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랑 딸이랑 같이 만들었어요”...사랑은 종이를 타고, 가족의 삶 담긴 ‘인생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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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7일 서울 중구 남산골한옥마을 ‘서울 정도 600주년 기념 타임캡슐’ 광장에서 조영헌 고려대 교수와 딸 조수하 씨, 부친 조의현 씨(왼쪽부터)가 가족신문을 소개하며 웃고 있다. 이들 가족의 일상을 담은 ‘비둘기집’은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이 타임캡슐에 실렸다. 한주형 기자

지난달 27일 서울 중구 남산골한옥마을 ‘서울 정도 600주년 기념 타임캡슐’ 광장에서 조영헌 고려대 교수와 딸 조수하 씨, 부친 조의현 씨(왼쪽부터)가 가족신문을 소개하며 웃고 있다. 이들 가족의 일상을 담은 ‘비둘기집’은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이 타임캡슐에 실렸다. 한주형 기자

“코로나19 이후 잠시 휴간 중이지만 ‘종간’(신문 발행을 종료하는 것)은 없습니다. 딸이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면 복간하겠다고 열의를 보이고 있으니, 조만간 다시 발행되지 않을까 합니다.”

따사로운 4월의 봄날, 창녕 조씨 3대가 서울 중구 남산 한옥마을을 찾았다. 인터뷰를 시작하기 전부터 한참 종이신문 예찬론을 펴던 조영헌 고려대 역사학과 교수(53)는 “이번 매일경제 인터뷰를 계기로 ‘호외’ 같은 특별판 신문을 내봐야겠다”면서 웃었다. 무려 35년간 가족신문을 만들어온 발행인이자 편집인다웠다. 옆에서 함께 걷던 부친 조의현 씨(80)와 딸 조수하 씨(25)도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들은 1984년부터 2019년까지 ‘비둘기집’이라는 가족신문을 발행해왔다. 창간일은 1984년 5월 25일로 조 교수가 초등학교 6학년, 둘째 아들 조영한 씨가 4학년이던 때다. 부친인 조의현 씨는 “둘째 아이 학급신문 만드는 것을 도와주다가 우리도 가족신문을 만들어보자는 아이디어를 냈다”면서 “문필가 집안답게 30년 넘게 꾸준히 신문을 발행했다는 것이 참 자랑스럽다. 두 아들 모두 교수가 된 것도 가족신문 덕분이 아닌가 한다”고 말했다.

비둘기집은 초기 몇 년간 매달 발행됐고 이후 두 달에 한 번, 네 달에 한 번으로 줄었지만 ‘가문의 역사’를 기록한 생생한 사료로 남았다. 자녀 조수하 씨와 조수근 씨의 삶은 ‘임신 확인’부터 대학 입학 때까지 애정 가득한 아버지 조 교수의 눈으로 상세히 기록됐다. 35년간 총 259호가 발행된 비둘기집은 조 교수에게도 젊은 날의 타임캡슐이자 그 시절로 돌아가는 타임머신 같은 존재다.

조 교수는 “어린 마음에 공부와 병행하기 힘들 때도 있었지만, 가족신문을 꾸준히 만든 것이 제가 역사학자가 되는 데 영향을 미친 것 같다”면서 “딸 수하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우리 가족은 프라이버시가 없다’고 말하곤 하는데, 가감 없이 솔직하게 기록한 덕에 시대상을 엿볼수 있는 귀한 자료로 쓰일 수 있게 됐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비둘기집 창간호

비둘기집 창간호

실제로 비둘기집은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한옥마을에 있는 ‘서울 정도 600주년 타임캡슐’에 보관됐다. 창간 10주년이던 1994년의 일이다. 이 소식은 1994년 12월 25일자 비둘기집 125호에 보도됐다. 이들 가족의 일상은 2394년 11월 29일 후손들에게 공개된다. 조의현 씨는 “평범한 한 가족의 삶이지만, 후손들이 ‘기록이란 이렇게 중요한 것이구나’라고 생각해줬으면 좋겠다”면서 “매경 독자님들도 특별한 이벤트가 있을 때 꼭 가족신문을 만들어보시라”고 추천했다.

