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이 안 보여 막막할 때 하늘은 보여 감사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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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60주년 맞은 배우 송승환
난타 성공-평창올림픽 감독 등
기록 모아 책 펴내고 전시 열어

송승환 배우가 데뷔 60주년 기념 전시 ‘나는 배우다, 송승환’이 열리는 서울 종로구 후지시로 세이지 북촌스페이스에서 40년 전 찍은 자신의 사진 앞에 섰다. 전시와 동명의 책에는 그가 여덟 살에 KBS 라디오로 데뷔한 때부터 겪은 인생의 드라마틱한 순간들을 담담히 적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송승환 배우가 데뷔 60주년 기념 전시 ‘나는 배우다, 송승환’이 열리는 서울 종로구 후지시로 세이지 북촌스페이스에서 40년 전 찍은 자신의 사진 앞에 섰다. 전시와 동명의 책에는 그가 여덟 살에 KBS 라디오로 데뷔한 때부터 겪은 인생의 드라마틱한 순간들을 담담히 적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1985년 어느 날. 사진 속 좁은 분장실엔 ‘스물여덟 살’ 청년이 앉아 있다. 꽉 찬 스케줄로 쉴 새 없이 달리던 시절. 공연이 끝나고 녹초가 된 몸을 의자에 구겨 넣고 쉬는 모습. 배우 송승환(68)은 40년 전 자신의 사진을 크게 프린트해 서울 종로구 후지시로 세이지 북촌스페이스에 걸었다. 당대 최고의 MC이자 라디오 DJ였고, 이후 공연 제작자로도 승승장구한 그가 예인(藝人)으로 산 60년을 돌아보는 전시 ‘나는 배우다, 송승환’(22일까지)을 위해서였다.

개막 하루 전인 10일 전시장에서 만난 송 배우는 여러 감정이 교차하는 듯했다. 1965년 아역 성우로 데뷔해 1969년 동아연극상에서 역대 최연소로 특별상을 받으며 줄곧 스타였던 인생. 길고 긴 세월이 담긴 3000여 장의 사진 중에 150장을 추려 내며 그는 “20대 때가 가장 많이 생각났다”고 한다.

“연극, 영화, 드라마, 쇼프로그램 MC까지 혼자 도저히 못 할 일들이 밀려들었어요. 그땐 제대로 된 매니저 시스템도 없었거든요. 고민 끝에 하루를 오전, 오후, 밤으로 3등분했습니다. 30일이 아니라 90일 동안 일하는 거라 여기니 조금 여유가 생겼어요.”

그래서일까. 언젠가부터 송 배우의 인생은 주어진 조건에서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현실로 만드는 시간이 줄곧 이어졌다. 2003년 ‘난타’의 한국 최초 브로드웨이 진출, 2018년 평창 겨울올림픽 개·폐회식 총감독 등 굵직한 사건이 적지 않다. 이런 기록을 전시와 동명의 책 ‘나는 배우다, 송승환’(뜨인돌)에 담아냈다.

책에서는 그가 눈물을 흘렸던 순간들도 털어놨다. 하나는 ‘난타’의 첫 해외 공연 날, 또 하나는 시력 악화(황반변성·망막색소변성증)를 알게 됐을 때다.

“난타가 마침내 스코틀랜드 에든버러국제페스티벌 무대에 오르고 기립박수를 받을 때 눈물이 나더군요. 그다음은 눈이 나빠졌을 때예요. 여러 병원에 다녔는데 방법이 없다니 실망스러워 울음이 났습니다.”

송 배우는 모두가 난타의 해외 진출에 고개를 저었을 때도 배우, 스태프들과 끊임없이 의욕을 다지며 ‘공통의 꿈’을 현실로 만들었다. 바로 앞 사람조차 알아보기 힘들어졌을 때도 그는 굴복하지 않았다. 하룻밤 자고 일어나 “그래도 하늘은 보이니 감사한 일”이라며 다음 할 일을 찾았다고 한다. 그런 자기 인생을 송 배우는 “미리 대본을 읽었다면 (출연을) 거절했을 드라마”라고 했다. “제 인생은 우여곡절이 너무 많아 개연성과 리얼리티가 없어요. 나이 먹으면 힘들었던 일이 조금은 밝게 채색되잖아요. 굳이 과거의 힘든 순간을 전부 되살리고 싶진 않은 마음이죠.”

60년을 돌아보는 전시지만 송 배우는 따로 개막식도 개막 인사도 준비하지 않았다. 그저 매일 오후 전시장에 머물며 그간 출연·제작한 약 200편의 작품을 함께한 이들을 맞이하려 한다. ‘그래도 정리하는 한마디가 있으면 좋지 않겠느냐’는 질문에 “겨울에 공연할 거니까 보러 와, 이 한마디면 충분하다”고 했다.

“이제 복잡한 건 제쳐 두고, 자신에게 좀 더 가까워질 수 있는 배우를 하다 죽고 싶다”는 그가 가장 애착을 가지는 역은 뭘까. 주저 없이 ‘유리동물원’의 톰과 ‘더 드레서’의 극단 대표 겸 노배우 선생님(Sir)을 꼽았다.

“꿈이 많은데 가장 노릇을 하느라 집을 벗어나지 못했던 소년 톰. 마지막 공연은 윤여정 선배와 했는데 왠지 톰이 저를 닮아 세 번이나 맡았어요. 지금은 ‘더 드레서’의 노배우가 나와 비슷하다 느껴요.”

배우로서 자신의 인생이란 대본은 거절하고 싶다던 송 배우. 그럼 제작자라면 그의 삶은 어떤 공연으로 만들었을까. 그의 답은 단단하고 묵직했다.

“글쎄요. 생각해 본 적은 없는데, 극적인 순간도 있긴 한데, 재미가 있을까요. (현실을 긍정하는 이야기?) 아마 그렇겠죠. (토니상을 받은)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이 아니라 ‘확실한 해피엔딩’이 된다면 좋겠네요.”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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