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 과들루프 출신 젊은 작가
서울 이태원동 에스더쉬퍼
뒤로 공중제비를 하는 두 흑인의 역동적인 춤 동작에 흰 가면 벗겨졌다. 사회에서 인정받기 위해, 차별을 피하기 위해 자신의 정체성과 문화를 숨겨야만 했던 이들이 ‘하얀 가면’을 벗어 던지고 자유롭게 자신을 드러낸 것이다. 프랑스령 과들루프 섬 출신의 젊은 작가 토미야스 라당(31)의 두 폭화 ‘Chaviré, Soukouss, Liberation’(2024)이다. 식민지화로 발생한 폭력과 인종차별을 비판한 프란츠 파농의 ‘검은 피부, 하얀 가면’(1952)을 몸짓으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유연하고 과감한 붓질로 그려진 인물들은 화면 안에서 살아 숨 쉬는 듯하다.
토미야스 라당의 개인전 ‘올드 소울-뉴 소울’이 오는 14일까지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에스더쉬퍼 코리아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는 작가가 아시아에서 처음 선보이는 개인전으로, 작가가 직접 제작한 나무 프레임에 담긴 신작 회화를 포함해 조각, 영상 등 작품을 두루 소개한다. 전시 제목의 ‘올드 소울-뉴 소울’은 낡은 관습을 탈피하면서도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 모두에 귀 기울여야 한다는 작가의 신념을 나타낸 것이다.
라당은 대서양 카리브해에 위치한 프랑스령 과들루프섬과 프랑스 본토를 오가며 자랐다. 흑인 문화는 그런 그의 성장기 기억과 일상의 몸짓을 전달하는 하나의 매개체로 작가의 작품 세계를 관통한다. 특히 회화, 조각, 퍼포먼스, 영상 등 다양한 매체에서 몸의 움직임을 나타내는 몸짓은 그가 끊임없이 변화하는 의미의 유동성과 무형의 존재를 탐구하는 중요한 수단이다.
2층 전시실에서 선보이는 영상 작품 ‘라이벌(RIVÂL)’은 작가가 직접적인 몸짓으로 들려 주는 이야기다. 라당과 안무가 앙드레지 비디아맘부가 두 주인공 시부케이라와 카루레라 역을 맡았다. 극 중에서 두 사람은 타국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도시 곳곳을 헤매며 고군분투하는 이민자로, 서로 견제하며 부딪히지만 점점 춤으로 소통하면서 유대감을 느끼게 된다. 라당은 “섬세함과 격렬함을 넘나드는 춤과 몸짓을 통해 상대와 대화하고 영적 교감을 할 수 있다고 믿는다”고 밝혔다. 작품 속 안무는 라당이 직접 짰고 영상은 알렉산더 브락, 마티아스 마이슨과 공동 제작했다.
1층 윈도우를 통해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드럼 조각 ‘카 스피릿(KA Spirit)’은 두 세대 간의 소통을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그워 카’라고 불리는 과들루프의 전통 핸드드럼 음악의 대가인 작가의 삼촌이 전통적인 방식으로 드럼의 몸체를 만든 뒤 작가가 표면을 깎아 세밀한 무늬를 만들고 그림을 그려 넣어 완성한 회화 조각 작품으로, 고대부터 전해 내려온 선조들의 지식과 정신을 계승하면서도 자신만의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나무로 만든 도미노 조각 작품 역시 과들루프의 모든 연령대가 대중적으로 즐기는 게임인 도미노를 소재로 한다. 라당은 “과들루프에서는 부모나 조부모가 어린 아이에게 숫자 개념을 쉽게 설명하기 위해 도메노 게임을 활용한다”고 설명했다. 실제 게임 룰에 맞춰 배치된 도미노 조각들은 세대에 걸쳐 전달되는 지식의 흐름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