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 뒤에 찾아오는 무기력. 이런 감정 상태를 설명할 때 자주 인용되는 것이 엘리자베트 퀴블러로스의 ‘죽음의 5단계’ 이론이다. 사람들이 죽음을 받아들이는 과정이 부정으로 시작해 분노, 타협, 우울, 수용 순으로 이어진다는 얘기다.
사회초년생에게는 취업 실패가 ‘사회적 죽음’에 가까운 상실감을 안겨준다는 점에서 이와 닮았다. 바늘구멍 같은 취업문에 분노하고, 눈을 낮추며 현실과 타협하다가, 끝내 우울감과 무기력에 빠지는 과정이다. 그 종착점엔 ‘쉬었음 청년’이 있다.
최근 유튜브와 SNS에선 구직 중이거나 일 경험이 있는데도 잠시 실업 상태에 놓였다며 ‘쉬었음’이라고 자조하는 글이 많이 보인다. 하지만 통계에서 말하는 쉬었음은 구직 의사도 없고 구직 활동도 하지 않는 비경제활동인구를 말한다. 따라서 실업자나 취업준비생과는 다른 범주로 분류된다.
이들을 향해 중소기업에 가거나 육체노동이라도 하라며 훈계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부모에게 기대어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 ‘캥거루족’이 대부분일 것이란 오해 때문이다. 그러나 쉬었음 중 상당수는 4년제 대학 졸업자이거나 과거 취업 경험이 있는 청년들이다. 향후 취업 의사가 있는 경우도 많다. 취업 준비나 직장생활 과정에서 번아웃 혹은 심리적 상처를 겪고 잠시 멈춰 서 있는 이들이 쉬었음 청년의 실상에 더 가깝다.
취업 문턱이 높아질수록 쉬었음이 늘어나는 현상 자체는 어느 정도 불가피하다. 더 중요한 과제는 이들이 ‘장기 휴직자’가 되지 않도록 다시 일자리로 연결하는 것이다. 정부는 청년들에게 인공지능(AI)을 배우고 창업에 도전하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노동계가 요구하는 정년 연장도 논의 테이블에 올리려는 모습이다. 청년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하나라도 더 만들어야 할 시점에 우선순위 재정립이 필요하다.
반도체 호황으로 소수 대기업의 성과급 규모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지만, 그 성과가 고용시장 전반으로 확산하도록 하는 것 역시 중요한 과제다. 쉬었음 청년들이 다시 일터로 돌아올 때 우리 경제의 성장 엔진도 제대로 작동할 수 있다.
[김금이 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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