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북항에 '카르멘' 야외무대 세운 김현정 "처음엔 솔직히 큰일났다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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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튀지 않는 무대, 좋은 무대보다 좋은 공연 선호"
바다·바람·도시 스카이라인을 무대로 끌어들인 야외오페라
오페라 '카르멘' 무대 조감도 최초 공개

객석과 무대를 가르는 액자형 경계 안에 도시와 광장, 궁전과 거리의 풍경이 압축된다. 보통의 오페라는 실내 극장의 프로시니엄(프레임) 안에서 세계관이 펼쳐진다. 그러나 오는 11일부터 이틀간 부산 북항 랜드마크 부지 특설무대에 오르는 야외오페라 <카르멘>은 출발점부터 다르다. 이 작품의 무대는 극장 안에 갇히지 않는다. 바다와 하늘, 바람과 도시의 스카이라인이 모두 비제의 음악 속으로 들어온다.

무대디자이너 김현정 프로필 / 김현정 제공.

무대디자이너 김현정 프로필 / 김현정 제공.

이번 공연의 무대 디자인과 설계는 김현정이 맡았다. 그는 부산대 미술대학 가구디자인과와 이탈리아 브레라 국립미술원을 졸업했다. 국립오페라단 미술감독을 지내며 여러 오페라 무대를 만들었다. <아이다>, <토스카>, <라 보엠>, <투란도트>,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 <안드레아 셰니에> 등의 무대가 그의 손에서 탄생했다. 그런 그가 이번에는 부산 북항의 열린 공간에 비제의 오페라 <카르멘>을 세운다.

김현정이 디자인한 2024년 서울문화재단 한강노들섬클래식 '카르멘'의 무대조감도 / 김현정 제공.

김현정이 디자인한 2024년 서울문화재단 한강노들섬클래식 '카르멘'의 무대조감도 / 김현정 제공.

2024년 서울문화재단 한강노들섬클래식 '카르멘'의 한 장면 / 서울문화재단 제공.

2024년 서울문화재단 한강노들섬클래식 '카르멘'의 한 장면 / 서울문화재단 제공.

김현정은 실내극장과 야외무대의 차이를 이렇게 설명했다. "극장은 제4의 벽이라 일컫는 프로시니엄(프레임) 안에 가상의 공간을 실제 공간처럼 만든다면, 야외공간은 사방이 노출된 실제 공간에 무대를 세우는 것입니다." 야외 공연에서는 지나가는 사람, 바람 소리, 하늘, 주변 풍경이 모두 공연과 함께 노출된다. 그래서 그가 야외공연을 디자인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주변 환경과의 조화로움"이다. 그는 "야외 모든 풍경을 세트의 일부분처럼 보이게 하고 싶었다"고 했다.

북항의 첫인상에 대한 질문에 그는 "솔직히 큰일났다고 느꼈다"고 회상했다. 바다를 배경으로 들쑥날쑥 세워진 빌딩들. 게다가 바닥은 진흙더미에 바람도 강했다. 그러나 그는 그 난점을 역으로 무대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조명기와 무대 구조를 세우기 위해 쓰이는 야외 트러스를 숨기지 않고, 하나의 오브제로 활용하기로 했다. 무대를 지탱하는 구조물이 곧 무대가 된 셈이다.

엄숙정이 연출하고 김현정이 무대를 제작한 '라 보엠' 무대 조감도 / 김현정 제공.

엄숙정이 연출하고 김현정이 무대를 제작한 '라 보엠' 무대 조감도 / 김현정 제공.

엄숙정이 연출하고 김현정이 무대를 제작한 '라 보엠' 무대 / 세종문화회관 제공.

엄숙정이 연출하고 김현정이 무대를 제작한 '라 보엠' 무대 / 세종문화회관 제공.

