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처럼 성범죄 증거를 은닉하고 수사 기밀까지 누설한 경찰은 장윤기에 대해 단순 살인 혐의만 적용해 검찰에 넘겼다. 성폭행 목적의 범행이 의심된다는 내부 프로파일링 보고서도 무시했다. 경찰이 확보하지 않은 차량 블랙박스 영상에는 ‘납치’ ‘성범죄’ 같은 음성들도 나온다. 장윤기가 강간 살인보다 형량이 훨씬 가벼운 단순 살인으로 처벌받도록 성범죄 혐의 관련 증거를 일부러 외면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많다. “(장윤기가) 경찰 가족이라는 걸 함구하라고 했다”는 수사팀의 진술까지 나와 상부 개입 의혹도 커지고 있다.
이 사건은 5월 초 발생 직후부터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됐다. 장윤기가 귀가 중이던 17세 여고생을 무참히 살해하고, 이를 말리러 온 남학생도 중상을 입혀 사회적 충격이 컸다. 장윤기는 검찰에 송치되면서 취재진 앞에서 맨얼굴을 빳빳이 들어 사회적 공분을 자아내기도 했다. 전국적인 이목이 집중됐던 사건인 것이다. 그런데도 이럴 정도면 사회적 이목이 쏠리지 않는 사건은 어떻게 처리하겠는가. 이런 식의 사건 처리가 이번뿐이었을지, 여기뿐이었을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검찰청이 폐지되고 새 형사사법 시스템이 도입되는 올 10월부터는 경찰의 권한이 크게 강화된다. 하지만 이번 사건으로 경찰의 신뢰는 실추될 대로 실추된 상태다. ‘국민이 안심할 때까지 경찰 수사의 공정성과 책임성을 높이겠다’는 경찰의 다짐을 누가 믿겠나. 경찰이 신뢰를 회복하려면, 조직의 명운을 걸고 은폐·축소 의혹을 철저히 규명해야 한다. ‘제2의 장윤기 수사’를 막을 수 있는 자체 개혁안도 조속히 내놔야 한다. 물론 경찰만 믿고 있어서는 안 된다. 경찰관 본인이나 친족이 얽힌 사건에 대해선 경찰이 아예 손을 댈 수 없도록 하고, 다른 기관에서 수사하도록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 좋아요 0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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