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생각 없이 지원한 마라톤대회에 덜컥 당첨돼 러닝 크루에 가입한 지도 어언 3년. 처음엔 5km도 달리기 힘들어 헉헉댔지만, 이제는 10km 이상 달리지 않으면 할당량을 못 채운 것 같은 찝찝함을 느낄 때가 있다. 처음엔 가볍게 뛰자며 ‘펀런’을 추구하던 회원도 훈련을 거듭하다 마라톤대회에 한두 번 참여하게 되면 다들 그렇게 ‘러닝 중독자’가 되어간다.
그렇다면 누구보다 뼈와 근육의 구조를 잘 아는 정형외과 전문의들의 러닝은 어떨까? 철저한 예방과 휴식으로 부상 따윈 겪지 않을 거란 선입견은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와장창 부서졌다. 그들 역시 지독한 부상에 시달려 본 똑같은 러닝 중독자들이었기 때문이다.
“쉬라고 해도 소용없어요. 어차피 뛰지 말라고 해도 뛸 사람들이라서.”
김동현 원장이 자신을 찾아온 러너들에 대해 한 말이다. 이토록 러너의 입장을 뼛속까지 꿰뚫는 한마디가 있을까. 많은 아마추어 러너의 꿈인 ‘서브3(풀코스 3시간 이내 완주)’와 ‘싱글(3시간 1~9분대 완주)’의 기록을 보유한 김동현, 안치영 두 명의 정형외과 전문의에게 마라톤과 부상에 관한 솔직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 의사 프로필
- 김동현 원장 (사당 성모탑정형외과): 마라톤 경력 2년 / 풀코스 최고기록 2시간 59분 36초
- 안치영 원장 (부천성모88정형외과): 마라톤 경력 1년 8개월 / 풀코스 최고기록 3시간 8분
의사들도 피하지 못한 ‘부상의 늪’
Q. 어떻게 마라톤이라는 극한의 운동을 시작하게 되었나?
김동현 원장(이하 김): “살기 위해 뛰었다. 2024년 건강검진에서 고혈압에 간 수치, 요산 수치, 고지혈증 수치 등 건강 지표가 엉망이었다. ‘이러다 죽겠다’ 싶어 러닝크루에 가입해 훈련하다 보니 어느새 서브3까지 오게 되었다. 그 전에는 10km도 뛰어본 적이 없다.”
안치영 원장(이하 안): “직장에서 받는 정신적 스트레스를 해소하려고 가볍게 달리던 중, 김 원장의 소개로 같은 크루에 가입하여 본격적으로 마라톤에 빠져들었다.”
Q. 마라톤을 시작한 지 2년도 안 돼 엄청난 기록을 낸 만큼, 부상도 겪었다고 들었다. 의사가 아닌 환자 처지에서 어떻게 대처했는가?
안: “가장 뼈아픈 부상은 우측 발목에 찾아온 ‘후경골건염’이었다. 환자라면 당연히 휴식을 권했을 텐데, 정작 나는 훈련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회복이 불완전한 상태로 뛰었고 결국 만성으로 굳어졌다. 부상의 가장 큰 원인은 결국 ‘오버트레이닝’이었다. 요즘은 내 몸의 목소리에 좀 더 귀를 기울이며 훈련과 휴식의 비율을 조정하고 있다.”
김: “‘장경인대 증후군’으로 두 달을 아예 뛰지 못했다. 당해보니 교과서와 실제가 너무 달랐다. 5km만 뛰어도 무릎 바깥쪽을 빨래집게로 집는 듯한 고통이 왔다. 직접 아파보니 스포츠 손상은 일반 정형외과 질환과 전혀 다른 관점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나 같은 경우 해답을 ‘골반 정렬’과 같은 ‘러닝자세 교정’에서 찾았다.”
러너의 가장 큰 적 ‘조급함’, 치료의 기준은?