이번 무대는 오페라 연출가 엄숙정과의 협업으로 완성된다. 두 사람은 2023년 대구오페라하우스 <피가로의 결혼>을 통해 처음 호흡을 맞췄다. 이후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 <라 보엠>, <토스카>등 여러 작품을 함께했다. 김현정은 엄숙정 연출자에 대해 "여러 사람의 말을 잘 경청하고, 각 파트의 입장을 유기적으로 잘 이끌어가는 연출자"로 소개했다. 두 사람의 공통 원칙은 고정된 양식보다 작품과 상황에 맞는 해법을 찾는 데 있다. 상황에 맞게 유기적으로, 어떤 틀에 갇히지 않고 자유롭게 생각하고 다양한 시도를 해보자는 주의다.

2025년 SAC 오페라갈라 '라 트라비아타' 무대 조감도 / 김현정 제공.

2025년 SAC 오페라갈라 '라 트라비아타' 무대 조감도 / 김현정 제공.

2025년 김현정이 제작한 SAC 오페라갈라 '라 트라비아타' 무대 / 예술의전당 제공.

2025년 김현정이 제작한 SAC 오페라갈라 '라 트라비아타' 무대 / 예술의전당 제공.

김현정이 생각하는 좋은 오페라 무대도 그 연장선에 있다. 그는 무대만 튀는 공연을 좋은 공연으로 보지 않는다. "무대만, 조명만, 의상만, 성악가만 튀지 않는 조화로운 무대가 이상적"이라고 말했다. 관객이 공연장을 나서며 "무대가 좋았다"고 말하는 것보다 "공연이 좋았다"고 말할 때 더 기쁘다는 것이다. 무대는 스스로를 과시하는 장식이 아니라, 음악과 인물, 조명과 의상, 연기와 드라마가 함께 작동하도록 만드는 공간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번 <카르멘>의 핵심 이미지는 '붉은색'이다. 김현정은 장면과 구조물, 오브제를 통틀어 이번 무대를 "붉은색으로 대표한다"고 했다. 그의 해석에서 붉은색은 불꽃처럼 타오르는 정열이자 관능이다. 돈 호세를 파멸로 이끄는 카르멘의 본능적 사랑이다. 동시에 도덕과 사회적 규범에 묶이지 않는 자유와 반항의 색이기도 하다. 그는 "붉은 천은 소를 자극해 죽음으로 이끄는 도구이고, 세트에 칠해진 붉은색은 투우사의 피 혹은 소의 피로 비극적 운명을 암시하는 복선"이라고 했다.

부산 야외 오페라 '카르멘' 4막 무대 조감도 / 김현정 제공.

부산 야외 오페라 '카르멘' 4막 무대 조감도 / 김현정 제공.

무대 위에는 자유롭게 휘날리는 붉은 천과 미로 같은 붉은 길이 놓인다. 투우장을 연상시키는 계단 무대, 스페인풍의 낡은 돌담, 바닥까지 이어지는 핏빛의 선이 카르멘의 세계를 만든다. 야외무대 특성상 전환은 제한적이다. 김현정은 계단 무대의 일부를 빼고 돌려가며 여러 장면을 만들고, 울타리를 활용해 담배공장, 광장, 산속, 투우장의 이미지를 압축한다. 마지막 장면에서는 흩어져 있던 계단이 하나로 합쳐져 온전한 투우장이 되고, 그 앞에 붉은 투우장 울타리가 배치된다.

그는 이번 작업에서 가장 애착이 가는 구조물로 무대 양쪽을 수놓을 '붉은 천'을 꼽았다. 예산은 가장 적게 들었지만 현장에서 모양을 잡기까지 해 가장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였기 때문이다.

무대 디자이너 김현정에게 이번 부산 야외 오페라 <카르멘>은 어떤 작품으로 기억될까. "부산은 저의 고향이지만 오페라의 불모지입니다. 이 공연이 부산의 공연문화가 한 단계 도약하는 밑거름이 되길 바랍니다."

조동균 기자 chodog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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