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미술관과 박물관은 좋은 건물에 좋은 물건을 갖다두는 식이었어요. 미술품이 가진 성격을 관람객이 어떻게 볼지 고민하면서 만들지 않았죠."
윤근주 일구구공 도시건축 건축사사무소 대표 "앞으로 뉴미디어를 비롯한 새로운 형식의 예술을 전시할 때 건축은 어떻게 바뀌어야 할지 새로운 숙제가 생겼다"며 이같이 말했다. 지난 5월부터 열리고 있는 서울도시건축학교에서 '건축과 전시: 미술관 건축'이라는 주제로 발표한 윤 대표를 만났다.
윤 대표는 충북대와 sa서울건축학교에서 건축 수업을 받았다. 기오헌과 원오원에서 건축 실무를 익혔다. 2015년부터 4년간 서울시에서 일하며 공공건축정책을 수립하기도 했다.
과거의 갤러리는 회랑이라는 본래 뜻처럼 복도였다. 벽도 높고, 볕도 잘 들고, 사람들이 그림을 보기에 적합한 곳에 그저 그림을 걸어둔 셈이다. 이때 그림이 걸린 건물은 본래 기능과는 다른 것이 대부분이었다. 루브르 박물관만 해도 그 본래 목적은 궁전이었다. 미술품이 가진 성격을 고려해서 만든 건물이 아니라 그냥 멋진 건물에 좋은 작품을 가져다 둔 셈이다.
최근에는 과거에 쓰다가 사용하지 않는 건물을 활용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유럽은 과거 가스를 많이 썼고, 그래서 압축 탱크가 도시 곳곳에 있는데 지금은 다 비어 있다. 곡물저장소 같은 곳도 마찬가지다. 과거의 쓸모를 다해 빈 곳으로 남았다. 윤 대표는 "이런 곳에서 새로운 방식의 전시가 이뤄지고 있다"며 "새로운 전시를 하려고 공간을 만든 게 아니라 공간을 어떻게 활용할까 고민한 끝에 나온 전시"라고 설명했다.
윤 대표는 경기도 도립박물관의 리모델링을 담당했다. 경기도는 한강을 끼고 있고, 석기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문화가 이어져 왔다. 이 때문에 어느 시대 하나 빠지지 않고 촘촘하게 다양한 유물을 가지고 있다. 도립박물관은 기존의 다른 박물관과 유사하게 연대기 순으로 전시해왔다. 윤 대표는 여기서 변화를 추구했다. 순서대로 보는 게 아니라 관심을 가진 부분, 자세히 보고 싶은 부분을 볼 수 있는 식으로 바꿨다.
그는 "모든 벽을 없애고 보고 싶은 유물을 볼 수 있는 방식으로 바꿨다"며 "기둥은 그대로 뒀지만 유리 박스를 씌워 선택형 전시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최근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사진 미술관인 서울사진미술관을 지었다. 기획에만 5년, 공모와 설계 끝에 건물을 완성하는데 다시 5년, 총 10년이 걸린 건축물이다.
건물 외부부터 관객들과 상호작용이 가능하게 했다. 그는 "관공서이기 때문에 일주일에 한 번은 문을 닫아야 하는데 이때도 안으로 들어가진 못해도 건물을 이용하길 바랐다"며 "계단을 놓아 자연스럽게 앉기도 하고, 전시 설명을 보기도 하며 상호작용이 가능하게 했다"고 말했다.
내부에서는 천장 높이를 조정할 수 있도록 도르래를 설치했다. 전시마다 필요한 공간이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도 천장은 높이 만들었다. 총 높이가 22m인데 4개 층밖에 되지 않는다. 한 층 높이가 7m 정도인 셈이다. 그는 "어떤 종류와 크기의 미디어가 전시돼도 가능하도록 설계적으로 준비를 마쳤다"고 설명했다.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수장고를 갖췄고, 하역장도 넉넉하게 만들었다. 세계적인 수준의 교류전을 염두에 둔 설계다. 그는 "넉넉한 하역장과 수장고가 있다는 것은 좋은 작품을 가져올 수 있다는 뜻이 된다"며 "미술관의 기능과 특성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강영연 기자 yy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