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여행서 한국어능력시험 치르는 게 필수인 日 학교라니... 왜 韓 야구팬은 日 고교야구에 관심을 보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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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국제고 선수단이 23일 열린 제106회 전국고등학교야구선수권대회 결승전 우승 후 그라운드에 나와 기뻐하고 있다. /AFPBBNews=뉴스1
교토국제고 선수단이 23일 열린 제106회 전국고등학교야구선수권대회 결승전 우승 후 그라운드에 나와 기뻐하고 있다. /AFPBBNews=뉴스1

올해 한국계 민족학교 교토국제고의 고시엔 우승은 대한해협 넘어 한국의 야구팬들에게도 큰 관심을 끌었다. 韓·日 야구팬들 사이에서 낭만이라 불리며 매년 꾸준히 관심을 받는 고시엔이지만, 교토국제고의 우승은 그 반향이 상상 이상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교토국제고는 지난 23일 일본 효고현 니시노미야시의 한신 고시엔 구장에서 열린 '제106회 전국고등학교야구선수권대회'(여름 고시엔) 결승전에서 간토다이이치고교에 연장 승부 끝에 2-1 승리를 거뒀다.

극적인 우승이었다. 교토국제고 선발 나카자키 루이가 9이닝 동안 104개의 공을 던지며 4피안타 3사사구 5탈삼진 무실점 피칭을 했다. 0-0에서 1, 2루에 주자를 채워놓고 시작하는 연장 승부치기에 들어갔고, 교토국제고는 10회 초 밀어내기 볼넷과 희생플라이로 2-0을 앞서갔다. 10회 말 수비에서는 실책으로 무사 만루 위기를 맞았다. 하지만 유격수 땅볼로 한 점을 내주고 마지막 타자를 헛스윙 삼진으로 잡아내면서 1947년 개교 후 77년 만에 첫 고시엔 우승을 차지했다.

이 자체로도 감동적이었다. 1947년 교토조선중학으로 개교한 교토국제고는 현재까지 재일본대한민국민단(민단) 산하 교토한국학원에서 운영하고 있다. 1999년 야구부를 창단했고 그해 재일교포 학교로는 처음으로 일본 고교야구 전국대회에 참가해 그 자체로 화제가 됐다.

2021년 직전 해 성적으로 봄 고시엔에 초청받아 첫 전국대회 출장을 기록했다. 그해 여름 고시엔에는 자력으로 진출해 4강까지 오르는 성적으로 일본 내에서도 화제가 됐다. 전국대회 출장 3년 만에 우승까지 이뤄냈으니 파란이라고 할 만했다.

선수 구성만 보면 일반적인 일본 고교 팀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현재 교토 국제고 재학생은 138명. 고등학교 재적학생 70%가 일본인이며, 30%가 한국계로 138명 중 야구부는 61명이었다. 이번 대회 우승을 이끈 선수들도 전원 일본 국적이다.

교토국제고 야구부원들이 단체 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KIA 타이거즈 제공
교토국제고 야구부가 2024 여름 고시엔을 앞두고 출정식을 가지고 있다. /사진=교토국제고 공식 SNS

재일 한국계 민족학교로 시작된 정체성을 잊지 않고 유지한 것이 한국 야구팬들의 관심을 꾸준히 끄는 이유가 됐다. 교토국제고는 2003년 일본 정부의 인가를 받아 한·일 양국에서 고등학교 정규 학교로 인정받고 있다. 모든 교육과정은 일본 문부과학성의 승인을 받은 교재를 사용해 일본어로만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다른 국제학교 및 일본 내 학교와 다르게 수학여행을 꼭 한국으로 떠난다. 산케이 신문은 "교토국제고는 한국계 국제학교로서 풍부한 국제 감각을 익히는 것을 목표로 한다. 수학여행에서 한국어능력시험을 치르는 것을 의무화해 한국 문화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데 주력하고 있다"고 전했다.

