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대법원이 선고한 리얼돌 판결은 선고 후 한 달이 지난 4월에 세상에 알려졌다. 언론은 일제히 ‘리얼돌 수입 허용, 대법원 판결’, ‘리얼돌 수입 6년 재판 끝 합법’ 등의 제목을 달아 보도했다. 2019년 리얼돌 수입통관 보류가 위법하다는 최초의 법원 판단이 나온 후, 대법원이 직접 입장을 밝힌 것이다.
7년만에 나온 판결임에도 대법원은 그간의 사회적 논란을 말끔하게 정리하지 못했다. 오히려 오래된 사회적 논란에 다시 불을 붙였을 뿐이다. 국회전자청원 사이트에는 ‘리얼돌 수입 및 통관 반대에 관한 청원’이 올라왔다. 여성단체는 대법원 앞에서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지난 7년간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리얼돌 논쟁
리얼돌 금지론은 리얼돌을 ‘강간 인형’으로 부른다. 여성의 신체를 극도로 사실적으로 재현한 성욕 해소의 도구로서, 거절도, 협상도, 자의식도 없이 언제나 순종하는 존재를 반복적으로 이용하는 과정에서 여성에 대한 왜곡된 성인식이 형성되고, 이것이 실제 여성 대상 범죄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리얼돌 허용론은 타인에게 직접적 피해를 주지 않는 사적 공간에서의 성적 행위에 국가가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논리를 편다. 오히려 리얼돌이 장애인이나 노인처럼 성적 소외 상태에 있는 사람들에게 유의미한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성욕을 안전하게 해소함으로써 실제 성범죄를 줄이는 대안이 될 수 있다고 한다. 리얼돌의 존재가 실제 범죄로 직결된다는 주장은 실증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반박도 한다.
리얼돌 논쟁에 대한 법원의 입장
관세청은 리얼돌을 풍속을 해치는 음란물로 보고 수입 통관을 보류해왔다. 이에 반발한 수입업자들이 법원에 소송을 냈다.
2019년 서울고등법원은 성행위기구는 필연적으로 사람의 형상을 사실적으로 표현하거나 묘사하는 것을 주된 목적으로 제작되고 사용되는 것이라며, 단순히 외관이 사람을 닮았다는 이유만으로 음란물로 볼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사적이고 은밀한 공간에서 사용되는 이상 국가 개입을 최소화해야 한다고도 했다. 이러한 성기구가 장애인이나 성행위 상대방이 없는 사람에게는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도 했다.
사람들은 법원이 금지론의 주장을 내치고 허용론의 손을 들어준 것으로 받아들였다. 금지론자들은 격렬하게 반발했다. 판결이 나온지 두달도 안 돼 ‘리얼돌 수입 및 판매를 금지해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26만명이 동의했다. 판결이 났으면 유사한 물품도 통관을 허용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국회의원의 질의에 대하여, 관세청장은 국민 정서를 들어 리얼돌에 대한 통관 보류를 계속하겠다고 밝혔다. 리얼돌 수입업자들은 다시 수십 건의 소송 제기로 대응했다.
논란이 가라앉지 않자 이번에는 대법원이 직접 나섰다. 2021년 16세 미만 미성년자의 신체 외관을 본뜬 리얼돌은 성행위기구라 할지라도 음란물에 해당한다는 판결을 내놓은 것이다. 위 대법원 판결이 있은 후 2022년 말에 와서야 관세청은 지침을 개정해 성인 형상의 리얼돌에 대한 수입 통관을 허용했다.
풍속을 해치지는 않지만 집 밖에서 사용한다면 해칠 우려가 있다는 대법원
이번 대법원 판결은 성인 형상의 리얼돌이 풍속을 해치는 음란물은 아니지만, 사적 공간 외에서 사용될 경우 풍속을 해칠 ‘우려’가 있으므로 통관 보류가 가능하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 판단이 논리적으로 말이 되는지는 다음 기회에 이야기하자. ‘우려’가 있는지는 어떻게 판단하는가. 세관공무원이 수입 건건마다 수입 목적·사용 주체·사용될 공간과 환경·사용 방법 및 태양 등을 꼼꼼하게 조사하라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가능한지도 의문이지만, 수입업자들이 소송을 내고 법원만 쳐다보는 과거와 같은 상황이 계속 반복될 것이다. 똑같은 물품을 다른 수입업자는 통관시켜주었는데, 자기는 시켜주지 않는다면 어떤 수입업자가 그것을 받아들이겠는가.
찬반 양론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리얼돌 논쟁에 법원이 한 쪽 편을 들어 참전한 지 7년이 지났음에도 이번 대법원 판결은 논의가 진전된 흔적이 없다. 관세청이 조사를 더 꼼꼼히 했어야 한다는 절차적 지적만이 남았을 뿐이다.
통상법 관점에서 리얼돌 사건은 공공도덕을 이유로 한 수입 제한 사건
차라리 통상법 관점에서 사건을 해결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우리나라도 오래 전 가입해 발효된 관세와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은 각국의 수입 제한을 원칙적으로 금지한다. 공공도덕을 이유로 수입 제한을 하는 것을 허용하지만, 여기에 조건을 붙였다. 그 예외를 쓰려면 자국 내에서도 동일하게 규제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국 내에서는 허용하면서 수입만 막는 것은 부당한 차별이자 위장된 무역 장벽이라는 논리이다.
유럽사법재판소는 1986년 콘게이트 사건(Conegate Ltd v HM Customs & Excise)에서 이러한 법리를 확인했다. 영국이 서독에서 수입되는 리얼돌을 압수했지만, 영국 내에서는 리얼돌 제조와 판매를 부분적으로 허용하고 있었다. 법원은 수입금지 조치가 부당한 차별이라며 수입 금지를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우리나라가 국내의 리얼돌 제조·판매·유통을 직접적으로 규제하지 않는 이상, 리얼돌에 대한 수입통관 보류 조치는 같은 결론이 내려질 가능성이 높다. 법원이 통상법 관점에서 신속히 판결한 후 일찌감치 사회에 공을 넘겼다면 어땠을까? 아마 지금보다는 훨씬 더 사회적 논의가 진전되었을 것이다. 어쩌면 리얼돌에 대한 국내 규제가 입법으로 현실화되었을 수도 있다. 지금의 리얼돌 논쟁은 리얼돌이 음란물인지 아닌지 판단하겠다는 법원만 쳐다보다 7년을 허비한 것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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