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오스크와 서빙 로봇이 실사용화되며 무인으로 운영되는 매장도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코인 세탁소, 아이스크림 가게 등 익숙한 품목부터 건강식품점, 문구점, 의류매장 등 다양한 업종으로 확대, 무인점포의 전체적인 이용률 또한 증가하고 있다. 무인점포가 주목받는 이유와 산업계 변화 등을 짚어볼 때다.
사람이 없는 가게가 일상화되다
무인(無人)점포 시스템이 한국 사회에 자연스럽게 녹아 들고 있다. 직원의 도움 없이 고객이 스스로 상품을 고르고, 키오스크(무인 주문 기계)로 결제까지 가능한 매장 형태인 무인점포는 ‘스마트 상점’으로도 불리며 주요 상권 곳곳에 들어서고 있다.
무인점포 수는 2022년 7,900개에서 2025년 1만 개를 돌파하며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특히 2020년 이후 빠른 성장세를 보였다. 신한카드 빅데이터연구소에 따르면 무인점포는 2023년 말 기준 5년 전에 비해 약 5배 가까이 증가했다. 신한카드 고객의 2022년 1~9월 무인매장 이용 건수는 전년 동기 대비 48% 증가했으며, 동 기간 동안 세탁소 무인매장은 22%, 아이스크림은 31%, 간편식 86%, 카페 96%, 문방구 무인매장은 623% 늘어난 걸로 나타났다.
무인점포의 경우 인건비를 아끼고, 낮은 노동 강도에 인테리어 등 창업비용에 대한 부담이 비교적 낮아 소자본 창업 또는 부업으로 하기 좋다는 인식도 생겨났다. 2024년 일자리 앱 벼룩시장이 근로자 1,327명을 대상으로 ‘소득’에 대해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부업을 고려하고 있다고 답한 이들이 희망하는 부업 종류엔 블로그·유튜브 등 SNS 운영(15.9%), △사무보조(10.4%) △매장 관리·판매, 택배·배달(각각 9.7%) △음식점 서빙·주방 보조(9.3%) △카페·바리스타(9.0%), △이벤트·행사 스태프(7.4%) △쇼핑몰·무인점포 운영(6.1%)이 있었다.
무인점포의 사업지속성이 주목받기 시작하며, 다루는 품목 또한 다양해지고 있는 추세다. 코인 세탁소, 아이스크림, 카페, 간편식 등 익숙했던 품목부터 반려동물 용품을 전문으로 하는 매장, 아동복, 운동복 등의 의류매장, 탁구장, 당구장 등의 운동 공간도 무인점포로 운영 중이다. 대학가 및 유동인구가 많은 상권에는 무인 사진관 브랜드가 즐비해 있고, 거주지 및 상가, 사무실 등이 많은 지역엔 무인 스터디 카페, 건강식 판매점 등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협소한 공간에서도 접근성·편의성 확보 가능
무엇보다 무인점포의 인기는 장소와 시간에 얽매이지 않는 이용이 가능하다는 것에 있다(한국리서치 주간리포트, 2023). 특히 협소한 규모의 공간에선 무인점포 시스템이 빛을 발한다. 지하철 또는 지하도로, 상가를 지나다 보면 다양한 무인점포 열풍이 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종로 지하쇼핑센터에 마련된 무인 셀프 양말 가게는 오가는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데, 특히 비가 오는 날엔 더욱 사람들이 몰리는 곳이다.
서울교통공사에선 지난해 11월 4호선 상계역, 신용산역, 6호선 상수역 등 무인 출력 서비스 수요가 높은 거주지, 직장 및 학교와 인접한 역사를 선정해 무인 프린트 전문점 입찰을 진행하기도 했다. 앞서 공사는 2022년 6개의 역사에 무인 프린트 전문점을 일괄 유치했는데, 높은 접근성과 편의성, 신용카드 또는 티머니 교통카드로도 결제가 가능하다는 점이 장점으로 꼽힌다. 그 밖에도 2022년 이후 역사 내에선 밀키트, 반려동물 용품, 간식 판매점, 무인 프린트 등 다양한 업종의 무인점포가 꾸준히 입점해오고 있다. 이러한 점포형태가 시민 편의 증진에 기여하는 한편, 사업자 운용비용 절감을 통해 사업지속성도 확보가 되는 사업모델이 되기 때문이다.
