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은행 고객 A씨는 최근 2억8000만원짜리 정기예금의 중도 해지를 요청했다. 경매 대금을 내기 위해 해지한다고 설명했지만, 사건 번호조차 제출하지 못했다. 보이스피싱을 의심한 기업은행은 SK텔레콤에 A씨 사례를 의뢰했다. SK텔레콤은 A씨가 금융사 직원을 사칭한 B씨와 통화하는 과정에서 악성 앱에 노출된 사실을 확인했다. B씨의 지시에 따라 예금을 인출하려고 한 A씨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시중은행이 보이스피싱과의 전쟁에 나섰다. 금융소비자 보호의 중요성이 높아진 데다 은행권 보이스피싱 피해 보상 책임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15일 금융권에 따르면 기업은행의 올해 보이스피싱 예방액은 169억원(8월 기준)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10% 증가했다. 지난 4월 SK텔레콤과 손잡고 도입한 ‘인공지능(AI) 보이스피싱 피해·탐지 서비스’를 구축한 게 비결로 꼽힌다.
예컨대 기업은행이 보이스피싱 의심 계좌를 발견하면, SK텔레콤이 AI를 통해 통화 패턴·피싱 시도 여부 등을 추적하는 식이다. 예방 효과도 뛰어난 편이다. 도입 이후 4개월간 35억원의 보이스피싱 피해를 막았다. 올해 기업은행 전체 보이스피싱 예방액의 20%에 달한다.
다른 은행도 마찬가지다. 신한은행은 지난달 전국 영업점에 보이스피싱 전담 창구를 설치했다. 국민은행은 보이스피싱 모니터링 인원을 두 배 넘게 늘렸다. 하나은행은 AI와 결합한 탐지 시스템을 구축했고, 우리은행은 체험형 보이스피싱 예방 교육 서비스를 제공한다. 농협은행은 인증 절차 강화를 위해 안면인식 서비스를 확대하고 있다.
지난해 보이스피싱에 악용된 6대 은행(국민·신한·하나·우리·농협·기업은행) 계좌만 3만 개가 넘었다. 은행 등 금융사가 보이스피싱 피해를 배상하도록 하는 정책도 추진 중인 만큼 선제적으로 예방책을 마련하겠다는 구상이다.
장현주 기자 blackse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