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 조르던 나루토·엔젤이…이젠 내 월급으로 '오픈런' [덕질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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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오전 11시 서울 마포구 AK플라자 홍대 1층. 완구 브랜드 '수호천사 엔젤이'의 첫 팝업스토어에 사람들이 몰려있다. /사진=박수빈 기자

3일 오전 11시 서울 마포구 AK플라자 홍대 1층. 완구 브랜드 '수호천사 엔젤이'의 첫 팝업스토어에 사람들이 몰려있다. /사진=박수빈 기자

90·00년대생 소년, 소녀들의 '첫 최애'가 돌아왔다.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달려가 만나던 수호천사 엔젤이, 나루토 등 캐릭터 지식재산권(IP)이 홍대, 여의도, 잠실 팝업스토어를 통해 다시 소비되고 있다. 이들과 학창시절 함께한 IP는 더 이상 유행 지난 콘텐츠가 아니었다. 오픈런은 물론 예약 경쟁이 일어날 정도다. 어릴 적 부모님을 졸라 사던 캐릭터는 이젠 구매력을 갖춘 2030이 기꺼이 돈을 쓰는 '소장 IP'가 됐다.

3일 오전 11시 서울 마포구 AK플라자 홍대 1층. 완구 브랜드 '수호천사 엔젤이'의 첫 팝업스토어로 개장 시간에 맞춰 2030 여성들이 몰렸다. 문을 연 지 10분 만에 입장과 계산 대기 줄이 생겼다. 20여분이 지나자 옆 가게 너머까지 입장 대기 줄이 이어졌다. 방문객들은 "어릴 적 갖고 놀던 엔젤이를 부모님 눈치 보지 않고 직접 살 수 있어 좋다"고 입을 모았다.

부모님 지갑 열던 엔젤이…이젠 내 지갑 연다

3일 오전 11시 서울 마포구 AK플라자 홍대 1층. 완구 브랜드 '수호천사 엔젤이'의 첫 팝업스토어에 사람들이 몰려있다. /사진=박수빈 기자

3일 오전 11시 서울 마포구 AK플라자 홍대 1층. 완구 브랜드 '수호천사 엔젤이'의 첫 팝업스토어에 사람들이 몰려있다. /사진=박수빈 기자

'그 시절 소녀들'은 10여 년이 흘러 구매력을 갖춘 2030이 됐다. 어릴 때는 부모님 지갑을 열게 했던 엔젤이가, 이제는 자기 지갑을 여는 캐릭터가 된 것이다. 걸그룹 아일릿 멤버 원희 또한 수호천사 엔젤이 팬이라 밝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도 화제가 되기도 했다.

엔젤이 비밀일기장, 엔젤폰을 가지고 놀던 '그 시절 소녀'들은 팝업에서 어릴 적 추억을 다시 꺼냈다. 남자친구와 함께 팝업 오픈런을 한 신모씨(20)는 "유치원생 때 엔젤이를 갖고 놀았다. 엔젤이 장난감은 다 갖고 있을 만큼 좋아했다"며 "어릴 때는 제가 사는 게 아니라 제 맘대로 못 샀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아서 그 점이 가장 좋다. 오늘 9만원 썼다"고 말했다.

/사진=박수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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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호천사 엔젤이 팝업을 찾은 2030 여성들은 해당 캐릭터만 찾지 않았다. 안녕 자두야 등 다른 추억의 캐릭터에도 최근 좀 더 지갑을 열게 된다고 이들은 말했다. 명신영 씨(28)는 "최근에는 자두 팝업도 갔었다. 어렸을 때는 엄마 돈이기도 하고, 비싸게만 느껴졌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며 "어렸을 때 갖고 놀거나 봤던 캐릭터들을 보면 그때 감정이 떠올라서 더 소장하고 싶더라"라고 했다. 신씨 또한 "엔젤이 말고 프리티 리듬이라고 어렸을 적부터 좋아하던 캐릭터가 있는데 이건 팝업은 하지 않지만 굿즈가 나올 때마다 산다"고 말했다.

수요는 수치로도 확인된다. 지난 1월 진행된 텀블벅 굿즈 펀딩에는 3874만원 넘게 모였다.

