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칸] 파르하디가 묻는다… 현실은 얼마나 현실적인가

1 week ago 14

<페럴렐 테일스>는 아스가르 파르하디의 필모그래피 안에서도 꽤 낯선 작품이다. 우리가 기억하는 그의 영화들, 이를테면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나 <세일즈맨>이 정교하게 얽힌 인과관계를 따라가며 인간의 도덕적 균열을 해부했다면, 이번 영화는 오히려 그 인과 자체를 흐트러뜨리는 방향으로 움직인다.

사건은 더 이상 선형적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누군가 이야기를 쓰는 순간 현실은 이미 재구성되기 시작하고, 허구는 현실의 내부로 침투한다. 인물들의 관계 역시 명확한 원인과 결과로 설명되지 않는다. 여러 감정과 기억, 욕망의 덩어리들이 서로 충돌하며 새로운 사건을 만들어낸다.

이 기묘한 이야기 속에서 영화는 “사건이 먼저 있고 기록은 그 뒤를 따른다”는 익숙한 질서에 균열을 낸다. 누군가를 기록하고 서술하려는 행위 자체가 새로운 사건의 동력이 되고, 그렇게 발생한 사건은 다시 또 다른 기록을 낳는다. 현실과 허구, 관찰과 창작은 서로를 끊임없이 밀어내고 되비추는 순환 구조 안에서 움직인다.

제79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영화 <페럴렐 테일스>의 아스가르 파르하디 감독과 배우들이 인사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제79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영화 <페럴렐 테일스>의 아스가르 파르하디 감독과 배우들이 인사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파르하디 감독은 이 영화의 출발점이 키에슬로프스키의 <십계> 6화에서 확장된 영화 <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이었다고 설명한다. 원작이 “망원경으로 타인을 바라보는 남자”를 중심으로 이미지의 욕망을 다뤘다면, 그는 거기서 반대로 “보여지는 쪽의 소리”를 상상하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순간, 감시당하는 인물들을 폴리 아티스트, 즉 영화 속 인공적인 소리를 만들어내는 사람들로 설정하는 아이디어가 탄생한다. 결국 영화는 이미지-사운드-글쓰기라는 삼각 구조 위에서 움직인다.

“가장 현실적으로 보이는 자연 다큐멘터리의 소리조차 사실은 대부분 스튜디오에서 인공적으로 만들어진다”는 사실은 이 영화를 관통하는 지배적인 개념이다. 이와 같이 영화에서 현실 속 인물은 허구의 인물로 재구성되고, 허구는 다시 현실에 영향을 미친다. 결국 영화는 “우리가 현실이라고 믿는 것은 과연 얼마나 현실인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이 지점에서 영화는 분명 크쥐시토프 키에슬로프스키의 그림자를 품고 있다. 실제로 영화는 <십계>에서 출발한 프로젝트이기도 하다. 때문에 키에슬로프스키 영화에서 반복되던 ‘타인의 삶을 바라보는 시선’, ‘우연과 운명 사이의 진동’, ‘도덕적 모호성’ 같은 요소들이 자연스럽게 녹아있다.

다만 허구 장면들은 의도적으로 키에슬로프스키 스타일에 가깝게 연출되었고, 현실 장면들은 파르하디 특유의 드라마적 방식으로 촬영되었다. 그래서 영화 안에는 두 개의 서로 다른 영화 언어가 공존한다. 몽환적이고 유려한 허구의 세계와, 다큐멘터리적 질감으로 그려진 현실의 세계.

제79회 칸 국제영화제에 참석한 영화 <페럴렐 테일스>의 아스가르 파르하디 감독. / 사진=연합뉴스

제79회 칸 국제영화제에 참석한 영화 <페럴렐 테일스>의 아스가르 파르하디 감독. / 사진=연합뉴스

칸에서 첫 공식 상영을 마치고 가진 기자회견에서 파르하디는 “이야기는 사건을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재구성한다”고 말했다. 그는 영화와 문학, 예술의 역할이 망각 속으로 사라질 사건들을 붙잡아두는 데 있다고 설명한다. 이 발언은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이기도 하다. 영화 속 인물들은 모두 누군가의 시선 안에서 다시 쓰인다. 그리고 그 재서술의 과정 속에서 현실은 조금씩 다른 형태로 변해간다.

한편, 기자회견에서 파르하디 감독이 유난히 힘주어 말한 것은 영화 바깥의 이야기였다. 그는 최근 이란에서 벌어진 전쟁과 시위대 학살에 대해 언급하며, 폭격으로 죽은 민간인과 시위 도중 죽은 사람들 사이에 공감의 위계를 둘 수 없다고 말한다. “모든 살인은 범죄”라는 그의 발언은 정치적 선언이라기보다, 그의 영화적 태도에 가깝다. 실제로 파르하디 영화의 인물들은 언제나 명확한 선악 대신 복잡하고 모호한 상황 속에 놓여 있다. 그는 이 모호함 자체를 관조하는 편을 택한다.

그는 오늘날 영화가 “조급함과 긴박함, 과잉된 움직임”의 영화가 되었다고 말한다. 반면 자신이 사랑했던 키에슬로프스키, 브레송, 앙겔로풀로스, 오즈 같은 감독들의 영화에는 “멈춰 서서 바라보는 힘”이 있었다고 회상한다. 그런 의미에서 <페럴렐 테일스>는 바로 그 관조의 시간을 되찾으려는 영화처럼 보인다. 인물들은 끊임없이 서로를 바라보고, 듣고, 상상한다. 그리고 그 시선과 소리가 또 다른 현실을 만들어낸다.

칸=김은진 아르떼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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