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음악가 하면 떠오르는 전형적인 이미지가 있다. 검은 수트에 단정한 헤어스타일, 진중한 분위기. 전 세계 Z세대를 사로잡은 카운터테너 야쿠프 유제프 오를린스키(35)는 분명 그 틀 밖에 있다.
롤렉스 앰버서더이자 세계 정상급 비보이 크루와 배틀을 즐기는 청년. 무대 위 조명이 켜지면 350년 전 바로크 악보를 깨워 영혼을 울리는 가성(假聲)을 들려준다. 오페라라는 상위 문화와 브레이크댄스라는 스트리트 문화를 동시에 품은 폴란드 출신의 카운터테너를 지난 5일 통영에서 만났다.
오를린스키는 2026 통영국제음악제 상주음악가로 한국을 찾았다. 2023년 오푸스 클래식 남성 성악가상을 수상했고, 파리 2024 올림픽 개막식 무대에 섰던 그를, 진은숙 예술감독이 프랑스 엑상프로방스 축제 현장까지 직접 찾아가 섭외했다.
진은숙 감독은 그를 "말이 필요 없는 최고의 성악가"라고 극찬했으며, 4일 통영서 열린 오를린스키의 리사이틀에서도 4번의 앙코르가 이어지는 내내 객석에서 가장 먼저 일어나 기립박수를 쳤다.
오를린스키는 이번 축제에서 헨델·비발디로 채운 바로크 콘서트(1일), 모차르트·쇼스타코비치를 아우른 오케스트라 협연(3일), 피아니스트 미하우 비엘과의 리사이틀(4일)까지 세 가지 다른 프로그램을 선보였다. 그는 "상주음악가라면 똑같은 걸 할 수 없지, 무언가 발명해야 해, 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카운터테너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보여드리고 싶었다"고 했다.
통영서 접한 관객에 대한 인상도 각별했다. "제가 언제 이런 객석의 집중력을 경험했나 싶을 정도였다. 공연 중 흐르는 그 정적은 황홀할 정도였다"고 했다. 특히 10대·20대 젊은 관객이 많은 분위기가 인상적이었다고 덧붙였다."틱톡이나 인스타그램에서 모든 것이 순식간에 지나가는 시대에, 사람들과 두 시간 동안 공연장에 함께 있는 건 정말 소중한 경험이에요. "
전세계 Z세대 팬을 거느린 오페라 스타인 그가 사실 10대때 오페라를 좋아하지 않았다는 고백은 흥미롭다. 12살때 처음 찾은 오페라 극장에서 성악가들의 발성에 압도당해 질려버렸다는 것. 그를 다시 불러들인 건 아마추어 합창단 활동을 통해 접한 바로크 음악의 매력 덕분이다. 변성기 이후 자신의 팔세토(가성)가 감정을 가장 잘 표현하는 목소리임을 깨달으면서 카운터테너의 길로 들어섰다.
카운터테너는 남성이 훈련을 통해 도달할 수 있는 고음역대 발성으로, 바로크 시대 거세된 성악가 '카스트라토'의 역할을 현대에 계승하는 목소리다. 이후 하루 14시간씩 테크닉을 연마했고, 지금은 도서관에서 먼지 쌓인 고악보를 발굴해 세계 최초로 연주하는 작업에 천착하고 있다.
오를린스키를 규정하는 또 다른 정체성은 브레이크댄스다. 18살에 만난 스트리트 문화는 그에게 자신만의 스타일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해방구였다. 그는 "비보잉의 신체 훈련이 호흡과 근육 통제력을 길러줘 무대 위 노래에도 직접적인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2025년 인천 공연 당시 한국의 비보잉 크루를 직접 찾아가 함께 연습할 만큼 브레이크댄스에 진심으로, 4일 통영서 앙코르 무대에서도 몸을 거꾸로 새우는 동작으로 객석을 열광시켰다.
인터뷰 당일 그는 손목에 롤렉스 시계를 찼지만 핑크색 캡모자를 쓰고 초록색 양말을 신고 나타났다. 어느 한쪽으로 분류되기를 거부하는 태도는 패션에서도 그대로였다. 롤렉스·넷플릭스·루이비통·BMW·나이키 등 글로벌 브랜드의 러브콜이 끊이지 않지만 선택 기준은 엄격하다.
롤렉스에 대해서는 "단순한 후원을 넘어 바로크 악보 연구와 제작을 실질적으로 지지해주는 창의적 파트너"라고 했다. 루이비통과는 창립 200주년을 기념해 200명의 아티스트가 참여한 트렁크 아트 프로젝트를 함께했고, 이는 뉴욕·파리·도쿄 순회 전시를 거쳐 자선 경매로 이어졌다."전 그저 제가 하고 싶은 것을 제 방식대로 할 뿐이고, 젊은 세대들이 그걸 좋아해 준다면 정말 감사한 일"이라고 했다.
오를린스키의 통영 공연은 6월까지 이어지는 세계 투어의 시작점이었다. 피아니스트 미하우 비엘과 함께한 이번 리사이틀 프로그램, 바로크와 현대음악, 폴란드 가곡을 버무린 무대를 그대로 들고 4월 둘째 주부터 일본·싱가포르를 거쳐 유럽으로 향한다.
여정의 종착점은 클래식 음악사에 남을 한 장면이다. 오는 6월 7일, 이탈리아 밀라노의 라 스칼라 극장에서 카운터테너로서는 역사상 최초의 단독 리사이틀을 갖는다. 1778년 개관 이래 250여 년간 세계 오페라의 성지로 군림해온 라 스칼라에 카운터테너가 단독 주인공으로 서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제가 알기로 카운터테너로서 라 스칼라 최초의 리사이틀입니다. 정말 믿기지 않는 일이죠. 감사한 일입니다.(웃음)"
통영=조민선 기자 sw75j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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