조의현 씨는 50년 넘게 신문을 읽어온 마니아다. 그는 “대림(현 대림바스)에 임원으로 있을 때는 매경을 참 열심히 읽었다. 요즘도 아침에 눈을 뜨면 첫 일과가 30분간 신문을 읽는 일인데, 평생 신문과 함께해왔다는 것에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조수하 씨도 “어릴 적부터 여러 신문을 읽고 직접 가족신문 기사도 쓰고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문해력과 문장력을 기를 수 있었다”고 했다. 특히 그는 “가족신문 표지 왼쪽 상단에 ‘자강불식: 스스로 힘쓰고 쉬지 않는다’라는 문구가 항상 써 있었다”면서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가족신문과 본인들의 삶으로 이 가치를 보여주시고 증명해주셨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20대에게도 종이신문과 가족신문은 여전히 유용할까. 조수하 씨는 “가족들이 다같이 모여서 어떤 기사를 넣을지 편집회의를 하고 기사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추억이 쌓이고 유대감이 커진다. 글쓰기 능력과 창의적인 사고력도 증진시킬 수 있으니 아이들 교육용으로도 매우 좋다”면서 “자녀가 나중에 커서 보면 제가 그랬던 것처럼 매우 자랑스러워할 테니, 꼭 한번 도전해보셨으면 좋겠다”고 추천했다.

조 교수에게 역대 비둘기집 3대 뉴스를 뽑아달라고 했다. 본인이 중고등학교 시절 가족신문으로 방송에 보도된 것, 동생과 같은 해(1993년)에 대학에 입학한 것, 1998년 결혼해 두 남매의 출생과 어린 시절을 기록한 것을 꼽았다.

가족신문의 의미를 설명하던 그는 얼마전 국립진주박물관에서 열린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라는 전시를 소개했다. 조선 시대 문인 오희문이 임진왜란 전후로 쓴 10년치 일기 ‘쇄미록’을 근거로 한 전시다. 조 교수는 “400년 전 선조들이 고난과 어려움 속에서 살아갔던 일기를 통해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는 깨달음을 얻었듯, 우리 가족신문을 보는 400년 후 후손들도 이 평범한 진리에서 살아갈 힘을 얻었으면 한다”고 했다.

가족신문 발행인서 역사학자 된 조영헌 교수
“가족신문은 나의 타임캡슐이자 타임머신”

지난달 27일 서울 중구 남산골한옥마을 ‘서울 정도 600주년 기념 타임캡슐’ 광장에서 조영헌 고려대 교수와 딸 조수하 씨, 부친 조의현 씨(오른쪽부터)가 당시 일화를 이야기하며 웃고 있다. 이들 가족의 일상을 담은 ‘비둘기집’은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이 타임캡슐에 실렸다. 한주형 기자

지난달 27일 서울 중구 남산골한옥마을 ‘서울 정도 600주년 기념 타임캡슐’ 광장에서 조영헌 고려대 교수와 딸 조수하 씨, 부친 조의현 씨(오른쪽부터)가 당시 일화를 이야기하며 웃고 있다. 이들 가족의 일상을 담은 ‘비둘기집’은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이 타임캡슐에 실렸다. 한주형 기자

▶ 조영헌 교수 일문일답

-‘나에게 가족신문이란 ○○○이다.’ ○○○란을 채운다면 어떤 단어로 넣으시겠습니까?

▷내 젊은 날의 타임캡슐(정확한 역사 기록이라는 측면에서)이자 타임머신(시간여행의 안내자)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 우리 가족신문이 서울정도 600주년 타임캡슐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2394년 11월 29일 후손들에게 공개될 예정인데요. 후세대가 가족신문을 보고 어떤 생각을 할 것 같으십니까. 혹시 이렇게 봐주면 좋겠다는 희망사항이 있으세요?

