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명의 사람 안에 하나의 우주가 있다고 할 만큼 인간의 사유는 무한하다. 사유를 습관화하는 비평가와 학자, 예술가의 경우 사유의 폭은 더 깊다.
2000년 '세계의 문학'에서 비평으로 등단한 뒤 미학 서적을 저술, 번역하고 무대음악가로 활동해온 최정우가 예술에 대한 사유를 펼친 예술 일기 '세계-사이'를 펴냈다.
책은 저자의 사유를 200여 편의 짧은 글로 실었다. 미셸 푸코('미셸 푸코의 유고들'), 바뤼흐 스피노자('스피노자에 대하여'), 슬라보이 지제크('지젝을 읽는다는 것') 등 철학자들에 대한 촌평부터 나희덕 시인의 시집 '파일명 서정시'와 한국 서정시의 가능성에 대한 생각('서정시는 여전히 (불)가능한가'), 책을 읽는 태도('세계의 지워짐과 새로 쓰기') 등 다양한 이야기를 펼친다. 비틀스, 레드제플린, 딥퍼플 등 대중문화('비틀즈의 하얀 앨범' '레드 제플린의 음악에 대하여')에 대한 논평도 수록됐다.
대부분의 글이 산문의 형태로 쓰였지만 "이 책은 한 권의 산문집이 아니라 산문적인 정신으로 쓰인 시의 껍질들"이라고 저자가 강조할 만큼 그 내용은 암시적·파편적이다. 서문('짬통 뒤에 살고 있는 개 두 마리')은 짬통 뒤에 묶여 평생 짬밥을 먹고 산 개들이 결국 짬통 속에서 죽는 우화를 제시해 독서의 방향을 제시하고, 문학에 대한 사유를 드러낸 글 '흩어진 문학'은 현대문학의 파편성을 파편적 형식으로 드러낸다. 비교적 직설적 진술로 쓰인 '찢어진 예술'은 힐링을 위해 소비되는 싸구려 예술에 대한 비판 의식을 드러낸다.
"여기에 쓰인 모든 문자들을 독해 불가능의 외국어 문장으로 읽기를 바랍니다"라는 저자의 의도처럼 책의 글들은 난해하다. 저자는 가독성을 버리는 대신 스스로 자신의 사유를 가장 효과적으로 드러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형식을 취했다.
[김형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