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행작 가뭄기에 개봉하는
기업 M&A 다룬 '소주전쟁'
초능력 히어로 '하이파이브'
거창한 사회정의 실현 없이
현실 그대로 비춰 호평받아
한국 영화관에서 신파(新派)가 사라졌다. 고난을 겪고 사회 정의가 실현되는 과정에서 관객의 '억지 눈물'을 짜내는 신파는 극장가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춘 것이다.
그 증거가 6월 극장가에 개봉한 영화 '소주전쟁'과 '하이파이브'다.
온기 가득한 선인이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에게 번번이 뜯어 먹히고, 평범한 얼굴의 히어로들이 악인에게 흠씬 두드려맞는데 그 과정에 눈물 한 방울의 정서도 보이지 않는다. 신파가 사라졌기에 더 몰입감 넘치는 두 영화를 최근 살펴봤다.
유해진·이제훈 주연의 영화 '소주전쟁'은 분명히 '한국인의 술' 소주에 관한 영화다. 그러나 영화의 소재만 소주일 뿐 실제론 기업 인수·합병(M&A)에 관한 영화다. '빅 쇼트' '인사이드 잡' 등을 떠올리게 할 만큼 현실적이고 러닝타임 104분도 그래서 매우 빠르게 흘러간다.
때는 1997년 IMF 시절, 국보그룹의 재무이사 종록(유해진)은 회사에 충성을 다하는 '국보맨'이다. 그에게 회사는 자신의 인생과 같다. 하지만 맨해튼 기반의 글로벌 투자사 솔퀸 막내 사원인 인범(이제훈)에게 자신의 출신국인 국보그룹은 연말 보너스를 위한 탁월한 먹잇감이었다. 전 국민이 소주를 연간 80병도 넘게 마셔서다.
인범은 솔퀸이 국보그룹을 컨설팅하면서 국보그룹 채권을 헐값에 몰래 매입할 것을 임원들에게 제안한다. '몸값 3조원'의 국보그룹을 흡수하려 솔퀸이 비밀리에 베팅한 금액은 고작 '1000억원'이었다. 솔퀸은 페이퍼 컴퍼니를 통해 5년간 국보 채권을 사모으기로 한다.
당장의 파산을 면하는 대신 5년 뒤 원금부터 갚는 조건으로 겨우 회생해 체면치레를 한 석 회장(손현주)은, 그러나 5년 뒤 역시나 원금을 갚지 못한다. 그 뒤엔 솔퀸의 치밀한 '장난질'이 있었다. 납입기한을 넘긴 지 고작 이틀 만에, 인범이 민낯을 드러내며 종록과의 쟁투가 시작된다. 이 전쟁의 승자는 누굴까.
'소주전쟁'은 "우리 소주를 지키자" "한국의 자존심을 수호하자" 따위의 민족주의적 구호가 두드러지지 않는다. 오직 자본의 논리와, 자본의 논리로만 무장한 인간의 비윤리성이 나온다. 그러면서도 자본의 논리를 애써 부정하지도 않고 그저 자본의 표정을 보여준다.
인범과 사실상 경쟁 관계인 한국 로펌 대표 구영모(최영준)의 주요 대사처럼 "한 가지만 해. 이 ×××야. 돈 벌고, 웃고, 그것만 해"라는 말처럼. 승패가 갈리는 시점에서 누군가의 눈물 어린 희생을 애써 조명하는 통속적 영화 문법에서도 벗어나 있다. 단, 다 보고 나면 어쩔 수 없이 노가리에 소주 한 잔이 불가피하다는 점은 이 영화의 흠이다.
현실에 기반한 '소주전쟁'과 달리 영화 '하이파이브'는 초현실에 관한 이야기다. 심장, 폐, 신장, 간, 각막을 이식받은 5인의 평범한 일반인이 느닷없이 초능력을 갖게 되면서 벌어지는 슈퍼히어로 서사다.
중심인물은 완서(이재인). 심장병을 앓던 소녀는 심장 이식 후 자신도 모르게 괴력을 가진 초능력자가 된다. 그런 완서에게, 작가 지망생 지성(안재홍)이 찾아와 혹시 몸에 특이한 문신이 생긴 게 맞는지, 또 어떤 초능력을 얻었는지를 묻는다. 두 사람은 같은 사람에게서 신체 일부를 이식받았는데, 서로 다른 초능력을 가지게 된 것이다.
둘은 장기이식 모임을 통해 자신들과 같은 기이한 능력을 얻은 이들을 물색하기로 한다.
선녀(라미란), 약선(김희원), 기동(유아인) 등이다. 이들은 각각 태권소녀, 작가 지망생, 야쿠르트 아줌마, 작업반장, 백수 등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인물들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능력을 '재이식'해 영생을 꿈꾸려는 사이비종교 교주 영춘(신구)에 맞서게 된다.
'하이파이브'에는 위험에 빠진 약자를 자신이 가진 초능력으로 구조하는 영웅담이 선명하지 않다. 악한(빌런)의 목적은 사회 궤멸이나 세계 정복이 아니라 슈퍼히어로들의 능력 자체다. 세상을 정복하지도, 세상을 구원하려 하지 않다 보니 쟁투의 과정에서 '초능력자는 법과 제도 바깥에서도 용인돼야 하는가'라는 기존 슈퍼히어로 서사 속 철학적 질문이 재연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관객은 평범한 슈퍼히어로 5인의 신체능력과, 그들의 능력을 모두 흡수하려는 빌런의 대결을 그저 '즐기기만' 하면 된다. '하이파이브'의 매력은 바로 이 점이다. 또 싸우는 공간도 길거리 한복판이 아닌 제도권 바깥(사이비종교 회당)이므로 거창한 정의 구현이라는 목적도 결여된 상태다. 정치·철학적 메시지가 없으니 그저 웃고 즐기는 슈퍼히어로물이다. 각 캐릭터들이 모두 살아 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컴퓨터그래픽(CG)과 시각효과(VFX)다. 야쿠르트 아줌마의 카트로 카레이싱이 펼쳐지는데 박진감이 넘쳐 몰입하게 된다. CG와 VFX의 완성도에 대해선 평이 갈리지만 서사 흐름을 방해할 정도는 아니다.
[김유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