'그 시절 소년'도 줄 섰다…원나블의 귀환

지난달 11월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더현대 서울에서 열린 스파오 나루토 팝업스토어 사람들이 개장 시간에 맞춰 몰렸다. /사진=스파오

지난달 11월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더현대 서울에서 열린 스파오 나루토 팝업스토어 사람들이 개장 시간에 맞춰 몰렸다. /사진=스파오

엔젤이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유통업계에선 1990~2000년대생이 어린 시절 즐겼던 IP를 다시 꺼내는 팝업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최근 인기 애니메이션인 귀멸의 칼날, 주술회전, 체인소맨 뿐만 아니라 원피스, 나루토, 블리치 등 이른바 '원나블' 세대의 추억 IP가 새로운 흥행 공식으로 떠오르고 있다.

추억 IP 열풍은 소녀들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그 시절 소년'들은 나루토에 환호했다. 이랜드월드에서 운영하는 SPA 브랜드 스파오는 지난달 11일부터 24일까지 여의도 더현대 서울에서 애니메이션 나루토를 포함한 팝업스토어를 열었다.

/사진=스파오

/사진=스파오

팝업 수요는 개장 전부터 몰렸다. 팝업 사전 예약은 1만5000명 이상이 몰려 1분 만에 마감됐다. 팝업 첫날, 오픈런을 위해 몰린 고객들로 개장 시간인 10시30분부터 현장 대기는 이미 500팀이 넘어갔다. 당시 팝업을 방문했던 30대 남성 A씨는 "어렸을 때는 애니메이션만 주로 봤고, 이렇게 옷이나 수면안대 등 굿즈도 없어서 사고 싶어도 살 수 없었다"며 "그런데 지금은 애니에 나오는 캐릭터들처럼 써클렛, 겉옷을 입을 수 있게 나와서 완전 감다살(감 다 살았네)이다"고 말했다.

추억된 줄 알았는데…'검증된 IP' 선택한 기업들

지난달 5일 오후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몰에서 열린 메이플스토리 팝업에서 2030 소비자들이 랜덤 뽑기(가챠)를 즐기고 있다. /사진=박수빈 기자

지난달 5일 오후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몰에서 열린 메이플스토리 팝업에서 2030 소비자들이 랜덤 뽑기(가챠)를 즐기고 있다. /사진=박수빈 기자

애니메이션뿐 아니라 게임 IP도 추억 소비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23주년을 맞은 메이플스토리는 '그 시절 소년 소녀'들을 사로잡았다.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몰 메이플스토리 팝업스토어는 개장 후 3일 만에 1만명이 몰렸다. 오는 14일 종료를 앞두고는 누적 방문객 4만명을 넘었다. 마우스 장패드, 봉제 인형 등 40여 개 굿즈 또한 매장에서 완판됐다.

전문가는 캐릭터 소비가 대중화되면서 추억 IP를 소비하는 심리적 장벽도 낮아졌다고 봤다. 이홍주 숙명여대 소비자경제학과 교수는 "소비자, 기업, SNS 환경 등 소비 여건이 지난해보다 잘 갖춰졌다는 걸 의미한다"며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캐릭터를 소비하는 게 다소 마니아적인 문화로 여겨졌지만 지금은 많이 대중화됐다. 그러면서 캐릭터 소비에 대한 사회적 심리적 장벽이 낮아진 것"이라고 분석했다.

기업이 최신 IP보다 오래된 IP를 활용하는 이유로는 '검증'을 들었다. 이 교수는 "추억의 IP가 매출을 증가시켜준다는 확실한 보장이 있는 건 아니지만 실패를 줄일 수 있는 요인"이라며 "미키마우스가 꾸준히 잘 팔리는 이유는 어른도 아이도 아는 IP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교수는 "검증된 콘텐츠는 구매력을 가진 소비자와 만났을 때 수익을 높일 수 있는 가장 좋은 아이템이 된다. 기업 입장에서 추억 IP를 선택하는 이유가 아닐까 한다"고 설명했다.

팬덤의 '설렘'은 단순 '덕질' 소비를 넘어서 실질적인 경제 지표를 움직이는 '덕질 경제'로 자리잡았습니다. K-컬처를 매개로 발생하는 모든 현상을 총망라해 대중의 열광이 어떻게 '설레는 소비'로 치환되는지 그 이면의 수익 구조와 비즈니스 모델을 날카롭게 포착하고자 합니다.

박수빈 한경닷컴 기자 waterbe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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