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적 없는 영화인데 왜 이렇게 익숙할까 [미술관의 엽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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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 전시·공연 본 적 없는 영화인데 왜 이렇게 익숙할까 [미술관의 엽서들] 신디 셔먼의 ‘무제 영화 스틸(Untitled Film Still) #21’(1978) <뉴욕 현대미술관(MoMA)> 도시 한복판, 높은 건물 사이로 한 여자가 걸어간다. 알프레드 히치콕 영화에서 볼 법한 인물이다. 짧은 머리와 단정한 옷차림. 카메라를 향하지 않은 채 어딘가를 바라보는 표정에는 묘한 긴장감이 감돈다. 방금 누군가와 헤어진 것일까. 누군가를 만나러 가는 길일까. 혹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누군가에게 쫓기고 있는 것일까.이 사진은 미국 작가 신디 셔먼이 스스로 분장하고 연기해 완성한 가상의 영화 장면 ‘무제 영화 스틸(Untitled Film Still) #21’이다. 뉴욕 현대미술관(MoMA)은 1995년 이 연작에 해당하는 69점 전체를 소장했다. 그중 #21로 분류되는 이 작품은 1997년 MoMA에서 열린 작가의 규모 회고전에서 주요 작품으로 조명받았다.‘무제 영화 스틸’는 셔먼이 1977년부터 1980년까지 제작한 흑백 사진 연작이다. 셔먼은 카메라 앞에 직접 서서 영화 속 여성의 전형을 연기했다. 순진한 소녀, 외로운 주부, 도시의 커리어우먼, 팜므파탈 등 당시 할리우드 영화와 필름 누아르, 유럽 예술영화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던 여성상이다.하지만 그는 특정 영화의 장면을 그대로 재현하지는 않았다. 대신 관람객이 어딘가에서 본 듯하지만 기억나지 않는 장면을 떠올리도록 했다. 작품을 보는 이가 저마다의 이야기를 완성하도록 한 것이다. 이 사진 속 여인은 무엇인가를 하는 듯하지만 그 직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또 앞으로 무엇을 할지는 알 수 없다. 셔먼은 이에 대해 “행동과 행동 사이의 장면”이라고 설명했다.사진으로 세계적인 거장이 된 셔먼에게도 사진은 처음부터 자신 있는 매체가 아니었다. 대학 신입생 시절이던 1970년대 초, 그는 사진 기초 과목에서 낙제해 재수강해야 했다. 이때 만난 사진 과목 교수 바버라 조 리벨은 사진의 기술보다 매체를 통해 어떤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지에 주목하도록 이끌었다.당시 셔먼은 방에서 혼자 화장하며 다른 사람으로 변신하는 놀이를 즐겼다. 자연스러운 얼굴을 강조하던 당시 분위기 속에서 화장은 그에게 비밀스러운 취향이었다. 셔먼은 화장을 하고 다른 캐릭터가 되어보곤 했다. 동료이자 당시 연인이었던 작가 로버트 롱고는 셔먼에게 직접 카메라 앞에 서보라고 제안했다. 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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