▷400년 전 우리 선조들의 삶이 어떠했을까? 한 번쯤 생각해보고, 박물관 전시회 정도를 하면서 삶의 지속성에 대한 되돌아봄의 기회가 있었으면 더 바랄 게 없겠습니다.

얼마전 한국 진주국립박물관에서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는 주제로 전시회가 있었는데요. 조선시대 문인 오희문 님의 ‘쇄미록’이라는 일기 자료를 근거로 한 것이었습니다. 임진왜란 전후 10년 간 우리 조상들의 삶이 담겨 있죠. 400여 년 전 선조들이 고난과 어려움 속에서도 살아갔던 일기를 통해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는 깨달음을 얻은 것이 인상적이었어요. 400년 후 후손들도 어떤 역경 속에서도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는 평범한 진리를 되새길 수 있기를, 삶에 힘과 격려가 되기를 바랍니다.

-비둘기집을 보면 우리 가족들의 ‘역사’가 보입니다. 드라마 파친코 저리가라 할 만큼 현대사를 관통해온 가족들 같아요.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 3개씩 꼽아주십시오.

▷비둘기집으로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 방송에 보도된 것

삼수하여 동생과 같은 해(1993년)에 대학 입학 (“투런 홈런”이라는 제목의 비둘기집 기사)

1998년 결혼 & 두 아이(딸과 아들)의 출생과 어린 시절에 대한 기록

-초등학교 6학년 시절부터 가족신문을 발행하셨으니, 국내 최연소이자 최장수 발행인 아닌가 합니다. 휴간이나 폐간하고 싶다는 생각은 안드셨나요? 가족신문 발간 최대 고비는 언제였나요?

▷폐간에 대한 생각은 거의 없었지만, 휴간에 대한 생각은 얼마나 자주 했는지 모릅니다. 특히 고등학생이 된 후와 재수, 삼수 시절에는 입시 준비로 인한 스트레스와 부담감으로 더욱 그러했습니다.

발간 중단의 최대 고비는 제가 1992년 1학기 외국어대 영어과에 다니다가 삼수를 결심하고 다시 입시에 준비할 때였어요. 당시 동생은 고3이었거든요. 그때 아버지는 폐간을 막기 위해 매달 2면과 3면을 이솝우화로 채우기도 하셨죠(웃음). 그래도 1면과 4면의 가족뉴스 기사는 계속 써야 했는데, 어떻게 했는지 지금 생각해도 신기합니다.

자연스럽게 휴간 된 것은 코로나 시기입니다. 아버지도 연세가 많이 드셔서 더 이상 푸시를 하지 못하시고, 아이들이 커 가면서 가족의 프라시버스를 외부에 어디까지 알려야 하나 고민도 생기다보니 자연스럽게 휴간 상태가 되었네요. 강조하지만 종간이 아니고 휴간입니다.

-스트레이트 기사부터 칼럼, 포토뉴스, 만평까지 올라운드플레이어로 활약하셨는데, 가장 잘하는 분야나 좋아하는 종목은 무엇입니까.

▷기사를 기획하고, 제목을 뽑고 편집하는 일을 오래 하면서 나름대로 장점이 생긴 듯 합니다. 동생과 제가 번갈아가면서 담당했는데요. 시의성에 맞는 주제이면서도 가정의 주제와 맞는 것을 찾을 때면 희열을 느꼈습니다. 기자님들도 그러시겠죠?

매년 몇 차례 썼던 주장하는 글(논설문)이나 칼럼의 글도 의미있는 일로 기억됩니다. 211호(2009년 4월)에 쓴 “창간 25주년을 앞두고 : 기록문화 유산으로의 가능성?”은 가족신문이 아니었으면 쓸 수 없는 글이었어요. 지금도 잡지나 신문에 칼럼 글을 쓸 때면 ‘조기교육의 효과’를 느끼고 있지요.

-앞으로도 계속 가족신문을 발행하실 계획인지요? 발행인이자 교육자로서 가족신문의 교육적 효용에 대해 한 말씀 해주세요.

