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의 매체적 한계, 소설 쓰며 돌파구 삼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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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상 후보 한국계 에릭 오
단편소설 ‘천사의 위스키’ 출간
음악-무용 어우러진 공연도 선보여

단편 소설집 ‘천사의 위스키’를 내고 3일 서울 마포구 연남장에서 공연을 연 에릭 오. 그의 뒤로 책의 표지가 된 그림이 걸려 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단편 소설집 ‘천사의 위스키’를 내고 3일 서울 마포구 연남장에서 공연을 연 에릭 오. 그의 뒤로 책의 표지가 된 그림이 걸려 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2021년 단편애니메이션 ‘오페라’로 아카데미상 후보에 올랐던 에릭 오 감독(42). 그의 손에 책 한 권이 들려 있다. 소설 속 한 구절을 낭독하자 음악가 말립이 곡을 연주하고, 무용수가 춤을 춘다. 3일 서울 마포구 복합문화공간 연남장에서 펼쳐진 공연 ‘천사의 위스키-감각하고 사유하는 밤’의 풍경이다.

오 감독이 낭독한 단편소설집 ‘천사의 위스키’는 최근 그가 출간한 작품이다. 컴퓨터그래픽(CG)으로 만든 영상과 전시장의 설치 작품으로 이야기를 전해 왔던 그는 “상업 애니메이션을 만들며 자기 검열이 심해지고 매체적인 한계에 갇힌다는 답답함을 많이 느꼈다”며 “돌파구를 찾고 싶어 소설을 쓰게 됐다”고 말했다.

소설집에는 짠한 인물들이 자주 등장한다. 난임 치료를 위해 매일 씨름하다 지쳐 다투는 부부(바늘의 끝), 주인의 장례식장에서 변을 보고 싶어 고통받는 강아지(무주, 숲속의 생활), 아버지의 폭력 속에 자란 아들(두 번째 그림자) 등등. 오 감독은 “스스로 ‘지금까지 멋있는 거 많이 했으니 이제 창피한 거 드러내 보자’고 말하며 부끄러움 없이 들어가려 애를 썼다”고 했다.

표제작인 ‘천사의 위스키’도 그렇다. 주인공은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영화계에서 퇴출당한 50대 감독 정식. 오 감독이 생각하는 가장 최악의 미래이기도 하다.

“할리우드 시장에 여전히 몸을 담고 있으면서 장편 애니메이션을 만들려고 애쓰고 있지만 그 과정이 지난하고 힘들거든요. 그때 덜컥 두려움이 온 거죠. 안 되면 어떡하지, 결국 이게 나의 자리가 아니면 어떡하지. 그 불안감을 파고 들어가 만든 캐릭터입니다.”

소설집 전체의 집필 기간은 약 1년. 오 감독은 “이걸 해내지 못하면 다음은 없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한 달에 한 편씩 작품을 썼다”며 “다섯 편이 모였을 때 민음사에서 출간 제안을 받고 이후부터는 책이 나온다는 걸 생각하며 썼다”고 설명했다.

“우울한 감정을 파고드는 건 커다란 용기와 인내심이 필요했어요. 하지만 나를 괴롭히는 괴물을 소설을 통해 토해 놓고 보니 일종의 해소감을 느낍니다.”원고를 끝낸 뒤엔 “기획자의 마인드가 살아났다”고 한다. 오 감독은 “감독은 원천 창작도 하지만, 그것을 풀어서 관객에게 보여 주는 기능적인 역할까지 하지 않느냐”며 “(소설을) 확장해서 재미나게 풀어 보고 싶어 말립과 음악을 만들게 됐다”고 전했다.

그 결과로, 같은 제목의 연주 앨범이 유니버설뮤직을 통해 스포티파이, 애플 뮤직 등 음원 플랫폼에서 공개됐다. 오 감독은 이날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우리, 조향사 김활, 극연출가 김진아, 프로듀싱 어드바이저 남윤주와 함께 기획한 공연을 선보였다. 소설에서 영감을 얻은 음악, 무용과 향을 경험하는 자리였다.

“지난 1년 동안 ‘자기 검열’을 깨자며 망설임 없이 책을 썼어요. 글을 쓸 땐 ‘쫄지 말자, 더 멀리멀리 가자’는 마음밖에 없었는데 지금 가장 쫄아 있는 것 같습니다.”

이제 그의 소설이 독자를 만날 시간이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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