라면, 과일 가게로 진화···서점 공간 대여도
종로의 한 거리, 각종 음식점과 포장마차가 즐비한 이곳에서 오랜 시간 꾸준히 자리하고 있는 한 매장이 있다. 바로 24시간 무인 라면 가게다. 최근 이곳은 한국 손님뿐만 아니라 외국인 관광객들도 자주 찾고 있다. 그 배경엔, K-푸드의 관심이 높아지며 ‘라면’에 대한 인지도가 확대되고, 광장시장과 가까운 지리적 특성이 더해진 것으로 보인다.
이 무인 라면 가게에는 특별한 차별 포인트가 있다. 먼저, 수십 가지의 라면(일반, 비건, 할랄 등)을 입맛대로 끓여먹을 수 있다. 먼저 고객이 라면을 선택한 후, 용기에 면을 넣고 스프와 배치된 토핑 중 원하는 것을 골라서 올린다. 토핑에는 치즈(유료), 양파, 파, 당근, 콩나물 등이 마련돼 있다. 그 후 면에 따라 조리 타입을 선택(일반면, 굵은면, 볶음면, 할랄 전용)하면 완료. 반찬으로는 김치와 단무지 등을 이용 가능하며, 밥이나 음료 또한 별도로 구매 가능하다. 라면을 3,300~5,000원대의 비교적 저렴한 가격대로 입맛에 맞춰(커스텀) 쉽게 끓여먹을 수 있다 보니, 해외 관광객 역시 발걸음 가볍게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최근엔 건강 트렌드에 맞춘 ‘헬시플레저’를 주제로 한 무인점포도 심심찮게 만나볼 수 있다. ‘다이어트, 헬스 식품 전문 무인편의점’을 표방하는 ‘제로연구소’는 건강 트렌드에 맞춘 상품을 주력으로 하고 있는 무인점포로, 단백질 쉐이크와 닭가슴살 제품군, 냉동 단백질 스택, 가공식품, 저칼로리 식품, 저당 식품, 기능성 식품 등을 선보이고 있다. 또한 무인 키오스크 기반 회원제 시스템을 도입해 재방문을 유도하는 등 무인점포임에도 ‘단골 고객’ 확보에 나서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마트24는 국내 무인 과일 프랜차이즈 오롯과 손잡고 무인 과일냉장고 ‘핑키오’를 점포에 도입했다. 핑키오는 세상에서 가장 작은 과일편의점을 콘셉트로, 제철에 맞는 소용량 과일을 핑크 색상 키오스크에서 제공한다. 소비자가 원하는 상품을 키오스크에서 결제하면 냉장고 문이 열려 상품을 꺼낼 수 있다.
무인점포 가운데 최근 독립서점들의 방식은 더욱 흥미로운 지점이 있다. 관악구 ‘회전문서재’, 용산구 ‘비서재’, 신당동 ‘오드쓰북’, 종로 ‘조이엔영’ 등의 독립서점은 ‘무인 공간’ 자체를 상품으로서 활용하기도 한다. 마치 하루 동안 숙소를 대여하듯, 일부 시간대별로 서점이라는 공간을 개인이 대여하는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다(사전 예약제). 혼자서 조용히 책을 고른 뒤 구매하고 싶다면, 또는 독서모임 장소나, 강연, 문화 공간 등을 목적으로 하는 사람들에게 특화돼 있는 서비스다. 한번쯤 서점을 나홀로 전세 내 이용해보는 상상을 한 적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주목해볼 만하다.
