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오후 8시경 대구 도심에서 만난 주민 김용진 씨(68)가 멀리 함지산 능선을 따라 번진 화염을 바라보며 발을 동동 굴렀다. 어두워지자 도심을 뒤덮었던 연기는 어둠에 가려 더 이상 보이지 않았지만 검붉은 화염은 낮보다 더욱 선명히 보였다. 순간 헬기 2대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김 씨 머리 위를 지나갔다. 김 씨는 “저게 수리온 기종 헬기인가 보다. 야간 진화가 가능하다던데 불길이 잡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 씨의 바람대로 대구 산불은 23시간만에 인명 피해 없이 조기 진화됐다. 디지털 장비를 장착해 야간 진화가 가능한 수리온 헬기와 산불고성능진화차량, 열화상 드론 등을 동원한 총공세 덕이었다.
● 수리온 투입 3시간여 만에 진화율 19→54%
이번 산불은 아파트 등이 밀집한 도심 야산에서 발생해 자칫 대형 재난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건조한 날씨에 강풍까지 겹쳐 산림당국이 대응 단계를 최고 단계로 격상하고 헬기 36대, 진화인력 776명을 투입했으나 진화율은 28일 오후까지 10%대에 머물렀다.
산림당국은 야간에도 작전이 가능한 수리온 헬기 2대를 투입했다. 오후 8시부터 11시 20분까지 수리온 2대가 총 3만6000L의 물을 쏟아부었다. 마침 풍속이 초속 10m 이내로 잦아들면서 단 3시간여 만에 진화율은 19%에서 54%까지 올랐다.
수리온 헬기는 투시경과 센서를 장착해 유일하게 야간 비행이 가능한 국산 진화 헬기다. 최대 운항속도는 시속 287km, 체공시간은 200분이다. 수리온 2대가 동시에 야간 진화에 투입된 것은 처음이다. 안동(2020년)과 울진(2022년) 산불 때 각각 1대씩만 출격했었다.지상에서도 고성능특수진화차가 활약했다. 산림청은 전국 보유 물량 29대 가운데 26대를 이번 산불에 투입했다. 이 차량은 험지 주행이 가능하고, 일반 차량 호스보다 두꺼운 직경 최대 40mm 호스를 최대 2km까지 펼쳐 물을 뿌릴 수 있다. 일반 차량의 경우 수압 탓에 최대 1km까지만 호스를 펼칠 수있다. 물탱크 용량은 3500L로 일반 진화차의 34배 수준이며, 러시아제 카모프 헬기의 담수량(3000L)보다 많다.드론을 활용한 화선 관측과 산불 지연제 투하도 큰 역할을 했다. 산림당국은 열화상 카메라를 장착한 드론으로 화염 확산 경로를 실시간 파악했고, 헬기를 이용해 10차례 산불 지연제를 뿌렸다. 민가를 중심으로 진화 인력을 집중 배치해 불길 확산을 막았다.
● 샛길서 발화…“용의자 특정 쉽지 않을 듯”
이번 산불은 자연발화보다는 실화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함지산은 대구시가 대형산불 예방을 위해 최근 입산을 통제하고 있었다. 등산로가 아닌 샛길에서 불이 시작된 것으로 보여 용의자를 특정하기 쉽지 않을 전망이다. 대구 북구 관계자는 “산불 추정 발화지점에는 폐쇄회로(CC)TV가 없고 사람도 잘 다니지 않는 곳이다. 처음 신고를 한 것도 멀리서 연기를 본 인근 주민이다”고 말했다. 국립산림과학원은 현장 조사를 시작했다. 결과는 2~4주 내에 나올 예정이다. 경찰도 별도로 수사에 착수했다.
대구=명민준 기자 mmj86@donga.com
대전=김태영 기자 liv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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