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릿광대들을 불러줘요”[내가 만난 명문장/고희경]

1 day ago 4

고희경 홍익대 공연예술대학원장

고희경 홍익대 공연예술대학원장

“우리가 한 쌍의 파트너인가요? 난 마침내 땅 위에 내려왔는데 당신은 여전히 저 공중에 떠 있네요. 어릿광대들을 불러줘요.”

―뮤지컬 ‘소야곡’ 중

‘어릿광대를 불러주오’는 스티븐 손드하임의 뮤지컬 ‘소야곡’에서 한물간 여배우 데지레가 부르는 노래다. 젊은 시절 청혼했던 변호사 프레드릭을 오랜만에 만난 데지레는 뒤늦은 사랑을 고백하지만 그는 이미 젊은 여인과 사랑에 빠진 상태다. 이 대목에서 남녀의 어긋난 타이밍이 공중그네를 함께 타는 서커스 공연 장면으로 그려진다. 그런데 그녀는 왜 갑자기 어릿광대를 불러달라고 하는 것일까.

사실 공연에서 배우가 대사를 잊어버리거나 무대장치가 무너지는 등 크고 작은 사고는 흔하다. 이럴 때 서양 공연 문화에는 서커스 광대들을 무대로 투입해 관객의 시선을 분산시켜 시간을 벌고, 분위기를 수습하는 전통이 있다. 어릿광대는 엉망진창이 돼버린 공연을 헛소동이라도 부려 위기를 모면하려는 수단이다. 데지레는 이 순간이 인생이라는 무대에서 최대의 실수를 한 순간임을 깨닫고, 이를 모면할 광대를 찾는다.

‘어릿광대를 불러주오’의 선율은 우리에게 익숙하다. 온 국민이 가슴 졸이며 지켜본 2014 소치 겨울올림픽에서 ‘피겨의 여왕’ 김연아 선수가 쇼트프로그램 곡으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완벽한 대사를 준비하고 최고의 타이밍이라고 확신했을 때, 인생은 우리의 뒤통수를 치며 장난을 걸어온다. 그 순간 손드하임은 참담한 비극에 젖어드는 대신 한 발짝 물러나 극장장에게 어릿광대를 불러달라며 슬며시 그 순간을 모면해 보라고 권한다. 데지레는 프레드릭과 재회하며 결국 해피엔딩을 맞이했으니 어릿광대의 효과를 봤다. 물론 나는 어느 배우든 ‘어릿광대를 불러달라’고 부탁하는 사고의 순간이 오지 않기를 매일 기원하는 극장장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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