‘기술’과 만난 무인점포
최근 무인점포들은 한층 더 나아가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등 4차 산업혁명 기술을 접목한 서비스를 선보이고 있다. 일례로 여의도 더현대서울에 자리한 ‘언커먼 스토어’가 대표적이다. AWS(아마존웹서비스) 기술 기반의 무인점포인 이곳에선 패션잡화, 생활 용품, 굿즈, 식료품 등을 판매 중이다. 현대백화점 투홈 앱을 설치하고 가입한 고객의 경우에 입장이 가능하며, 결제카드를 등록하면 매장에 설치된 카메라를 통해 고객의 위치를 추적하며, 매장을 빠져나가면 사전 설정해놓은 자동결제 시스템을 통해 자동으로 결제가 되는 방식이다.
우정사업본부의 경우 2014년 김포와 하남에 무인우체국을 첫 도입한 이후, 최근 신도시 및 인구가 줄어든 지역을 중심으로 자율주행 무인 접수 및 배달서비스 구현에 나서기도 했다. 지난 2020년부터 5G, 데이터, AI 등 ICT 기술을 통한 자율주행 우체국을 시범 도입한 우정사업본부는, 고객이 앱을 통해 원하는 날짜, 시간, 장소를 설정한 후 자율주행 무인 우체국을 호출하는 ‘온디맨드 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했다. 이 같은 무인 서비스로 우편 물류 종사자 업무량 강도 조절 및 근로환경, 여건을 개선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며, 현재 일본, 미국 등에서도 활용 중에 있다.
한편으론, 무인점포가 늘어나는 만큼 제품 절도에 대한 위험성 역시 따른다는 문제점 역시 자주 거론되고 있다. 소액 절도나 제품 파손, 무단 점거 등의 범죄가 최근 늘어나고 있는데, 기존 무인점포의 주 판매 상품은 아이스크림, 세계 과자와 같은 단가가 낮은 상품이었다. 이런 상품의 경우 도난으로 인한 손실보다 무인 운영으로 절감되는 인건비가 훨씬 크기 때문에 매장 출입문을 24시간 개방해놓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무인점포에서 정육, 게임기, 가구처럼 고가 제품을 판매하기 시작하며 도난 등의 관리 및 유인 서비스 대체에 대한 의문점은 커져가고 있다.
이처럼 도난 사고가 지속적, 조직적으로 발생함에 따라 매장의 출입 단계에서 먼저 출입자의 신원을 파악하거나 연령대별 출입 제한을 하고자 하는 수요가 증가하며, 맞춤 기술 상품이 등장하고 있다. 헤임달 무인365 출입기는 2022년부터 네이버 출입증, 카카오톡 지갑 QR을 모두 연동한 출입기를 선보였다. 앱 사용이 미숙한 디지털 소외계층을 배려해 휴대전화 번호 인증 수단도 추가로 제공하고 있다. 출입 시 정보제공 동의를 받기 때문에 매장 관리자가 매장 내 사건 사고와 관련해 출입 기록을 요청하면 바로 출입자 정보를 추출해 점주에게 전달한다. AI 기술이 더해져 미인증자의 출입 여부도 확인이 가능해 한층 더 정확하게 출입자를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
인건비의 상승과 언택트 서비스의 확산, 자동화 기술의 발전에 따라 무인점포는 앞으로 더욱 대형화되고 다양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고객의 편의성 제고, 우후죽순 늘어가는 동종 업계 내 생존을 위한 차별화 전략 마련, 그리고 관련 법적 규제의 정비는 무인점포의 지속 가능성과 시장 내 안정적 정착을 위한 핵심 요소가 될 것으로 보인다.
[글 시티라이프부 이승연 기자 lee.seungyeon@mk.co.kr] [사진 매경DB, 서울교통공사, 이마트24, 현대백화점, 오딘로보틱스, 이승연]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997호(25.09.16)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