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말도 안 하면, 아무 일 안 일어나
보완수사 요구권, 그런 뒤틀림의 셈법
5천만이 안심할 정답으로 고쳐 써야
끔찍한 사건이 뜻하지 않은 깨달음을 안겼다. 참 서글픈 방식으로 우린 또 눈을 뜬다.
10월 2일 시작되는 새 형사 사법 체계가, 의외로 내 일상과 맞닿아 있다는 사실 말이다.
이날부터 검찰청이 사라지고 경찰이 수사의 중심에 서는 일대 전환이 시작된다.
가보지 않은 길에서 당장 드는 걱정은 업무 범위가 급격히 확대된 경찰이 과연 역할을 제대로 해낼지다.
커지는 권한에 비례해 부실 수사와 사건 은폐 사례의 위험이 공상(空想)의 영역이 아님을 광주 여고생 살해 사건이 낱낱이 증언하고 있다.
다층의 제어 장치가 시급한데도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이미 정한 답을 바꾸려 하지 않고 있다. 검사의 직접 보완수사 권한은 전면 철폐하고, 오로지 요구권 정도만 허용하겠다는 입장이다.
정부가 궁여지책으로 내놓은 검사의 ‘수사팀 변경 요청권’ 역시 오십보백보다. 보완수사 요구에 소극적으로 임하는 수사팀을 바꾸도록 ‘요청할’ 권한을 준단다.
우린 요구·요청이라는 이름을 가진 제도가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를 경험칙으로 알고 있다. 이재명 정부에서 있었던 국회 인사청문회 상황을 떠올려보자.
인사청문회법은 국회에 자료 제출 요구권을 보장하지만 실상은 어떠했나.
후보자들은 개인정보 등을 이유로 요구권을 교묘하게 피해 갔다. 초대 김민석 국무총리부터 이번 한성숙 총리까지 일관되게 자료 제출 요구에 성실히 응하지 않았다.
우리의 뇌리에 존재감 자체가 희미해진, ‘국무위원 해임 건의권’이란 것도 있다.
수십 년 헌정사에서 총리가 이 권한을 독자적으로 행사해 뜻을 관철한 사례는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힌다. 그마저도 정권 내부의 약속대련 성격이 짙다.
요청과 요구로 설계된 입법의 구조물들은 이렇듯 현실 세계에 “그 정도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라고 읊조리고 있다.
요구권 정도의 여당 답안에서 기자가 특히 걱정하는 시나리오는 이런 것이다. 시늉만 내는 보완수사요구권이 역으로 경찰의 부실 수사와 사건 은폐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장치가 될 위험이다.
보완수사 요청에 경찰이 눈속임으로 대응한 사건에 ‘보완수사 완료’라는 도장이 찍히면 도리어 절차적 완결성이라는 외피를 입는다. 이는 부실·조작 수사의 최종 감별자인 판사의 눈까지 흐리게 할 것이다.
직접 수사 권한이 완전히 해체되면 부실 수사를 잡아내는 검사들의 능력치도 빠르게 약화할 터이다. 기자가 현장에서 멀어지면 금세 감(感)이 떨어지듯, 수사 업무에서 멀어져 기소에만 몰두하는 ‘책상머리 검사’는 명민한 감각을 잃는다.
그나마 다행인 건 안타까운 이채원 양 사건을 계기로 우리가 보완수사권 문제를 ‘검찰 멸절’의 프레임에서 ‘국민 사법 편익’의 관점으로 보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답정너’를 고집하는 여당에 간곡히 당부한다. 그 어떤 입법 설계의 당위도 민생과 국민 편익에 앞설 수 없다.
마침 여당 의원 11명이 민생과 사회적 약자 대상 범죄에 한해 검사의 직접 보완수사권을 제한적으로 인정하는 개정안을 발의했으니, 이를 숙의의 출발점으로 삼기를 바란다.
형사 사법체계의 변경이 사건 일선의 진실 규명 노력과 헌신을 북돋아야지, 족쇄가 되어선 곤란하다.
161명의 집권 여당 국회의원이 자위하는 답이 아닌, 5000만 국민이 오롯이 안심하는 답을 내놓아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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