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이산이 하루아침에 잿더미 돼뿌고, 이젠 완전 절단 나삤다. 젊은 사람들도 다 떠날 낀데이.”
16일 경북 영덕군 지품면에서 만난 신두기 씨(72)는 까맣게 타버린 산을 등진 채 눈을 질끈 감고 이렇게 말했다. 신 씨는 40년 동안 10ha(헥타르) 넓이 산에 소나무를 심고 송이버섯을 캤다. 다른 산까지 포함해 연간 4억~5억 원 정도 매출을 올렸지만, 이번 산불로 소나무와 송이버섯, 태어나고 평생을 살아온 집까지 모두 사라졌다. 신 씨는 “헬기든, 산불 진화차든 동원해 초장에 산불을 잡았더라면 어땠을까 싶다. 먹고살 길이 턱 막혔다. 젊은 사람들은 마을을 떠날 것이란 소문이 돈다”며 한숨을 뱉었다.
●산길(林道) 뚫어 살길 마련
34번 국도를 따라 산불이 8050ha(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기준)를 할퀴고 간 영덕군은 푸르던 산이 무채색으로 변했다. 산에 있는 나무 이파리와 낙엽, 풀이 모두 타버리면서 멀리서도 산 바닥이 훤히 보였다. 봄을 맞아 다채로워야 할 산은 푸석한 모래로 된 땅에 죽은 나무만 꽂혀 있었다. 이영근 산림과학원 산림복원연구실장은 “어류는 3년, 개미류는 14년 정도 지나면 회복되고, 식생은 20년 후에 외형적인 모습이 갖춰지며 토양이 회복되는 데는 백 년 정도 걸린다”고 했다.의성에서 발생해 청송을 거쳐 영덕으로 넘어온 산불은 3시간 만에 직선거리로 25km를 달려 해안가까지 번졌다. 김광열 영덕군수는 “강풍이 불면 헬기도 무용지물이다. 산길이 나야 헬기를 대신할 장비와 인력이 밤에도 빠르게 산불 현장에 투입될 수 있다”고 했다.
영덕군 임도(林道) 밀도는 1ha당 3.1m로 국내 평균 헥타르 당 4.25m보다 짧다. 영덕군은 산불 재확산을 막기 위해 ‘뒷불감시’를 한다. 3일부터 12일까지 인력 100여 명이 산 구석구석에 투입돼 잔불을 껐는데, 임도가 없다 보니 작업자 피로도가 상당했다고 한다.
숲을 복원, 복구하려면 임도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높다. 불에 덴 나무들은 2, 3년이 지나면 쓰러진다. 처리하지 않으면 부식돼 각종 병해충을 일으키고 산불 발생 시 땔감이 돼 불을 확산시킨다. 긴급벌채로 피해목(木)을 골라내야 하지만, 장비가 들어갈 수 있는 길이 있어야 가능한 얘기다. 황정기 영덕군 산림과장은 “산길은 갈수록 대형화되는 산불로부터 살길을 찾을 수 있는 수단”이라고 했다. 군은 올해 임도 4km를 신설할 계획이다. 안동시는 영덕까지 잇는 ‘임도네트워크 구축’도 구상하고 있다. 임도에서 마라톤, 산악자전거, 걷기 대회 등도 열겠다는 복안이다.●산불 압도할 무기 필요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지난달 22일 경북 의성군에서 시작된 산불로 경북 안동, 청송 등 11개 지역 4만8238ha(16일 기준) 넓이가 산불 영향을 받았다. 경북은 전체 산불 영향 면적의 94%(4만5157ha)를 차지한다. 산불 판도를 바꾸는 ‘게임 체인저’는 헬기다. 하지만 산림청 산림항공본부 소속 산불 진화용 헬기 50대 중 담수량 8000L 규모 대형 헬기는 7대뿐이다. 이 가운데 2대는 부품 문제로 운항 중지 상태다. 나머지는 담수량 3000L 중형, 600∼800L짜리 소형이다.
지방자치단체는 사정이 더 열악하다. 이번 산불에 9896ha가 영향을 입은 안동시는 임차 헬기가 1대뿐이다. 담수량 1200L짜리다. 6.6번 물을 뿌려야 대형 헬기가 한 번 뿌리는 양과 비슷한 셈이다. 권기창 안동시장은 “전국적으로 이번 산불 피해액이 나오면 대형 헬기를 사고도 남을 것”이라며 “이제 산불은 국가안보 차원으로 봐야 한다”고 했다. 영덕군과 청송군도 각각 담수량 1200L짜리 임차 헬기 1대가 있다.
●경제 붕괴 지역 소멸 가속화
영덕군은 대표적인 송이버섯 생산지다. 지난해 33억 원어치 15.9t을 생산해 전국 물량의 22.3%를 차지했다. 송이 생산 면적은 약 6500ha이며 이번 산불로 4000ha가 피해를 봤다. 군은 내년부터 생산량의 60%가 줄어들 것으로 내다봤다. 이상범 송이버섯생산자협의회장은 “산불로 송이 생산지 40ha를 잃었다. 송이버섯이 나오는 소나무가 다 타버렸으니, 앞으로 30~40년 동안은 송이 구경도 못 한다”고 했다. 임산물은 물론이고 관광, 생계까지 위협받으며 경제가 출렁이고 있다.
지자체들은 경제난이 인구 대탈출로 번지지 않을까 걱정이다. 소멸 위험지역으로 분류된 청송군은 특히 고위험 지역이다. 3월 기준 인구는 2만3867명으로, 이 가운데 65세 이상 인구가 44.2%(1만444명)를 차지한다. 윤경희 청송군수는 “산불로 모든 걸 잃은 어르신들이 아예 자녀들이 사는 인근 지역으로 옮길 수도 있다”라며 “이재민들이 살던 곳에 다시 정착할 수 있는 지원책이 필요하다”고 했다.김태영 기자 liv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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