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는 방첩사가 간첩 활동을 막는 본연의 임무 대신 불법 계엄의 핵심 역할에 가담한 자업자득이라 할 것이다.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은 계엄 당일 여야 대표 등 정치인 10여 명의 검거를 지시했고, 수갑에 포승줄까지 챙긴 체포조가 국회로 출동했다. 계엄 전엔 북한을 거론하며 ‘불안정한 상황을 만들어야 한다’고 메모장에 적었다. 간첩 검거를 위해 부여받은 수사권을 윤석열 전 대통령이 적의를 드러낸 정치인 체포에 쓰고, 나라를 안보 위기에 빠뜨리려는 의도마저 드러낸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윤 전 대통령은 방첩사를 자신에게 충성하는 수족으로 만들려 했다. 방첩사령관에 충암고 후배인 여 전 사령관을 임명한 뒤 계엄 직전까지 수시로 삼청동 안가에 불러 계엄을 모의했다. 방첩사의 전신인 국군기무사령부는 이명박 정부 때 대선·총선 댓글 공작이, 박근혜 정부 때 세월호 유가족 사찰 등이 드러나는 등 불법 정치 개입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이 때문에 기무사가 사실상 해체됐지만 윤석열 정부 때 방첩사로 부활했다. 이후 더욱 노골화된 정치 권력과의 유착은 급기야 시대착오적 친위 쿠데타에 동원되는 결과를 낳았다.
정보 수집과 수사권을 함께 가진 방첩사는 막강한 권력 기관이나 다름없었음에도 감시의 사각지대에 있었다. 또다시 정치 권력에 이용되는 일이 없도록 외부의 민주적 통제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이와 함께 간첩 활동의 징후를 찾아내는 업무와 수사 기능의 분리가 방첩 능력의 약화로 나타나지 않게 실효성 있는 보완책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지난해 정보사 군무원의 블랙 요원 명단 유출 사건에 뒷북 대응한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방첩 역량을 획기적으로 높여야 한다. 이를 통해 방첩 기관이 본업에만 집중하며 다시는 정치에 휩쓸리지 않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좋아요 0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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