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예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스타급으로 떠버린 연기파 배우 레나테 레인스베를 보고 있으면 엉뚱하게도 그녀가 일하는 영화 제작환경이 참으로 특이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 제98회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국제장편영화상을 받으며 화제가 된 영화 <센티멘탈 밸류>에서 노르웨이 배우 레나테 레인스베는 덴마크 코펜하겐 출생으로 노르웨이에서 활동하는 요아킴 트리에 감독에게 발탁돼 스웨덴 배우 스텔란 스카스가드(실제 발음은 스카슈고드에 가깝다)와 함께 연기했다. 스카스가드의 친구 역으로 나오는 예스페르 크리스텐센은 덴마크 배우이다. 게다가 이들 나라 사람들은 대체로 영어가 친숙하다. 할리우드 배우 엘 패닝이 자연스럽게 합류할 수 있었던 이유이다. 완전히 ‘섞어 짬뽕’이다.
▶▶[관련 칼럼] 영화 '센티멘탈 밸류' 요아킴 트리에 감독이 전하는 위로의 찬가
어쨌든 이게 가능한 이유는 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 세 나라는 스칸디나비아 3국으로 거의 한 몸이기 때문이다. 언어에도 공통점이 많다. 서로를 두고 사투리 쓰는 나라라고 비아냥댈 정도다. <센티멘탈 밸류>에서 레나테 레인스베는 노르웨이어로, 스텔란 스카스가드는 스웨덴어로 연기했다. 노르웨이 작가 요 네스뵈의 스릴러 소설들에서 주인공인 형사는 스웨덴의 말뫼와 덴마크의 코펜하겐을 수시로 넘나들며 살인범을 쫓는다. 자신의 국적과 언어가 이렇게 섞여 있는 배우는 과연 어떤 정체성을 지니고 있을까. 자기 안에 자기가 너무 많아서 연기자로서는 오히려 더 큰 장점으로 작용하지 않을까. 그건 타고난 행운 같은 것일 수도 있겠다.
레나테 레인스베는 <센티멘탈 밸류>로 글로벌 스타로 뜨기 전 한국에서는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2021)로 이미 인지도 면에서 쐐기를 박은 여배우이다. 그러나 이 여배우에 진심인 씨네필들 사이에서는 그녀의 미친 듯한 연기를 볼 수 있는 작품으로 두 편이 더 꼽힌다. <모든 것은 아르망에서 시작되었다>(2024)와 <언데드 다루는 법>(2024)이다. <모든 것은 아르망에서 시작되었다>는 전국 관객 2,489명을 모았고 <언데드 다루는 법>은 5,152명을 모았다.
조금 심했다. 이런 대접을 받을 영화들이 아니다. 한국 관객들에게 스칸디나비아 3국의 언어와 대사, 특히 이름들이 아직은 그다지 익숙하거나 친절하게 느껴지지 않는 탓이다. 그나마 여기까지 온 것도 넷플릭스 덕일 수 있다. 이 글로벌 OTT의 현지화 제작 전략으로 이제는 다른 노르딕 언어인 핀란드어, 아이슬란드어 영화까지 만날 수 있게 됐다. 접근성이 그만큼 나아졌는데도 5천 명 남짓의 관객 수를 기록했다는 건 다소 충격적이지 않을 수 없다.
<언데드 다루는 법>은 소녀 뱀파이어 영화 <렛미인>의 각본(원작 소설 또한 그가 썼다)을 쓴 스웨덴 작가 욘 아이비데 린드크비스트의 원작 소설을 노르웨이 감독 테아 비스텐달이 영화로 만들면서 배경도 스톡홀름에서 오슬로로 바꿨으며 그 과정에서 레나테 레인스베를 캐스팅했다. 레인스베는 여기서 주인공 중 한 명인 안나로 나온다. 아들 엘리아스가 죽었고 그 아들이 다시 살아났는데 좀비가 된 상태여서 실로 어쩌지 못하는 엄마를 연기한다. 끔찍이 사랑하는 아들이었다. 그런데 죽는다. 상실감에 엄마는 일상이 무너진다. 그러다 오슬로에 갑자기 이상한 전기사고-정전과 전기적 파장이 일어나고 그 때문에 공동묘지에서 죽은 자들이 깨어난다. 이들은 우리가 아는 좀비처럼 물고 뜯지는 않는다. 그냥 의식이 없는 상태이다. 종종 공격성을 보이기는 한다. 엄마는 좀비가 된 아이를 숨긴다. 그러나 영영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안나는 ‘죽었지만 살아 있는(undead)’ 아들 엘리아스를 물가에 있는 시골 별장으로 데려간다. 안나는 이제 결심해야 한다. 엘리아스를 어떻게 할 것인가.
욘 아이비데 린드크비스트 원작답게 이 영화 역시 가슴이 젖어 든다. 전작 <렛미인>도, 소설이든 영화든, 마지막 장면에서 사람들은 눈물바다가 됐다. 사랑한다면 우리는 종종 무엇인가를 희생해야 한다는 것, 가지려 하기보다는 버리려 할 때가 있음을, 영화는 보여준다. 레나테 레인스베는 워낙 몰아치는 연기, 광적인 연기에 능한 배우지만 이 <언데드 다루는 법>에서는 진심의 모성 연기로 사람들을 울렸다. 레나테 레인스베는 키가 178cm이다. 키 큰 여배우는 사실 따뜻한 연기가 어울리지 않을 것이라는 선입견이 있다. 영화에서 아이 엘리아스는 엄마 안나의 품에 쏙 안겨 있다. 엄마가 크기 때문이다. 품이 넉넉해 보인다. <언데드 다루는 법>은 세 이야기가 서로 다른 듯 씨줄과 날줄로 엮여 구성돼 있지만 레나테 레인스베 때문에 더욱더 눈물겨운 영화가 됐다.
