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로 스포츠의 중심은 언제나 '돈'이다. 프로야구 역시 예외가 아니다. 정규시즌과 포스트시즌이 끝나면 곧바로 FA(프리에이전트) 시장이 열린다. 이 시점부터 프로야구는 본격적으로 '돈의 언어'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FA 계약이 마무리되면 구단별 선수단 연봉 계약이 하나둘씩 발표된다.
이처럼 돈의 흐름이 극명한 프로야구에서, 이를 통제하는 가장 강력한 수단은 무엇일까. 지난 10년간 KBO(한국야구위원회)가 선택한 답은 명확했다. '신인 지명권'이다. KBO는 이 기간 메리트(승리수당) 금지, 이면계약 금지, 샐러리캡 제재 등 주요 제도 보완 과정에서 공통적으로 신인 지명권 박탈 또는 하락이라는 카드를 꺼내 들었다. 말 그대로 '전가의 보도'였다.
10년 전인 2016년 1월 12일 KBO 이사회는 이른바 '메리트' 금지를 위한 구체적인 제재 조항을 신설했다. 이전까지 메리트의 폐해는 꾸준히 지적돼 왔지만, 없애기는 쉽지 않았다. 치열한 순위 싸움 속에서 승리를 유도하기 위한 수단으로 메리트만큼 즉각적인 효과를 내는 장치도 드물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작용은 분명했다. 다른 팀 선수들과 메리트 내용을 공유하면서 구단들의 부담은 커졌고 경쟁은 과열됐다. 경기 전 상대 팀의 메리트 규모를 전해 듣고 사기가 떨어지는 경우도 있었다. 시즌 막판으로 가고 순위 싸움이 치열해질수록 메리트는 더욱 가열됐다.
결국 2015년 12월 윈터미팅에서 10개 구단 단장들이 큰 틀의 합의에 도달했고 이듬해 1월 KBO는 칼을 빼 들었다. 핵심은 제재의 '내용'이었다. 기존 야구규약 제83조(KBO 규약에 위반한 계약금 지급)에는 제81조(계약금), 제82조(간주계약금)를 위반할 경우 총재가 '적절한 제재'를 가할 수 있다고만 규정돼 있었다. 하지만 새로 마련한 세칙에 2차지명 1라운드 지명권 박탈과 제재금 10억 원을 명시했다.
이후 메리트는 KBO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췄다. 필자는 프로야구단 프런트로 근무하던 시절 메리트는 절대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 확신이 무색할 정도로 메리트는 한순간에 사라졌다. 제재금 10억 원도 적지 않은 금액이지만 결정적이었던 것은 2차지명 1라운드 지명권 박탈이었다. 지명권을 건드리는 순간 효과는 즉각적으로 나타났다.

지명권 박탈과 제재금 10억 원은 2년 뒤인 2018년 다시 등장했다. 11월 17일 KBO는 이면계약 금지 조항을 발표했다. 제재는 다음 연도 1차(현 신인드래프트 1라운드) 지명권 박탈과 제재금 10억 원이었다. 메리트 금지 때는 2차지명 1라운드 지명권 박탈과 제재금 10억 원이었으니 이보다 더 강했다. 효과는 역시 즉각적이었다. 프로야구에서 공공연하게 진행되던 이면계약은 한순간에 사라졌다.
이전까지 선수 계약에서 발표 금액과 실제 지급액이 다른 경우는 비일비재했다. 금액이 커질수록 선수와 구단 모두 부담이 커졌고, 이를 피하기 위해 액수를 낮게 발표하는 관행이 존재했다. 특히 FA 계약에서 이런 사례가 적지 않았다. FA 계약을 체결하면서 발표 금액을 선수와 상의해 조정하기도 했다.
지명권 박탈까지는 아니지만 비슷한 맥락의 제재는 2020년에도 등장했다. 샐러리캡 제도가 도입되면서 2회 연속 상한액을 초과할 경우 다음 연도 1라운드 지명권 9단계 하락, 그리고 초과분의 100%를 제재금(현 야구발전기금)으로 납부하는 제재 조항이 마련됐다. 지명권 박탈은 아니었지만 1라운드 지명권이 9단계나 하락한다는 점은 구단들에 상당한 압박이었다. 한 번의 초과는 감내하더라도 두 번 연속 위반은 프런트 책임론으로 이어질 수 있는 사안이었다.
그러나 2025년 9월 23일 KBO 이사회는 이 규정을 완화했다. 1라운드 지명권 9단계 하락과 초과분 100% 납부 규정을 2회 연속 초과 시에서 3회 연속 초과 시로 변경한 것이다.
이 변화는 같은 해 11월 FA 시장에 곧바로 영향을 미쳤다. FA 시장은 빠르게 과열됐다. 샐러리캡은 존재했지만, 체감되는 압박은 눈에 띄게 줄었다. 규정은 남아 있었지만 억제력은 약해졌다.

결국 지난 10년간의 제도 변화가 보여주는 답은 분명하다. 프로야구에서 가장 강력한 통제 수단은 '돈을 제한하는 규정'이 아니라 '미래를 건드리는 제재'라는 점이다. 신인 지명권은 단순한 선택권이 아니다. 구단의 중장기 경쟁력과 선수 육성, 리빌딩 전략이 모두 응축된 자산이다. 그래서 지명권을 박탈하거나 하락시키는 순간 구단은 곤란한 상황에 직면한다.
이처럼 구단들이 신인 지명권에 극도로 민감하게 반응하는 가운데 2020년부터 지명권 트레이드가 허용되면서 1라운드 신인 지명권 역시 세 차례 양도됐다. 모두 키움 히어로즈가 지명권을 얻어 2024 신인 드래프트 1라운드에서 전준표(LG 최원태·이하 트레이드 선수), 2025 김서준(NC 김휘집), 2026 박한결(KIA 조상우)을 뽑았다.
메리트 금지와 이면계약 금지, 샐러리캡 제재의 사례를 감안하면 1라운드 신인 지명권은 구단 입장에서 결코 가벼운 선택이 아니다. 해당 시즌 우승을 위해 마지막 퍼즐을 맞출 때, 그것도 내부적으로 모든 리스크를 감수하겠다는 판단이 섰을 때에만 가능한 결정이다.
필자 역시 단장이던 2021년 선발 투수 영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다음 해 1차 지명권 트레이드를 요구받은 적이 있다. 당시 선발 투수가 절실했지만 그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만큼 1라운드 신인 지명권을 내준다는 것은 쉽지 않은 선택이다.
앞으로도 신인 지명권은 KBO 야구규약에서 가장 강력한 '전가의 보도'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제재금보다 가치가 크고, 부정적인 여론의 파장도 만만치 않다. 그래서 어떤 제재보다도 구단의 행동을 즉각 바꿀 수 있다. 지난 10년간 KBO는 그 사실을 반복해서 증명해 왔다. 호환마마보다 무섭다는 표현은 이럴 때 써도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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