교토국제고의 선전이 가장 큰 화제를 모은 건 그들이 경기 시작 전 부르는 한국어로 된 교가였다. "동해 바다 건너서 야마토(大和) 땅은 거룩한 우리 조상 옛적 꿈자리"라는 구절로 시작하는 교가에는 "힘차게 일어나라 대한의 자손"이라는 문구도 있다.

이 탓에 매년 교토국제고의 선전을 일부 일본인들이 고깝게 보기도 했다. 이번 우승도 논란이 됐다. 일본 공영방송 NHK는 교토국제고가 교가를 부르는 장면에서 고유어인 동해를 일본어인 '동쪽 바다(東の海)'라고 번역했고 '한국의 학원'이라는 가사 역시 '한국(韓國)'이 아닌 '한일(韓日)'로 번역돼 중계화면에 나갔다.

논란이 될 것을 의식한 것인지 NHK는 별도의 일본어 자막을 통해 '교토 국제고 교가의 일본어 번역은 학교에서 제출했다'는 자막을 덧붙였다. 해당 소식을 전한 일본 포털 야후 스포츠 기사에서는 "동해의 국제적인 호칭은 일본해이기 때문에, 결승전에서 교가가 연주된다면 '일본해'로 당당히 번역하라", "스포츠와 정치는 분리돼야 한다"는 등 1000개가 넘는 의견이 쏟아지기도 했다.

NHK의 일본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 본선 8강 중계방송 화면. /사진=X(구 트위터) 갈무리
한국의 윤석열 대통령이 23일 교토국제고의 고시엔 우승 직후 축하인사를 개인 SNS를 통해 전했다. /사진=윤석열 대통령 페이스북 캡처

교가와 관련해 일부 일본 우익의 혐한(嫌韓) 논란과 달리 교토국제고 주장 후지모토 하루카는 스포츠호치, 데일리스포츠 등 일본 매체와 우승 인터뷰에서 "(교가 관련 비난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세상에는 여러 가지 의견이 있다. 나도 솔직히 괜찮을지 생각할 때도 있다"며 "비판한다면 그건 어쩔 수 없다. 우리는 야구를 위해 이 학교에 들어왔다. 승리하는 것이 우리를 응원해주시는 분들께 보답하는 길"이라고 의연하게 대처해 눈길을 끌었다.

이렇듯 일본의 자존심이라고까지 불리는 고시엔 대회에서 한국과 관련된 학교가 선전하니 한·일 양국에서 반응은 폭발적일 수밖에 없었다.

한국에서는 교토국제고의 선전과 비하인드 스토리가 꾸준히 보도됐고 윤석열 대통령은 직접 축하 인사를 전했다. 윤 대통령은 교토국제고 우승 직후 개인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교토국제고의 고시엔 우승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라며 "교토국제고의 한국어 교가가 고시엔 결승전 구장에 힘차게 울려 퍼졌습니다. 열악한 여건에서 이뤄낸 기적 같은 쾌거는 재일 동포들에게 자긍심과 용기를 안겨주었습니다. 야구를 통해 한일 양국이 더욱 가까워졌으면 좋겠습니다. 역시 야구는 위대합니다. 많은 감동을 만들어내니까요"라는 게시글을 올렸다.

일본에서도 한국에서의 뜨거운 반응을 연일 전했다. '야후 재팬'의 스포츠란에는 교토국제고의 고시엔 제패 기사가 최상단에 걸렸다. 교토국제고 경기 결과를 전한 'TBS 뉴스'의 기사에는 4000개가 넘는 댓글이 달렸다. 일부 누리꾼의 날 선 반응도 있었지만, 일본에서도 교토국제고의 선전을 축하하며 한국에서의 관심을 계기로 한·일 양국이 화해의 길로 나아가길 바라는 의견이 많았다.

일본 야구팬들은 "교토국제고의 우승을 축하한다. 강호 고교들을 상대로 연달아 이긴 게 대단하다. 특히 수비가 훌륭하더라", "한국의 학교가 일본에 뿌리내려 노력하는 게 윤 대통령으로서는 기뻤을 것이다. 한국어 교가를 비판하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지만, 타국어 교가가 퍼지면 대회가 국제화되는 것 아니겠는가"라는 등 여러 가지 의견을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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