레나테 레인스베 연기의 진가는 <모든 것은 아르망에서 시작되었다>에서 드러난다. 이 영화에서 레인스베는 7분에 이르는 독백 씬을 롱테이크, 원 씬 원 테이크로 해냈다. 감독 하프단 울만 퇸델의 지시는 단 하나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웃다가 울다가, 울다가 웃다가 할 것. 엘리자베스(레나테 레인스베)는 학교 복도 여기저기를 서성이며 자신에 대한 사람들의 편견과 질투, 자신이 집착하는 것들, 아들 아르망에 관한 얘기 등을 그야말로 미친 듯이 퍼붓는다.
영화는 이 장면이 나오기 전까지는 다소 지루한 감을 주는데 이 롱테이크 시퀀스 하나로 모든 분위기를 뒤집는다. 사람이 사람을 얼마나 오해하고 미워할 수 있는지, 서로의 생각과 일상이 다르다는 이유로 상대를 얼마나 끝까지 밀어붙이고 괴롭힐 수 있는지를 홀연히 깨닫게 만든다. 레나테 레인스베의 이 광기 어린 자학 연기를 보고 나면 누군가를 프레이밍으로 악마화하고 조리돌림이나 마녀사냥 하는 것이 얼마나 그릇되고 부질없는 일인가를 깨닫게 만든다. 우리 사회가 소통에 어려움을 겪는다면 그건 <모든 것은 아르망에서 시작되었다> 같은 영화를 3천 명도 안 보고 이 영화에서 펼치는 레나테 레인스베의 연기를 제대로 보지 못해서일지도 모른다.
이번 영화 <센티멘탈 밸류>에서도 레나테 레인스베는 영화 오프닝 장면부터 확실하게 책임을 진다. 주인공 노라는 이제 곧 막이 오를 연극 <햄릿>을 위해 무대 중앙으로 나가야 하지만 갑자기 찾아온 공황장애로 (그녀는 종종 이러는 것으로 보인다) 심각한 위기를 겪는다. 이 오프닝은 영화의 모든 것을 지배하는, 노라의 트라우마에 대해 압축적으로 설명하고 나아간다. 레나테 레인스베는 영화의 오프닝을 장악하면서 곧 영화 전부를 끌고 나간다. 무대에서 분장실을 오가며 노라가 어쩔 줄 모르고 날뛰는 모습은 영화 안팎의 모든 사람을 극도의 노이로제로 몰아간다. 요아킴 트리에 감독 역시 이 장면을 (끊어가는 것을 최소화해서) 거의 원 씬 원 테이크로 찍었다. 레나테 레인스베 연기에 대한 믿음이 없으면 불가능했을 촬영 장면이다.
그럼에도 아직 많은 이들에게 레나테 레인스베는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의 상큼발랄한 이미지로 기억될 것이다. 물론 영화는 그다지 해맑은 내용이 아니다. 주인공 율리에(레나테 레인스베)가 두 남자(한 명은 한참 연상인 남자, 한 명은 동년배)와 차례로 연애하거나 일종의 ‘환승 연애’(한 사람과 헤어지기 직전 새로운 연애를 하는 것) 하는 내용의 영화다. 율리에는 사랑에 실패한다. 원치 않는 상황에서 아이도 갖게 되지만 유산한다. 율리에는 독립하고 스튜디오 사진작가가 된다. 그녀는 그 전 과정을 통해 자신의 진짜 모습을 발견한다.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라는 말은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의 경험을 하지만 그게 꼭 인생의 최악은 아니다’라는 주제를 갖는다. 레나테 레인스베가 이 영화로 단박에 눈길을 끈 것은 동시대 세계 여성들이 주인공 율리에의 모습에 공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영화로 레나테 레인스베는 2021년 제74회 칸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연기는 연기력 이전에 사회적 공감 능력이 우선되어야 함을 입증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배우는 연기에 앞서 사람과 인생을 배워야 한다.
레나테 레인스베는 패션계에서도 러브콜이 이어진다. 루이뷔통의 앰버서더이며 보그와 엘르 등 패션지의 표지를 장식한다. 한번 얼굴을 익히게 되면 일상에서 자꾸 눈에 들어오기 마련이다. 더욱 많은 매체에서 레나테 레인스베의 모습이 보이게 될 것이다. 아 그 전에! 이제는 이름이 입에 붙어야 한다. 노르웨이 발음의 이름. 레.나.테. 레.인.스.베. 내친김에 스텔란 스카스가드, 예스페르 크리스텐센, 요하킴 트리에 등등도 입에 붙으면 좋다. 세계는 넓고 영화인은 많다. 여배우도 많다. 이제 레나테 레인스베를 확실하게 기억하기. 물론 어느덧 우리에게 한층 친숙해진 여배우이다. 노르웨이 부스케루드 주 솔베르겔바 출신이며 오슬로 국립예술대학교에서 연기를 전공했다. 정통 연기자란 얘기다.
오동진 영화평론가

4 week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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