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이 사랑한 ‘앵도’의 향… ‘궁궐 향수’로 담았다

8 hours ago 2

국가유산진흥원-코스맥스, 향수 개발
창경궁 앵두-덕수궁 오얏 향기 포집
“꽃과 나무 고유 향기도 유산 보존”


1년여의 기간에 걸쳐 개발된 ‘단미르 궁궐 향수’(아래쪽 사진)는 조선시대 궁궐 화단에 피어 있는 꽃의 향기를 포집해 만들어졌다. 국가유산진흥원·코스맥스 제공

1년여의 기간에 걸쳐 개발된 ‘단미르 궁궐 향수’(아래쪽 사진)는 조선시대 궁궐 화단에 피어 있는 꽃의 향기를 포집해 만들어졌다. 국가유산진흥원·코스맥스 제공
상큼한 과실 향이 코끝을 스치고 지나자, 앵두꽃의 달고 투명한 향이 물씬 퍼졌다. 조선시대 앵두는 그 꽃과 열매가 내는 향기가 왕실의 사랑을 받아 궁궐 화단 곳곳에 심어졌다고 한다. 지금도 봄날 창경궁에 들어서면 관람객을 맞이하는 연분홍 앵두나무 내음. 이를 재현한 향수가 최근 일반에 선보였다.

국가유산진흥원은 궁능유적본부, 코스맥스와 협업해 ‘단미르 궁궐 향수’ 2종을 지난달 출시했다. 역사적 의미와 이야기가 담긴 앵두나무와 오얏나무(자두나무) 향기다. 두 제품은 현재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시향할 수 있다.

‘창경궁 앵도(櫻桃·앵두의 옛말)’는 세종대왕이 앵두를 좋아했다는 기록 등에서 착안했다. 조선왕조 문종실록 제13권(1452년)에 따르면 세종의 장남인 문종은 세자 시절 궁궐 후원에 손수 앵두나무를 심었다. 이후 앵두를 해마다 아버지에게 올렸다고 한다. 실록엔 “후원에 앵두가 무성했는데, 익은 철을 기다려 올리니 세종께서 반드시 이를 맛보고 기뻐하셨다”고 기록돼 있다.

앵두나무 향수와 함께 출시된 ‘덕수궁 오얏’엔 덕수궁 석조전 앞 오얏나무의 향기가 담겼다. 은은한 유칼립투스와 소나무 향을 싱그러운 오얏꽃 향과 배합했다. 오얏꽃은 조선 왕조 이(李)씨를 상징하는 식물. 대한제국 고종 대엔 국장(國章)으로 쓰이며 황실 재산에 새겨졌다. 석조전, 창덕궁 인정전을 비롯한 고건축과 ‘순종 황제 즉위식 기념장’ 등 공식 문서, 황실 공예품 등에 문양이 남아 있다.

이번 향수 개발은 궁궐에서 심고 가꾸었던 꽃과 나무의 고유한 향기도 문화유산으로 보존돼야 한다는 취지에서 이뤄졌다. 홍연주 코스맥스 R&I센터 상무는 “한국적인 향기 역시 조상이 물려준 유산이지만, 지금까지 관련 연구는 산발적으로만 진행돼 왔다”고 전했다.

두 향수는 덕수궁과 창경궁에 심어진 실제 오얏꽃과 앵두꽃의 향기를 ‘헤드 스페이스(Head space)’ 방식으로 포집해 만든 게 특징. 헤드 스페이스는 살아 있는 꽃이 공기 중으로 발산한 향기 분자를 포집해 성분을 분석한 뒤, 이를 바탕으로 향기를 재현하는 기술이다. 전연진 코스맥스 책임연구원은 “궁궐 식물들을 훼손하지 않는 데다, 코로 맡는 실제 향기와 비슷하게 만들 수 있어 택한 방식”이라며 “개화 수개월 전부터 여러 차례 궁궐을 답사해, 꽃의 상태가 최상에 이르렀을 때 향기를 포집했다”고 설명했다.

진흥원 등은 향후 창덕궁의 자귀나무, 회화나무 등도 향기 유산으로 보존될 수 있도록 연구 개발하고 있다. 진흥원의 우혜정 공예기획팀장은 “궁궐이란 역사적 공간에서 오랜 세월 사랑받았던 향기는 그 시대 사람들의 생활과 정서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 강조했다.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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