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발 8849m. 많은 사람이 에베레스트산 정상 높이를 외우고 있다. 그런데 그 숫자가 무엇을 기준으로 나온 것인지 묻는 사람은 많지 않다. 산의 높이는 대개 ‘해수면으로부터의 거리’로 설명되는데, 해수면은 시시각각 변화한다. 밀물이 들어오면 높아지고, 썰물 때는 낮아진다.
신간 <해수면 0미터>에서 저자 빌코 그라프 폰 하르덴베르크는 이 기준선의 역사를 파고든다. 해수면은 자연이 인간에게 건네준 고정된 눈금이 아니라 관측하고, 평균을 내고, 제도화한 결과물이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18세기 의사이자 수학자 요한 야콥 쇼이처는 기압계를 이용해 알프스의 고도를 지도에 표시했다. 기압계 수치를 바탕으로 고도의 값을 산출하는 것은 당시로서는 최신 과학의 성과였으나, 정확도는 여전히 떨어졌다. 그리스 학자들이 피라미드 높이를 측정하는 데 활용했던 삼각 측량법도 고도 측정 수단으로 활용됐다.
기압 측정법과 삼각 측량법에는 한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측정 정확도가 ‘수직 기준면’ 선택에 달려 있다는 점이다. 수직 기준면은 어딘가에 이미 존재하는 자연적 기준이 아니었다. 반복 관측과 계산, 합의 등을 통해 만들어진 기준이었다.
해수면 측정의 출발점은 도시의 현실적인 필요였다. 베네치아에서는 최소한 1440년부터 건물 기초 부문에 남은 검푸른 해조류의 흔적을 보고 수심을 가늠했다. 퇴적물과 침전물이 도시 환경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파악하는 데 활용됐다. 암스테르담은 도시가 침수되는 것을 막기 위해 1556년부터 해수면의 높이를 기록했다. 1675년에는 평균 해수면부터 약 14㎝ 높은 만조 수위의 평균을 도시의 공식적인 기준으로 채택했다.
베네치아와 암스테르담은 평균 만조를 파악하는 데 집중했다. 하지만 간조와 만조를 모두 기록하는 것은 어려웠다. 파도와 바람이 데이터를 끊임없이 왜곡했기 때문이다. 영국의 자연철학자 로버트 모레이는 수로로 바다와 연결된 ‘정수정’을 사용할 것을 제안했다. 날씨에 따라 변화하는 교란을 차단하기 위해서였다. 조수 간만의 차가 극심할 때뿐만 아니라 지속해서 해수면을 측정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은 그가 처음이었다.
이후 프랑스 왕립과학원은 해수면을 측정하는 방법에 관한 공식 지침을 국가 중앙 행정기관으로서는 최초로 배포했다. 19세기 초 자동 조위계가 등장하는 기반도 이 과정에서 마련됐다. 하지만 기술 발전이 곧바로 표준 확립으로 이어진 것은 아니었다. 측정은 간헐적이었고, 바다가 계속 낮아지고 있다는 식의 가설도 한동안 힘을 얻었다. 평균 해수면이 고도 측정의 기준으로 자리 잡기까지는 오랜 논쟁과 시행착오가 필요했다.
책이 흥미로운 것은 해수면을 단순한 자연과학의 대상으로만 보지 않는 데 있다. 해수면을 정한다는 것은 근대 국가가 세계를 하나의 눈금으로 정리해가는 과정과 맞물려 있었다. 운하를 뚫고, 항구를 운영하고, 식민지를 관리하는 데에는 모두 안정적인 기준선이 필요했다. 해수면 이면에는 국가적인 야망과 상업적인 이해관계가 놓여 있었다.
오늘날 평균 해수면은 또 다른 의미를 갖기 시작했다. 인간이 지구 환경을 얼마나 바꾸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이 됐다. 저자가 이 작업을 구상한 2011년부터 2022년 말까지 세계 평균 해수면은 약 5㎝ 올랐다. 같은 해수면 상승도 지역에 따라 체감하는 정도는 다르다. 해안과 섬 지역은 바닷물이 삶의 터전으로 밀려드는 현실을 겪고 있다. 저자는 “평균 해수면만이 해수면을 시각화하고 이해하는 유일한 방식이 아니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한종 기자 onebel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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