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된 이후, 기업들은 사건 발생 시 조사와 징계라는 대응 프로세스를 비교적 안정적으로 구축해왔다. 가해자에 대한 엄정한 처분과 피해자 보호 조치를 취하면 법적 위험 역시 상당 부분 해소된다는 인식이 널리 자리잡게 됐다.
그러나 최근 하급심 판결은 이러한 기업의 ‘절차 중심 대응’에 의존해 온 기업 관행에 중요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상급자가 부하 직원에게 자격증 시험을 대리 응시하도록 지시한 사안에서, 하급심 법원은 회사가 가해자에 대해 징계를 했고, 근로기준법상 조치 의무를 위반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회사가 피해자에게 민법상 사용자책임을 별도로 인정했다. 이는 기업이 사후 조치를 다 했다고 해서 법적 면죄부를 받을 수 없음을 명확히 보여준 것이다.
사적 지시도 기업의 몫, ‘절차 중심’ 대응의 한계를 넘어야
근로기준법이 규정하는 조치 의무는 괴롭힘 발생 이후 회사가 취해야 할 최소한의 절차적 대응 기준에 해당한다. 이를 소홀히 하면 과태료나 형사 처벌의 대상이 된다. 반면, 민법 제756조의 사용자책임은 그보다 훨씬 넓고 실질적인 손해배상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성격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이번 판결에서 법원은 가해자의 행위가 비록 ‘사적 지시’일지라도, 그것이 직장 내 상하 관계, 업무지시자라는 지위를 이용해 이뤄진 것이므로 사무집행 관련성을 인정했다. 즉, 직장 내 괴롭힘 행위 자체가 회사의 지휘·감독권 체계 속에서 발생한 이상, 이는 개인의 일탈을 넘어 사용자에게도 책임이 귀속되는 불법행위라는 취지로 보인다.
기업들이 가장 납득하기 어려운 지점은 회사가 할 수 있는 조치(징계)를 했음에도 왜 추가적인 책임이 남느냐는 부분일 것이다. 법원은 징계는 가해자에 대한 제재일뿐, 피해자가 입은 정신적·물질적 손해를 회복시키는 것과는 별개의 영역으로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징계 완료’가 끝이 아니다… 넓어지는 ‘사용자책임’의 범위
결국, 회사가 가해자를 보직 해임하거나 감봉하는 등의 조치를 취했더라도, 그것이 괴롭힘이 발생하도록 한 조직의 관리 책임이나 감독상의 미비까지 소멸되는 것은 아닌 것이다. 이는 기업이 사건 발생 후의 ‘처리 및 대응 능력’뿐만 아니라 발생 전의 ‘예방 체계’까지 법적으로 평가받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앞으로 기업의 리스크 관리 방식은 보다 근본적인 방향 전환이 요구된다. 형식적 교육을 반복하는 데 그치지 않고, 상급자의 권한 남용이 어떻게 회사의 직접적인 재무적 부담(손해배상)으로 이어지는지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인식시킬 필요가 있다. 그리고 개인 간 문제로 간주되던 사적 지시나 부당한 요구 역시 조직 운영의 문제로 보고 관리 범위를 확장해야 한다.
징계만으로 회사가 책임을 다했다고 보기는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 ‘조치 의무’에 머무르는 대응으로 충분하지 않으며, ‘사용자책임’이라는 보다 무거운 기준이 기업을 평가하고 있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사후 처리의 정교함이 아니라, 애초에 괴롭힘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조직문화와 관리체계를 구축하는데 있다고 할 것이다.
[바른 컴플라이언스리포트]에서는 법무법인 바른 기업법무2그룹 변호사들이 기업경영에 필요한 컴플라이언스 이슈를 주제별로 선별해 연재합니다. 조은주 변호사는 M&A, 컴플라이언스 분야 전문가로 국내 및 외국계 기업의 다양한 자문 업무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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