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1위 휴대폰 제조사였지만 스마트폰 전환에 실패해 추락한 노키아가 부활하고 있다. 휴대폰사업부를 마이크로소프트(MS)에 넘기며 침몰을 예고한 지 13년 만이다. 인공지능(AI) 시대가 열리면서 피지컬 AI의 ‘신경망’인 6세대(6G) 통신과 AI무선접속망(AI-RAN) 장비회사로 전환한 전략이 주효했다.
9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증시에서 노키아 주가는 13.85달러로 마감했다. 지난 3일 장중 17.45달러까지 오르며 52주 최고가를 쓴 뒤 조정받았지만 올해 들어 주가가 2010년 이후 최고 수준으로 올랐다.
부활 배경에는 AI산업의 ‘패러다임 시프트’가 있다. 지금까지 AI 인프라 경쟁은 데이터센터에 얼마나 많은 그래픽처리장치(GPU)를 확보하느냐에 집중됐다. 하지만 AI가 로봇, 드론, 자율주행차, 스마트팩토리 등 현실 세계의 기계를 움직이는 피지컬 AI로 확산하자 초저지연·고신뢰 통신망의 중요성이 급격히 커지고 있다. AI가 데이터센터 밖으로 나오려면 연산 능력뿐만 아니라 현장 기기와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연결하는 네트워크가 필수다.
노키아가 보유한 통신장비와 네트워크 기술은 이 같은 꿈을 가능하게 해준다. 특히 6G는 기존 통신망과 달리 처음부터 AI를 내장한 형태로 설계된다. 기지국이 AI 추론과 산업용 서비스까지 처리하는 데이터센터가 된다는 의미다. 엔비디아가 지난해 11월 노키아에 10억달러(약 1조5000억원)를 투자하며 지분 2.9%를 취득한 배경이다.
핀란드 에스포의 노키아 본사에서 만난 마크 앳킨슨 노키아 무선부문 총괄 “과거 통신망의 주요 트래픽이 음성, 비디오, 데이터였다면 앞으로는 거대한 규모의 AI 데이터가 새로운 트래픽이 될 것”이라며 “통신과 AI의 통합은 피할 수 없는 흐름”이라고 말했다.
"기지국이 AI 데이터센터 된다"…엔비디아, 노키아에 10억弗 베팅
제지 → 휴대폰 → 통신장비로 무한변신
노키아에 지난해 11월 10억달러(약 1조5000억원)를 투자한 엔비디아는 노키아의 통신장비가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로 전환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데이터센터로 바뀌는 기지국들은 엔비디아 주력 제품인 그래픽처리장치(GPU)의 새 수요처가 된다. 노키아도 5세대(5G) 통신에 이어 6세대(6G) 통신 시장을 주도하기 위해 엔비디아의 ‘손짓’을 거부할 이유가 없었다.
1865년 핀란드에서 제지회사로 출발한 노키아는 이후 고무장화·케이블·전자 사업으로 영역을 넓혔다. 1990~2000년대에는 휴대폰으로 세계를 장악했다. 하지만 애플이 몰고 온 스마트폰 시장에서 노키아는 머뭇거렸다. 결국 애플과 삼성의 판이 돼버리자 노키아는 2013년 휴대폰 사업을 정리해야만 했다.
노키아는 제지회사에서 전자회사로 전환한 것처럼 통신장비·네트워크 기업으로 체질을 바꿔 나갔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지난해 이 회사의 통신장비 매출 비중은 79%로, 2007년 휴대폰 매출 비중(70%)을 넘어섰다.
현재 AI 인프라 경쟁은 대규모 데이터센터에 얼마나 많은 GPU를 확보하느냐가 관건이다. 하지만 앞으로의 AI는 검색보다 로봇, 드론, 자율주행차, 스마트팩토리 같은 현실 세계의 기계를 움직이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피지컬 AI 시대가 왔다는 얘기다. 이미 2024년 엔비디아는 노키아 아마존웹서비스(AWS) 마이크로소프트 삼성전자 등과 함께 무선접속망(AI-RAN) 얼라이언스를 결성했다.
피지컬 AI 시대에는 초저지연·고신뢰 네트워크가 핵심 인프라가 된다. 공장 로봇과 자율주행차, 드론 등이 이상 상황을 감지했을 때 데이터를 거리가 먼 데이터센터로 보낸 뒤 답을 기다려선 안전성을 보장할 수 없다. 통신망은 끊기지 않아야 하고, 응답 속도는 즉각적이어야 한다. GPU가 AI의 두뇌라면, 6G망은 AI의 신경망에 해당한다.
6G와 함께 주목받는 AI-RAN은 통신망과 AI 연산을 하나의 플랫폼에서 처리한다. 지금의 기지국이 스마트폰과 데이터센터 사이에서 데이터를 주고받는 중계소라면 AI-RAN 시대의 기지국은 AI 추론, 영상 분석, 산업용 AI 서비스까지 처리하는 데이터센터로 바뀐다. 통신 트래픽이 적은 시간에는 같은 장비가 AI 연산을 돌려 자원을 나눠 쓰는 방식도 가능하다. 통신사로선 한 번의 투자로 통신과 AI를 함께 잡을 수 있다. 브라이언 조 노키아 프로젝트 총괄은 “통신장비와 AI 투자를 따로 나눠서 하면 수익성을 맞추기 어렵다”며 “노키아가 하려는 것은 통신과 AI를 하나의 플랫폼에서 돌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글로벌 통신장비 시장은 중국 내수시장 비중이 큰 화웨이를 제외하면 사실상 스웨덴 에릭슨과 핀란드 노키아의 양강 구도다. 양강 구도에서 2위인 노키아는 통신사업자용 기지국 장비뿐 아니라 데이터센터와 통신망을 연결하는 광통신, 산업용 사설망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AI가 현실 세계로 나오면 데이터센터와 공장, 항만, 차량, 로봇을 안정적으로 잇는 네트워크의 중요성은 더 커진다.
안티 바사라 핀란드 외교부 기술특사는 기자와 만나 “6G는 단순한 통신 기술이 아니라 로봇과 자동차 같은 스마트 기기를 연결하는 신경계 역할을 하게 된다”며 “자율주행과 로봇산업이 발전할수록 초저지연 네트워크와 에지 컴퓨팅의 중요성은 더욱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에스포=이영애 기자 0a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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