 등이 이어진다. 7월 한 달 동안 여성기업 온라인 공동채용관과 우수제품 온라인 상생기획전, 지역별 기념행사도 열린다.
여성기업은 더 이상 보호와 지원의 대상에 머물러 있지 않다. 기술을 축적해 산업의 경쟁력을 높이고, 감성으로 고객과 시장을 연결하는 성장의 주체다. 세계적 여성 기업인들이 보여줬듯 시장을 바꾸는 힘은 거대한 자본에서만 나오지 않는다. 소비자의 마음을 읽고, 기술로 해법을 마련하고, 사람을 설득해 실행하는 리더십에서 나온다. 올해 여성기업주간 슬로건은 그래서 단순한 구호가 아니다. 한국 여성기업이 다음 성장 단계로 도약하기 위한 새로운 경영 공식이다.
민지혜 기자 spo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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