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경, 美영화학교 졸업연설
내게 투자는 부채가 아닌 예술
박찬욱·봉준호 등 수년간 지원
“그들의 예술성에 경외감을 느껴 지원하기로 결심했지만 걸작이 나오기까지 수년간의 노력과 헌신이 필요했습니다.”
한국 영화 산업의 개척자로 꼽히는 이미경 CJ그룹 부회장(67)이 16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서던캘리포니아대(USC) 영화예술학교(School of Cinematic Arts·SCA) 졸업 연설에서 이렇게 회고했다. 이 부회장은 세계 무대에서 인정받는 한국 영화감독 박찬욱, 봉준호, 김지운 등을 처음 만났던 20여 년 전과 그들의 대표작 ‘헤어질 결심’ ‘기생충’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등을 제작했던 경험을 돌이켜보며 ‘겸허’ ‘끈기’ ‘배려’ 등 삶의 가치를 이야기했다.
이 부회장은 “한번은 보험회사가 ‘그 감독은 너무 예측 불가하다’고 말해서 영화 완성을 내가 개인적으로 보증해줘야 했다. 나는 그 작품을 ‘부채가 아닌 예술’이라고 말했다”고 했다. 이어 “나는 이 감독들이 서로의 작품을 존경하고 서로를 지원하며 젊은 영화인을 키워내는 모습도 봤다”며 “모두 자비심에서 나오는 행동”이라고 덧붙였다.
이 밖에도 그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과 일했던 일화, 1998년 한국 최초의 멀티플렉스 영화관 CGV를 열고 이후 15년간 190개 이상을 개관한 경험 등을 언급했다. “세상이 빠르게 변하고 있지만 절대 변하지 않는 진리가 있습니다. 겸허는 본질에 집중하게 하는 힘, 끈기는 어려울 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동력, 그리고 배려는 상대와 연대하고 함께 성장하는 방식입니다. 성공은 겸허 없이는 오만이 되고, 배려 없이는 공허함이 됩니다. 이 세 가지 가치가 여러분에게 힘을 주고, 전 세계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창작자가 되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이번 연설은 세계적 영화·미디어 제작자인 도나 랭글리 NBC유니버설 엔터테인먼트·스튜디오 회장의 소개로 시작됐다. 랭글리 회장은 5년 전 이 부회장이 영화 ‘기생충’ 제작자로서 아카데미 작품상(오스카)을 받은 것 등을 언급하며 “탁월한 안목으로 인재를 발굴하고 수많은 명작을 탄생시킨 프로듀서이자 문화적 경계를 초월하는 커넥터(connector), 우리가 무엇을 듣고 보고 사랑하게 될지를 이끄는 비저너리 리더(visionary tastemaker)”라고 찬사를 보냈다.
앞서 이 부회장은 남동생인 이재현 CJ 회장과 함께 1995년 드림웍스에 전략적 투자를 한 것을 시작으로 한국 콘텐츠 산업 세계화에 이바지해왔다. 2022년 미국 아카데미 영화박물관의 필러상과 국제 에미상 공로상, 2023년 대한민국 금관문화훈장, 2024년 미국 세계시민상, 2025년 미국 엘리스 아일랜드 명예훈장 등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