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로 통제요? 지금 이 정도면 방치된 수준 아닌가요?”
12일 대전 중구 유천동 유등교 밑 산책로에서 만난 이민욱 씨(45)는 끊어진 통제선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유등교는 올해 7월 10일 시간당 50㎜가 넘는 폭우로 상부 슬래브가 침하되면서 통행이 전면 차단된 곳이다.
매일 이 근처에서 운동을 하고 있다는 이 씨는 “처음 다리가 침하된 날 교량 위 차도는 통제가 됐지만, 그 아래 산책로는 이틀 정도 지나서야 통제가 되기 시작했다”며 “관리가 부실한 탓인지 어느순간부터 시민들이 아무렇지 않게 이 곳을 지나다니고 있다”고 전했다.앞서 대전시는 유등교 침하 이후 안전을 위해 교량 하부에 있는 산책로와 자전거도로 통행을 전면 차단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이날 유등교를 직접 살펴본 결과 교량 하부는 안전에 심각한 위협이 가해지고 있었다. 여전히 유등교는 육안으로만 봐도 휘어있었고, 교량을 받치는 기둥 일부는 뒤틀린 채 아슬하게 다리를 지탱 중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책로와 자전거도로 통행 차단은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었다.
통행을 막는 주황색 안전끈은 훼손돼 있거나 끊어져 있었고, ‘구조물 붕괴 위험, 절대 접근금지’라는 문구가 적힌 큰 철제 간판은 산책로 옆으로 치워져 있었다. 교량 바로 위엔 ‘유등교 추가 침해 및 붕괴의 우려가 있으니 산책로 통행을 절대 금지합니다’라는 안내가 적힌 대형 현수막이 내걸려 있었지만, 시민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이 곳을 통행하고 있었다. 5분도 채 안된 시간 동안 시민 20여 명이 걷거나 뛰면서 지나갔고, 자전거를 탄 시민 12명도 교량 하부를 지나갔다. 심지어 일부 시민은 교량 하부에 설치된 의자에서 휴식을 취하기도 했다. 혹시라도 다리가 무너진다면 인명 피해로 이어질 가능성이 컸다.
교량 하부 천장에는 낙석 등을 방지하기 위해 초록색으로 된 그물망이 덮여져 있었는데, 이마저도 위태로운 상태였다. 그물망 일부는 찢어져 있고, 교량에서 떨어져 나간 시멘트 덩어리들이 언제 산책로로 떨어질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시민 안전이 위협받고 있음에도 대전시는 마땅한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당초 구상한 철거 및 임시교량 설치 등의 계획이 틀어졌기 때문이다. 시는 지난 8월 유등교 철거 후 재가설 방침을 세웠고, 주민 불편 최소화를 위해 일단 임시교량을 연내 설치하기로 했다. 그러나 업체를 선정하는 입찰 과정에서 적격 판정을 받은 업체들이 “짧은 기간동안 지장물 철거와 동시에 시공을 해야하는 어려움이 있다”는 이유로 잇따라 입찰 포기 의사를 밝히며 착공이 지연된 것이다.시 관계자는 “공사가 시작됐다면 유등교에 상주하는 인력이 배치됐을 것이고, 그에 따른 시민들의 통행 통제도 원활히 이뤄졌을 것”이라며 “현재 매주 1, 2번 현장을 확인해 조치를 취하고 있는 상황으로 안전관리 등 부족한 부분에 대해 더욱 신경쓰겠다. 시민들께서도 접근 금지 안내판 등을 임의로 치우지 말고, 교량 하부 접근을 자제해 주길 당부한다”고 말했다.
1970년 12월 건설된 유등교는 54년간 사용된 교량이다. 지난 여름 폭우로 상부 슬래브가 침하됐다. 교량은 각 교각의 지속적인 세굴 현상(유속이나 유량 증가로 인한 침식)으로 인해 내려앉은 것으로 조사됐다. 유등교에 대한 긴급정밀 안전점검 결과에선 보수·보강이나 개축이 필요한 E(불량) 등급이 나온 바 있다.
이정훈 기자 jh8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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