Q. 진료실에서 보기에 일반 러너들이 부상 예방을 위해 고쳐야 할 가장 나쁜 습관은.
김: “러닝 부상의 가장 큰 적은 ‘조급함’이다. 마라톤은 철저한 자기관리의 스포츠다. 부상이 발생했을 때, 훈련 강도를 줄이고 부족한 근육을 보강 운동으로 채우는 과정을 견딜 줄 알아야 한다.”
안: “과한 의욕으로 처음부터 무리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단계적인 훈련과 휴식으로 서서히 몸을 만들면서 컨디션이 올라오길 기다린다. 역설적이지만 그것이 가장 빠르게 기록을 단축할 수 있는 길이다.”
Q. '참고 뛰어도 되는 통증'과 '당장 멈춰야 하는 통증'은 어떻게 구분하나.
안: “참고 뛰어도 되는 통증은 없다. 다만, 안 쓰던 근육을 써서 생기는 뻐근한 ‘근육통’은 러닝에 적응하고 성장하는 과정일 수 있으니 무작정 쉬기보다 스트레칭과 가벼운 동적 회복으로 풀어주는 것이 좋다. 하지만 3일 정도 쉬었는데도 일상생활이나 가벼운 운동을 할 때조차 통증이 반복된다면, 반드시 병원에 방문하여 치료받아야 한다.”
김: “학회에서는 ‘휴식 시에도 1주일 이상 지속되는 통증‘을 부상으로 정의한다. 나 같은 경우 실전에서는 좀 더 현실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48시간을 기준으로 본다. 48시간을 쉬었는데 조깅조차 불가능할 정도라면 병원 진료를 권한다.”
기록은 목적이 아니다…함께 달리는 즐거움
Q. 김 원장은 ‘서브3’를 달성했다. 안 원장은 기록에 크게 얽매이지 않고도 편안하게 ‘싱글’을 유지하는 것 같다. 기록 달성의 비결과 기록을 대하는 생각이 궁금하다.
김: “부상으로 두 달 가까이 훈련을 쉬며 멘탈이 무너질 때, 매일 아침 통화하며 정신을 붙잡아 준 사람이 바로 안 원장이다. 그 덕에 조급함을 버릴 수 있었다. 2026년 서울동아마라톤 당일에도 ‘안 되면 가을에 하지 뭐’ 하는 생각으로 몸에 힘을 빼고 즐겁게 달렸더니 서브3라는 좋은 결과가 따라왔다.”
안: “내게 김 원장은 당근과 채찍을 휘두르는 둘도 없는 파트너다. 창피하지만 나는 기록에 크게 얽매이는 편이다(웃음). 목표 기록은 훈련의 방향을 잡아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록이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목표를 달성했을 때 쾌감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실패했을 때도 묵묵히 훈련을 이행한 만족감 자체를 즐겨야 한다.”
Q. 전문의로서 부상 없이 평생 달리고 싶어 하는 러너들에게 해 줄 조언이 있다면.
김: “실력 향상을 원한다면 부상을 너무 두려워하지 않길 바란다. 연구에 따르면 마라톤 부상의 약 90%는 적절하게 관리한다면 2개월 이상 지속되지 않는다. 부상 역시 한 단계 성장하기 위한 과정이니, 현명하게 이겨내고 성취하길 바란다.”
안: “달리기는 본질적으로 즐기기 위한 취미다. 과정이 괴롭기만 하다면 지속할 수 없다. 러닝이 자신에게 주는 즐거움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러닝 크루에 가입하는 것도 좋은 사람들과 연대하며 덜 지겹고 재미있게 러닝 생활을 이어가는 훌륭한 방법이다.”
결국 두 전문의가 입을 모아 강조한 부상을 피할 수 있는 러닝의 본질은 ‘자신과의 타협’, ‘조급함 내려놓기’였다. 내 몸이 보내는 신호에 귀 기울이며 과감히 멈출 줄 아는 용기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왜 멈추는 게 힘든지, 늘 자신과 타협하는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지만 이 것만은 분명히 안다. 원인을 알아도 다치는 러너는 계속 나올 것이다. 어차피 뛰지 말라고 해도 뛸 사람들이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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