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베우 파블리코프스키 감독, <파더랜드> 상영 후 기자회견
파베우 파블리코프스키 감독은 역사적 폐허 가운데 일어나는 개인의 균열과 압축된 감정의 구조에 주목한다. 전작 <이다 (Ida)>에서 그는 전후 폴란드의 침묵 속으로 들어가 신앙과 혈통, 기억의 균열을 응시했고, <콜드 워 (Cold War)>에서는 냉전 체제가 한 연인의 삶을 어떻게 끝없이 흔들고 분열시키는지를 따라갔다. 흑백 화면과 절제된 프레임 속에서 파베우 파블리코프스키가 지속적으로 탐구해온 것은 결국 역사 자체보다, 역사가 인간의 얼굴 안에 남기는 흔적들이다.
<파더랜드 (Fatherland)>는 그 연장선 위에 놓인 작품이다. 감독은 다시 한번 1949년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이번 무대는 폴란드가 아니라 독일이다. 전쟁이 끝난 지 채 몇 년 지나지 않은 유럽은 아직 폐허 속에 머물러 있고, 독일은 미국과 소련의 점령 아래 둘로 분할된 채 새로운 질서를 강요받고 있다. 무너진 건물들 사이로 사람들은 사교계와 문화계를 다시 일으키려 하지만, 누구도 “5년 전 자신이 어디에 있었는가”라는 질문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영화는 <마의 산>과 <부덴브로크가의 사람들>로 잘 알려진 독일의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토마스 만의 귀환에서 시작된다. 나치를 피해 망명했던 그는 전쟁 후 처음으로 독일을 찾는다. 그의 곁에는 딸 에리카 만이 있다. 배우이자 작가, 그리고 랠리 드라이버였던 에리카(산드라 휠러)는 아버지의 통역자이자 동반자로서 검은 뷰익에 함께 오른다. 프랑크푸르트에서 바이마르까지, 미국 점령 지역에서 소련 통제 지역으로 이어지는 여정 속에서, 부녀는 패전 이후의 독일과 마주한다.
그 여정은 점차 사라진 조국과 무너진 유럽 정신의 잔해를 통과하는 움직임으로 변해간다. 토마스 만을 태우고 이동하는 검은 뷰익은 마치 움직이는 관(棺)처럼 보인다. 이 밀폐된 공간 안에서 부녀는 거의 대화하지 않는다. 파블리코프스키가 기자회견에서 말했듯, 토마스 만은 실제로 감정을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인물이 아니었다. 그는 감정을 직접 드러내기보다 문장과 형식 속으로 우회시키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영화는 그 억눌린 방식 자체를 화면 위의 언어로 삼는다.
반면 에리카는 아버지보다 더 예민하게, 더 빠르게 감지한다. 무너진 건물들 사이에서 다시 사교계의 얼굴을 꾸미는 사람들이 전쟁 이전과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산드라 휠러는 그 예민함을 과잉 없이 몸 안에 붙들어 둔다. 그래서 에리카는 영화 속에서 가장 먼저 시대의 균열을 감지하는 인물이 된다.
파블리코프스키는 기자회견에서 이 영화를 "세 인물과 하나의 순간에 집중한 영화"라고 말했다. 토마스, 에리카, 그리고 유령처럼 떠도는 아들 클라우스. 클라우스는 자신이 속할 세계를 잃어버리고 어느 언어로 글을 써야 하는지도 모른다. 이 세 사람의 침묵의 공간을 채우는 것은 다름 아닌 음악이다.
“이 영화에서는 음악이 이야기의 중심적인 역할을 합니다. 음악은 이미 시나리오 단계부터 계획되었습니다.”
음악은 파블리코프스키에게 중요한 장치이다. <콜드 워>에서 음악은 생의 에너지 그 자체였다. 폴란드 민요에서 파리의 재즈로 이동하는 궤적은 두 연인이 가로지르는 세계의 지형도였고, 그들이 끝내 포기할 수 없었던 것의 이름이었다. 음악이 있는 한 삶은 계속되었다. <파더랜드>의 음악은 다른 위치에 서 있다. 살아있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은 것, 전쟁이 끝난 자리에서 간신히 남아있는 것의 정신을 담고 있다.
축하 만찬 장면은 특히 그 긴장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장면이다. 나치 정권이 소위 ‘타락한 음악’이라 규정하고 금지했던 재즈가 만찬장을 채우고 있다. 테이블에는 나치의 범죄에 가담했던 사회 저명인사들이 가득하다. 그 자리에서 작곡가 바그너의 손자들, 볼프강과 빌란트가 토마스 만에게 간청한다. 바이로이트 축제를 재개할 수 있도록, 바그너의 명예를 회복시켜 달라고. 바그너는 나치가 위대한 음악이라 권장하고 선전에 활용했던 바로 그 작곡가이다. 토마스 만은 퉁명스럽게 대답한다. 그들의 어머니는 헤이그에서 재판을 받아야 한다고.
금지된 것과 권장된 것. 그러나 지금 이 자리에서 둘 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울리고 있다. 역사는 끝났지만, 역사를 만든 사람들은 여전히 같은 자리에 앉아 있다. 바그너의 손자들은 음악 자체에는 죄가 없다고 주장하지만 에리카는 일종의 기만을 느낀다. 그 선율이 어떤 장면의 배경이 되었는지를, 음악의 순수성을 주장하는 것이 곧 역사를 지우려는 시도임을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영화의 끝, 폐허가 된 교회에서 울려 퍼지는 바흐의 음악은 낯설지 않다. 파블리코프스키의 전작들은 모두 바흐로 끝이 났기 때문이다. <이다>는 ‘Ich ruf zu dir, Herr Jesu Christ’로, <콜드 워>는 글렌 굴드가 연주한 ‘골드베르크 변주곡’의 아리아로. 감독은 이에 대해 단호하게 말한다. "바흐는 우리 모든 문제의 해결책이니까요." 그러나 곧 덧붙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폐허가 된 오르간에서 라이브로 연주되는 바흐라는 점이 매우 다릅니다."
흘러나오는 곡은 ‘Jesu, Joy of Man’s Desiring’(‘인류의 기쁨이신 예수’, BWV 147)이다. 그 제목이 폐허 속에서 울릴 때, 곡은 신앙의 언어이기 이전에 인간이 끝내 놓지 못하는 무언가의 이름처럼 들린다. 완벽하지 않은 악기로, 무너진 공간 안에서 연주되는 이 선율은 해결을 약속하지 않는다. 다만 멈추지 않는다. <이다>와 <콜드 워>의 바흐가 초월의 언어였다면, <파더랜드>의 바흐는 폐허와 함께 있기로 선택한 언어일 수도 있다. 그것이 희망인지 아닌지는, 이 영화가 끝내 말하지 않는다.
칸=김은진 아르떼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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