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한비야 작가의 ‘나만의 특별한 송년회’가 떠올랐습니다. 내용을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작가는 12월 마지막 주 아무 약속도 잡지 않은 채 마지막 2, 3일을 집에서 ‘나만의 송년회’를 한다고 합니다. 시작은 집안 정리입니다. 커다란 박스를 꺼내 미련 없이 신나게 책이며 옷, 기념품, 서류들을 쏟아 붓습니다. 다음으론 컴퓨터 바탕화면과 폴더들을 정리합니다.
다음부턴 난이도가 조금 올라갑니다. 세 번째로는 그해 일기를 모두 읽습니다. 마지막으론 일기를 읽으며 떠오른 이들에게 감사와 용서를 전한다고 합니다. “깔끔하게 한 해를 마무리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새해를 맞이할 수 있는 비법”이라는 작가의 설명입니다. ‘채우기’보단 ‘비우기’의 미덕이 돋보입니다.포털 사이트만 봐도 셀프 송년회 아이디어가 쏟아집니다.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캔맥주와 과자를 준비해 밤새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영화를 본다거나 스스로에게 꽃을 선물하는 등 셀프 선물 아이디어도 많습니다. 올 한해도 쉴틈없이 달려온 스스로를 격려하는 거겠죠.
내친김에 챗GPT에 ‘셀프 송년회’에 대해 묻자 그야말로 아이디어가 넘쳐흐릅니다. △감사리스트 작성 △나에게 편지쓰기 △비전 보드 만들기 △작은 도전 시작하기 △명상과 요가 △자연 속 산책. 휴. 셀프 송년회를 위해 한 해를 써도 모자랄 듯합니다.
올해의 마지막 ‘후벼파는 한마디’ 코너를 맞아 저도 몇 년 동안 해온 저만의 ‘셀프 송년회’를 털어놓을까 합니다. 이름을 붙이자면 ‘올해의 OO 정하기’ 쯤이 될까요. 올해의 음악, 올해의 음식, 올해의 책, 올해의 영화, 올해의 스포츠 경기 등 분야는 무엇이든 좋습니다. 올 한해 나 자신을 웃기고 때론 울렸던, 혹은 기쁘거나 설레게 했던 무언가 들을 정리해 보는 겁니다.
마치 미슐랭 심사위원이라도 된 것처럼 신중에 신중을 기하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겁니다. 일 년간 내가 남긴 흔적들, 이를테면 사진 갤러리, 다이어리, 플레이리스트 등을 뒤쫓다 보면 자연스레 올 한해 내가 어떤 순간들을 보냈는지 다시 한번 마주하게 됩니다. (상주 중앙시장의 쫄면은 잊지 못할 겁니다.) 후회와 아쉬움만 가득할 것 같다고요? 걱정하지 마세요. 분명 당신의 발걸음 뒤에도 삶의 유의미들이 반짝이고 있을 겁니다.말이 나온 김에 올해의 음악(a.k.a ‘홍’보드차트) 8위에 선정된 노래 속 가사로 글을 마무리할까 합니다.
“늘 같은 세상 늘 같은 모습들
그래도 흔해빠진 삶은 여기에 없어(중략)
나를 아는 좋은 사람들과 하루해가 저물어 가면
There‘s no hip place for me but my cool J’s bar.“
-J‘s bar에서. 전람회(작사 서동욱, 작곡 김동률)
더불어 올 한해 우리 곁을 떠난 이들의 얼굴을 떠올립니다. 그들의 명복을 빕니다.
강홍구 기자 windu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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