▷코로나 이후 중단된 ‘비둘기집’이 이번 인터뷰를 계기로 조금은 새롭고 가벼운 형태로 발행이 이어진다면 좋을 듯 합니다.

가족신문은 제게 마감일에 맞추어 글을 쓰는 훈련을 시켜 주었습니다. 지금도 마감에 맞추어 글을 쓰는 교수이자 역사학자의 길을 가고 있는데, 청소년기부터 축적된 꾸준한 글쓰기의 힘은 큰 자산이라 생각합니다.

가족들과 소통하는 계기를 마련해준다는 것도 장점입니다. 점차 가족이 해체되어가는 시대적 풍조 속에서 가족의 의미, 가족들과 어떻게 소통해야 하는지, 그리고 함께 무언가를 만들어간다는 공동체 의식을 심어주는데 가족신문이 효용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20대 조수하 씨의 가족신문 예찬
“돈으로 살 수 없는 위대한 유산”

2019년 발행된 비둘기집 최신호. 할아버지 조의현 씨의 책 출간 소식과 인터뷰가 실렸다. 대림에서 오래 일한 조 씨는 한국화장실연구소 소장으로, 국내 화장실 문화를 바꾸는 데 앞장섰다.

2019년 발행된 비둘기집 최신호. 할아버지 조의현 씨의 책 출간 소식과 인터뷰가 실렸다. 대림에서 오래 일한 조 씨는 한국화장실연구소 소장으로, 국내 화장실 문화를 바꾸는 데 앞장섰다.

▶조수하 씨 일문일답

-‘나에게 가족신문이란 ○○○이다.’ ○○○란을 채운다면 어떤 단어로 넣으시겠습니까?

▷나에게 가족신문이란 돈으로 살 수 없는 유산이다.

가족의 사랑은 사실 세상적인 값어치를 매길 수 없을 정도로 위대하다고 생각해요. 그런 소중한 가치가 담겨있는 가족 신문은 가족이 저에게 물려주신, 정말 저에게 있어 가장 큰 선물인 것 같아요.

-우리 가족신문이 서울정도 600주년 타임캡슐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2394년 11월 29일 후손들에게 공개될 예정인데요. 후세대가 가족신문을 보고 어떤 생각을 할 것 같으십니까. 혹시 이렇게 봐주면 좋겠다는 희망사항이 있으세요?

▷그때쯤이면 아마 거의 종이 신문이 사라질 것이라고 예상되는데요, 손글씨로 하나하나 적은 글자부터 타이핑해서 프린트한 종이신문까지, 후세대가 보면서 우아 이 시대에는 이런 식으로 기록을 남겼구나~ 하고 신기하고 재미있게 바라봐주면 좋겠어요.

그 때의 가족관과 가치는 지금과 많이 달라져있을 것 같아요. 요즘 세대도 저희 할아버지 세대에 비해 개인주의 성향이 강해지고 점점 가족 공동체의 유대감이 줄어들고 있잖아요.. 그래서 조금은 아쉬운 마음도 있거든요.

2394년이 너무 먼 미래라 저희 후손의 대가 끊기지 않고 이어져있을지 아닐지도 모르고, 감히 제가 그때의 사회 모습을 예상조차 못하겠지만, 가족들 사이의 정과 사랑은 그래도 남아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그런 상태에서 과거의 우리 조상도 서로 위해주고 아껴주며 살았구나~ 하면서 아름답게 봐줬으면 좋겠어요.

-비둘기집을 보면 우리 가족들의 ‘역사’가 보입니다. 드라마 파친코 저리가라 할 만큼 현대사를 관통해온 가족들 같아요.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이 있나요?

▷동생이 보스턴에서 태어났는데, 아버지가 June 과 July를 헷갈려서 한국에 출생신고를 잘못해서 가정법원에 정정신청을 했다는 기사가 있었어요. 제목이 “수근(동생 이름), 자신의 생일 되찾아” 였는데 보면서 너무 웃기고 귀여웠어요. 이런 자잘하고 재밌는 에피소드들이 저는 기억에 많이 남는 것 같습니다.

