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현송은 '한국의 밴 버냉키'가 될 수 있을까 [여기는 논설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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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2026.04.21 18:16 수정2026.04.21 18:17

신현송 신임 한국은행 총재는 지금까지 없었던 중앙은행 수장의 롤모델을 보여줄 수 있을까.

중앙은행 총재는 통상 2가지 부류로 구분된다. 물가 안정을 중시하는 매파(hawkish)와 성장을 앞세우는 비둘기파(dovish)다. 신 총재는 낡은 이분법을 거부했다. 대신 “중요한 것은 복잡한 세계를 이해하는 판단력과 분석”이라고 했다. 상황에 맞는 유연한 대응을 강조한 발언이다.

○‘매파’냐 ‘비둘기파’냐 이분법 거부

환율을 바라보는 시각도 이전과 달랐다. 과거에는 적정 환율 수준에 초점을 맞췄다면, 신 총재는 환율을 ‘금융 시스템의 위험 흡수 능력을 나타내는 지표’로 본다고 했다. 숫자를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구조를 바꾸려 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그는 최근 환율 급등의 원인으로 실물 자본 유출이 아닌 NDF(역외차액결제선물환) 시장의 왝더독(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현상을 지목했다. 환율 방어선을 얼마로 잡겠느냐는 질문에 답하지 않고, 왜 시장이 그렇게 작동하는지를 설명했다.

통화정책도 마찬가지다. 그는 청문회에서 “통화정책의 핵심은 물가 안정”이라고 전제한 뒤 “중동 리스크가 계속 진행돼 근원물가나 기대인플레이션 상승으로 전이되고 2차 파급효과가 있으면 통화정책을 써야 한다”고 밝혔다. 핵심은 금리 인상 시사가 아니라 ‘2차 파급효과’라는 분석 틀이다. 에너지 가격보다는 그것이 기대인플레이션을 통해 금융시스템 전반으로 전이되는 구조를 먼저 보겠다는 뜻이다.

[여기는 논설실] 신현송은 ‘한국의 밴 버냉키’가 될 수 있을까

○과거와 다른 시장 구조 접근법

신 총재의 언어와 현안에 대한 접근법은 그가 어디에서 왔는지를 보여준다. 그는 ‘중앙은행의 중앙은행’으로 불리는 BIS(국제결제은행)에서 경제자문관과 통화경제국장으로 12년을 보냈다. BIS는 2008년 이후 세계 금융시스템의 취약성을 가장 먼저, 체계적으로 분석해온 곳이다. 거기서 레버리지, 대차대조표, 시장구조가 거시경제로 피드백되는 경로를 연구했다. 기준금리를 올리고 내리는 것이 통화정책의 전부라고 보는 시각과 다른 출발점이다.

가계부채에 대한 ‘직구 발언’도 이와 일맥상통한다. 그는 “가계 부채가 성장의 발목을 잡지 않는 임계점은 국내총생산(GDP)의 85% \”라며 “통화 정책으로만 해결될 사안은 아니며 공급 등 구조적인 정책이 병행돼야 할 것”이라고 했다. 한국의 지난해말 기준 가계부채 비율이 88.6%라는 점을 감안하면, 정부의 영역인 거시건전성 정책을 함께 써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물가, 환율방어? “시장 구조를 먼저 봐야”

그의 동료이자 국제금융 분야의 저명한 학자인 지안루카 베니그노 로잔대 경제학 교수는 최근 한 칼럼에서 신 총재를 벤 버냉키 전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에 비유했다. 버냉키는 1930년대 미국 대공황 연구를 바탕으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 맞서 경기회복을 이끌었다. 버냉키가 학문적 성과를 토대로 금융위기에 대응했듯이 신 총재도 런던정경대(LSE)와 프린스턴대학에서 쌓은 학문적 성취와 BIS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이 당면한 금융안정 과제를 해결할 것이라는 기대가 나온다. 지금 중앙은행 수장에게는 표준적인 인플레이션 타기팅 프레임워크 이상의 능력이 필요하다. 통화정책, 금융시장, 재정 문제 전반을 명료하게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취임사에 보여준 야심찬 포부

신 총재의 21일 취임사는 한은의 시야가 어디까지 넓어졌는지를 보여준다. 그는 취임 일성으로 “신중하고 유연한 통화정책 운영”을 말하면서, 금융안정을 전면에 놓았다.

눈에 띄는 대목은 ‘처방’이다. 그는 기존 건전성 지표에 더해 시장 가격지표의 움직임을 적극 활용해 조기경보 기능을 강화하겠다고 했다. 또 비은행 부문에 대한 정보 접근성을 높이고, 금융회사의 부외거래와 비전통 금융상품까지 분석 범위를 넓히겠다고 밝혔다.

이는 통상적인 중앙은행 총재의 ‘문법’이 아니다. 기준금리 하나로 금융시스템 전체를 설명하던 시대가 지나갔다는 뜻이다. 은행 바깥에서 커진 위험, 장부 밖에 숨어 있는 익스포저, 가격 신호에 먼저 드러나는 불안정성을 더 이상 부차적인 변수로 취급할 수 없다는 인식이 읽힌다. 금융안정이 한은의 보조 과제가 아니라 물가안정과 동등한 책무로 떠오른 것이다.

○원화 국제화와 CBDC까지

신 총재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화폐의 신뢰와 지급결제 안정성을 지키기 위해 외환시장 24시간 개장 추진, 역외 원화결제 시스템 구축, 프로젝트 한강 2단계와 연계한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 및 예금토큰 활용 제고를 언급했다. 원화 국제화, 지급결제 혁신, 거시건전성 체계를 ‘삼각축’으로 묶겠다는 표현도 썼다. 이는 한국은행이 통화정책을 넘어 금융 인프라와 통화 질서의 설계자 역할까지 자임하겠다는 선언에 가깝게 들린다. 구조개혁 과제도 통화정책 운용의 중요한 일부라고 했다. 물가 금융안정 지급결제 환율 디지털 통화 구조개혁까지 모두 한은의 아젠다로 들어오는 순간, 중앙은행은 더 많은 책임을 져야 한다.

○중앙은행의 독립성은 지적 리더십에서

신 총재는 취임사에서 “우리 경제에 헌신할 기회를 갖게 돼 무한한 영광”이라고 했다. 그의 첫 데뷔 무대는 5월 금융통화위원회다. 인상, 인하, 동결 등 어떤 결정을 내리든 이유를 어떤 ‘언어’로 설명하느냐가 더 중요해졌다. 그는 “중앙은행이 신뢰의 구심점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중앙은행 독립성은 정치적 거리두기뿐만 아니라 문제를 정의하고, 정교한 분석의 토대를 제공함으로써 시장과 정부를 설득하는 지적 리더십을 발휘할 때 완성된다는 의미다. 5월 금통위는 신 총재가 과거와 다른 중앙은행 수장임을 증명하기 위한 첫 관문이다.

이심기 수석논설위원 sg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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