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모자 위에 머리 아프게 만드는 단추같은 거…근데 그거 뭐지? [그거사전2]

2 days ago 9

[그거사전 - 99] 야구모자 위에 있는 둥글고 딱딱한 단추 ‘그거’

“그거 있잖아, 그거.” 일상에서 흔히 접하지만 이름을 몰라 ‘그거’라고 부르는 사물의 이름과 역사를 소개합니다. 가장 하찮은 물건도 꽤나 떠들썩한 등장과, 야심찬 발명과, 당대를 풍미한 문화적 코드와, 간절한 필요에 의해 태어납니다. [그거사전]은 그 흔적을 따라가는 대체로 즐겁고, 가끔은 지적이고, 때론 유머러스한 여정을 지향합니다.

이제 필요 없다고는 하지만 스쿼치가 없으면 영 어색하다. [Unspalsh/Ahmed Syed]

이제 필요 없다고는 하지만 스쿼치가 없으면 영 어색하다. [Unspalsh/Ahmed Syed]

명사. 1. (별칭) 스쿼치(squatchee) 스쿼초(squatcho) 2. (공식) 탑 버튼(top button), 패널 캡 커버(panel cap cover) 3. (日) 텐보탄(天ボタン·하늘단추)【예문】낮은 천장에 머리를 박았다. 모자를 쓰고 있어서 괜찮겠지 했더니 스쿼치가 함정이었다.

탑 버튼이다. 제조사에 따라 단순히 버튼으로 지칭하기도 한다. 스쿼치라는 별칭이 더 대중적으로 알려졌다. 고, 공식이 뭘 알아!? 야구모자, 볼캡 윗부분 중앙에 달린 둥근 단추다. 보통 금속이나 플라스틱 단추 위에 모자 원단과 같은 천을 씌워 만든다.

스쿼치의 역할은 마감이다. 초기의 야구모자¹는 이등변 삼각형 모양의 천 조각(패널) 여섯 장을 이어 붙여 돔 모양의 크라운을 만들었는데, 여섯 번의 바느질이 만나는 윗부분 중앙은 아주 난리가 났다. 스쿼치는 이 처치 곤란 꼭짓점을 덮어 봉합 흔적을 가리고 깔끔하게 마무리하는 용도로 썼다. 그러니까 모자 제조업체들이 “대충 덮고 치우죠?”라며 얼렁뚱땅 넘어간 산물인 셈이다.

하지만 이제 와서는 그 용도라고 하기에도 무안하다. 오늘날의 기술로는 이 스쿼치 없이도 충분히 깔끔한 모자를 만들 수 있기 때문. 오히려 헤드폰을 쓰거나 천장에 머리를 부딪쳤을 때 정수리의 고통을 배가시키는 요소가 된다.

한때나마 있던 쓸모는 사라졌지만 장식물로서의 스쿼치는 사라지지 않았다. 어느샌가 ‘원래부터 그 자리에 있던 것’이 됐기 때문이다. 100년이 훌쩍 넘는 세월이 전통이란 이름의 유산을 남겼다. 어떤 당연함은 쓸모를 넘어선다.

유산이고 뭐고 긴고아를 쓴 손오공마냥 고통스러운 이들을 위해 스쿼치가 없는 버튼리스 캡(buttonless cap)도 등장했다. 아예 떼었다 붙였다 할 수 있는 자석식 스쿼치도 개발됐다.

¹ 현대적인 야구모자는 1860년대 뉴욕의 아마추어 야구팀 브루클린 엑셀시어스가 최초로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¹ 현대적인 야구모자는 1860년대 뉴욕의 아마추어 야구팀 브루클린 엑셀시어스가 최초로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뉴에라의 ‘스쿼치 없는’ 39THIRTY 모델. 버튼리스(buttonless)라고 검색하면 된다. [뉴에라]

뉴에라의 ‘스쿼치 없는’ 39THIRTY 모델. 버튼리스(buttonless)라고 검색하면 된다. [뉴에라]

스쿼치라는 별칭이 굳어진 것은 2000년대 후반부터다. 의외로 최근인데 이 유래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지라 자못 흥미롭다. 출발은 미국 프로야구 MLB 선수 출신 스포츠 해설자 밥 브렌리(Bob Brenly, 1954~)다. 그는 야구 경기 해설 도중 스쿼치라는 단어를 몇 차례 언급하며 대중화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 하지만 그가 스쿼치의 아버지는 아니다. 후하게 쳐주면 대부(代父) 정도 되시겠다.