-엄마 뱃속에 있던 시절부터 어릴 적 귀엽고 예쁜 모습들이 가족신문에 다 남아있는 수하님은 정말 행운아인 것 같아요. 어릴 적 일기와 사진, 직접 그린 그림이 실린 가족신문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세요?

▷비둘기집을 읽으면서, 제 아주 어릴적 시절을 자세하게 알게 되는 과정이 참 재밌었어요.

특히 “수하가 독자님들께 첫 인사드려요~” 하는 기사에서는, 첫손녀를 반기는 가족들의 기대와 사랑이 느껴져서 행복했어요. 또 저의 성장 이야기를 중간 중간 담아준 편집자님(아버지) 덕분에, 괜히 뿌듯하게 기사들을 읽었던 것 같아요. 막 제가 했던 옹알이들이나 말들, 제가 좋아하는 음식이나 특징, 제가 그렸던 그림이 담긴 신문들을 볼때, 저도 몰랐던 제 모습을 알게 되는 느낌이였습니다.

저는 당연히 기억조차 못하는 사실들이, 기록으로 남겨져 있으니까 기분이 이상하더라구요. 어릴 적 가족 다같이 갔던 여행이나 함께했던 이벤트들 등 오랜 시간이 지나면 잊혀질 수 있는 기억의 역사가 세세하게 보존되어져있다는 것이 너무나도 특별한 것 같아요. 그래서 요즘도 종종 다시금 꺼내 읽어보고 웃음 짓곤 해요.

- 대한민국에 이렇게 훌륭한 가풍을 가진 가문은 유일할 것 같아요. 수하님이 할아버지와 아버지에게서 가장 본받고 싶은 자세는 어떤 것인가요? 나라면 우리 아이에게 이렇게 다르게 해줄 것 같다는 게 있으면 함께 말해주세요.

▷할아버지와 아버지께서 84년부터 시작해서 이어온 저희 가족신문은 꾸준함과 끈기를 바탕으로 만들어낸 결과라고 생각하는데요, 저희 가족신문이 과거 KBS 프로그램 ‘오늘’, MBC 프로그램 ‘아침 만들기’ 등 여러 방송에 출연했고, 서울이 수도가 된지 1000년을 기념하는 서울정도 1000년 기념 타임캡슐에 묻히게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정말 저희 가족이 자랑스럽고 존경스러웠어요.

“자강불식: 스스로 힘쓰고 쉬지 않는다“이 문구가 가족신문의 표지 왼쪽 상단에 항상 써있었는데요, 이 사자성어처럼 비둘기집이 지니고 있는 가장 중요한 가치는 지속성과 성실함인 것 같아요. 할아버지와 아버지께서는 비둘기집을 통해서도, 그분들의 실제 삶을 통해서도 저에게 이 가치를 보여주시고 증명해주신 것 같아요.

저도 두 분처럼 쉬지 않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자세를 본받고 싶어요. 저는 아직 한참 부족하다고 느끼거든요. 나중에 제 미래 아이들이 저를 보면서, 제가 저희 부모님과 조부모님께 느끼는 이런 감정과 존경심을 느낀다면 전 정말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 같아요 .

-결혼해서 아이를 낳는다면, 수하님만의 가족신문을 만들어볼 의향이 있어요? 자랑스러워할까요?

▷네, 당연하죠! 제 미래 아이들이 협조해준다면? 원한다면 비둘기집을 다시 이어서 발행하고 싶은 욕심도 사실 있어요. 제가 성인이 되고나서는 바쁘고 정신없다는 핑계로 서서히 신문 발행이 뜸해지고 끊어져서 아쉬운 마음이 컸거든요.

다같이 모여서 회의하고 기사를 작성하는 가운데 가족 간의 추억이 쌓이고 유대감이 커질뿐만 아니라 글쓰기 능력과 창의적인 사고력도 증진한다고 생각해서 아이들 교육용으로도 매우 좋다고 생각해요. 나중에 커서 보면 제가 그랬던 것처럼 매우 자랑스러워할 거라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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