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의 이동: 결과에서 출발점으로
공정거래법은 ‘자유롭고 공정한 경쟁’을 보호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담합,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 등을 규제하고, 경쟁을 저해하는 구조를 바로잡음으로써 궁극적으로 소비자 후생을 증진하고자 한다. 이처럼 소비자 보호는 경쟁을 보호함으로써 달성하고자 하는 궁극적 목표이지 그 자체가 직접적인 보호 대상은 아니었다.
그러나 최근의 흐름은 분명히 다르다. 소비자 보호는 더 이상 경쟁의 ‘결과’의 지위에 머무르지 않고, 규제의 ‘출발점’으로 이동하고 있다. 가격 인상이나 시장 봉쇄와 같은 전통적 경쟁 제한 행위뿐 아니라, 소비자의 선택을 왜곡하거나 오인시키는 다양한 행태들이 규제의 전면에 등장하고 있다. 이른바 ‘다크패턴’이라 불리는 사용자 인터페이스 설계, 구독경제에서의 해지 방해 구조, 맞춤형 가격과 추천 알고리즘에 이르기까지, 규제의 초점은 점차 소비자의 의사결정 과정 그 자체로 향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디지털 환경의 고도화와 무관하지 않다. 플랫폼과 인공지능 기술은 소비자의 선택을 돕는 동시에, 그 선택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구조적 힘을 갖게 되었다. 과거에는 가격과 품질, 서비스가 경쟁의 핵심이었다면, 이제는 정보의 배열 방식, 클릭 한 번의 동선, 나아가 기본값의 설정까지도 경쟁을 좌우한다. 경쟁은 더 이상 가격표 위에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화면의 구조와 설계, 그리고 이용자가 인식하지 못하는 선택의 흐름 속에서 작동한다. 이제 경쟁은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설계된 선택: 보이지 않는 경쟁의 시대
이러한 맥락에서 소비자 보호의 강화는 필연적인 측면이 있다. 소비자가 합리적 선택을 할 수 있는 전제가 무너진다면, 경쟁 자체의 의미도 퇴색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공정거래법이 소비자의 의사결정 왜곡을 규율의 영역으로 포섭한 것은 공정한 경쟁의 토대를 마련하기 위한 자연스러운 확장으로 볼 수 있다. 보이지 않는 경쟁이 작동하는 만큼, 보이지 않는 왜곡 역시 규율의 대상이 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에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소비자 보호의 범위가 무한히 확장될 경우, 규제는 경쟁 보호라는 본래의 목적을 넘어 기업의 행태를 전방위적으로 통제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위험이 있다. 모든 불편한 사용자 경험이 규제의 대상이 될 수는 없고, 모든 설득이 기만으로 간주될 수도 없다. 소비자의 선택에 영향을 미친다는 이유만으로 기업의 전략을 일률적으로 제한한다면, 이는 경쟁의 역동성을 약화시키고 혁신을 위축시킬 수 있다.
균형의 과제: 혁신과 보호의 경계 설정
특히 디지털 환경에서는 ‘설계’와 ‘기만’의 경계가 명확하지 않다. 이용자의 편의를 위한 설계와 사업자의 이익을 위한 설계는 종종 동일한 형태를 취한다. 어느 지점에서 규제가 개입해야 하는지는 단순한 법적 판단을 넘어, 규제의 철학과 정책적 선택의 문제에 가깝다. 이때 중요한 기준은 단순히 소비자 불편의 존재 여부가 아니라, 그 행위가 경쟁질서를 실질적으로 왜곡하는지 여부일 것이다.
소비자 보호는 분명 공정거래법의 중요한 가치이다. 그러나 그것이 경쟁이라는 또 다른 축을 대체할 수는 없다. 경쟁이 작동하는 한, 소비자는 더 나은 선택지를 확보할 수 있고, 기업은 혁신을 통해 차별화를 시도하게 된다. 반대로 경쟁이 약화된 상태에서의 소비자 보호는 단기적인 불편을 줄일 수는 있어도, 장기적인 후생을 담보하지는 못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균형이다. 선택이 설계되는 경쟁 환경을 이유로 설계에 대한 규제를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지, 기업의 재량을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지에 대한 선택은 규제의 본질을 시험하는 문제다. 규제는 시장을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도록 돕는 장치에 머물러야 한다. 소비자를 보호하는 가장 강력한 수단은 여전히 경쟁이다. 그리고 공정거래법의 역할 역시, 그 경쟁이 왜곡되지 않도록 필요한 경계를 설정하는 데에 있다. 보이지 않는 경쟁의 시대에, 보이지 않는 규율의 기준을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가 앞으로의 과제가 될 것이다.
[BKL 공정거래리포트]에서는 변화하는 경쟁법 환경 속에서 기업이 직면하는 주요 규제 이슈, 공정거래 정책 동향, 주요 판례와 조사 사례를 분석하고 기업 경영과 의사결정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시사점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강정희 변호사는 로펌, 기업, 대법원 재판연구관의 다양한 직역을 두루 경험하고, ‘빅데이터와 배제남용행위’를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은 공정거래 및 개인정보 분야 전문 변호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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