그가 1980년대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에서 주전 포수로 뛰었을 무렵에는 포수 헬멧을 따로 쓰지 않고 천으로 된 야구모자를 챙이 뒤로 가도록 쓴 채로 포수 마스크를 쓰곤 했다.² 그는 부상을 방지하기 위해 모자의 탑 버튼을 떼어내곤 했는데, 이를 본 동료 마이크 크루코(Michael Edward Krukow, 1952~)가 스쿼초(스쿼치)라는 명칭을 알려줬다고 밝혔다. 크루코는 은퇴 이후 스포츠 해설가로 활동했는데, 밥 브렌리처럼 스쿼치라는 표현을 종종 사용했다고 한다.

그런데 크루코도 스쿼치의 아버지가 아니다. 관대하게 쳐주면 자기가 아는 건 말해야 직성이 풀리는 숙부 정도 되시겠다. 크루코는 한 인터뷰에서 1984년 피츠버그의 한 서점에서 스쿼초라는 표현을 처음 봤다고 했다.

² 포수헬멧 또는 스컬 캡이라고 하는데, MLB가 이러한 헬멧 착용을 의무화 한 것은 1988년 규정 변경·시행때부터다.

² 포수헬멧 또는 스컬 캡이라고 하는데, MLB가 이러한 헬멧 착용을 의무화 한 것은 1988년 규정 변경·시행때부터다.

왼쪽부터 현역 시절의 밥 브렌리, 마이크 크루코, 그리고 리치 홀 [tradingcarddb.com, Tina Downham/위키피디아]

왼쪽부터 현역 시절의 밥 브렌리, 마이크 크루코, 그리고 리치 홀 [tradingcarddb.com, Tina Downham/위키피디아]

출처는 같은 해 출간된 스니글릿(Sniglets)이란 책이다. 코미디언 리치 홀(Rich Hall, 1954~)이 쓴 이 책은 표지에 적힌 대로 ‘사전에 실리지 않았지만 실려야 할 단어(any word that doesn’t appear in the dictionary, but should)’를 다룬 일종의 유머 모음집이다. 스니글릿이란 사전에는 없지만 그런 단어가 있으면 좋겠다고 느껴지는 어떤 사물이나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진 유머러스한 신조어를 말한다. 예컨대 발가락으로 욕조 수도꼭지를 돌릴 수 있는 능력(aquadextrous)이나 과자 봉지 안을 채우고 있는 공기층(snackmosphere), 컵 바닥에 있던 얼음이 마지막 한 모금에서 갑자기 쏟아져 나오는 현상(icelanche), 영화관 좌석에서 팔걸이를 차지하려고 서로 팔꿈치를 밀어 넣는 미묘한 경쟁(elbonics) 따위다.

책에서는 따로 스쿼초의 어원을 설명하지 않지만 유추해볼 순 있다. 중량 운동으로 익숙한 스쾃(squat)은 원래 ‘쪼그리고 앉다’ ‘쪼그리고 앉은 자세’를 뜻하는 단어다. 여기에 접미사 -o를 붙여 사물이나 사람을 지칭하는 형식(weird+o,sick+o, kid+do)을 빌려온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니까 쪼그리고 앉은 것처럼 납작 달라붙어 있는 물건, 스쿼초 되시겠다.

그러니까 코미디언이 장난삼아 만든 ‘세상에 없던’ 명칭을, 그것도 한 글자 틀리게(초→치) 전달한 덕분에, 수십 년이 지나서 진짜 이름이 됐단 얘기다. 홀, 크루코, 브렌리 세 사람이 뜻을 함께한 덕에 허구가 진짜가 됐으니 삼인성호(三人成虎)가 따로 없다. 아니 세 명이 모여 없던 그거를 만들어냈으니 삼인성모(三人成某)³라고 해야 하나.

³ 아무 모(某)는 아무개라는 뜻으로 쓴다. 某某로 쓰기도 한다.

³ 아무 모(某)는 아무개라는 뜻으로 쓴다. 某某로 쓰기도 한다.

스쿼치·스쿼초의 시초가 된 ‘말장난 책’ 스니글렛. [Macmillan Publishing Company]

스쿼치·스쿼초의 시초가 된 ‘말장난 책’ 스니글렛. [Macmillan Publishing Company]

다음 편 예고 : 책 문단과 문단 사이 화려한 장식 그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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