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1년 10% 관세 공격한 닉슨
연설서 “일시적 조치”임을 강조
달러협상 성과 거두며 ‘없던 일로’
트럼프는 ‘일시·제한’ 언급 없어
‘10% 기본관세’ 4월부터 발효
법원, “대통령 뭘 할 수 있나보다,
실제 뭘 했는지를 보고 판단해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글로벌 상호 관세를 완전 무효화한 미국 국제무역법원(CIT) 28일(현지시간) 판단이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국가 비상사태를 명분으로 대통령이 발동하는 행정 조치에 대해 미국 법원은 53년만에 지극히 상식적이면서 트럼프 관세 협박을 받아온 나라들 입장에서 획기적인 판단을 내놓은 상황입니다.
매일경제가 국제무역법원의 판결문을 확인해보니 재판부의 판단에는 1971년 사건이 중요하게 자리잡고 있습니다.
당시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10% 신규 관세’를 결정하고 세계 경제를 협박한 사건에서 54년 전의 미국 법원은 대통령 권한을 존중했습니다.
반면 올해 ‘트럼프 상호 관세’ 사건에서 미국 법원은 정반대의 판단을 내놓으며 과거 닉슨 사건과 핵심 차이로 ‘일시적 조치(temporary measure)’ 여부를 꼽고 있습니다.
‘닉슨 대통령 대 요시다 인터내셔널(소송을 낸 업체명)’로 불리는 1971년 사건은 8월 15일 닉슨 미 대통령이 높은 인플레이션과 악화하는 무역 수지를 개선하기 위해 금 태환 제도 폐지 등을 담은 메시지를 발표하며 세계 경제에 충격을 일으켰습니다.
당시 발표에는 트럼프 관세와 동일하게 미국의 비상사태를 근거로 각국 수입품에 대한 신규 10% 수입세 부과 조치가 포함됐습니다.
닉슨 대통령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달러를 보호하고, 국제수지를 개선하며, 미국인 일자리를 늘리기 위해 한 걸음 더 나아가고자 한다. 나는 일시적인 조치로 오늘 미국으로 수입되는 상품에 10%의 추가 세금을 부과한다. 이는 불공정한 환율로 인해 미국 제품이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불공정한 대우가 종료되면 수입세도 종료될 것이다.]
대통령의 발언에서 ‘일시적 조치’라고 분명하게 그 한계가 언급돼 있습니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해방의 날’로 명명된 지난 4월 2일 글로벌 상호관세 부과를 결정하며 해당 조치가 일시적인 조치라는 언급 없이 온통 공포와 협박 발언을 쏟아냈습니다.
54년 전 닉슨 대통령은 ‘일시적 조치’라고 언급한 10% 관세를 실제 5개월이 채 안 되는 기간 동안 발효했습니다. 그해 12월 닉슨 행정부는 금 교환 없이 달러화를 마음대로 찍어내는 초석이 되는 ‘스미소니언 협정’을 끌어내며 목표한 성과를 달성했습니다. 따라서 10% 수입세 부과를 없던 일로 했습니다.
국제무역법원 재판부는 이번 판결문 30페이지에서 두 대통령의 행위 간 중요한 차이점을 이렇게 설시하고 있습니다.
[닉슨 대통령 관세의 제한성은 법원의 판단에 필수적이었다. 닉슨 대통령은 “의회의 의사를 무시하고 요율을 고정하지 았았다”고 언급했다. 당시 법원은 닉슨 대통령이 “일시적인 조치로 제한된 과징금을 부과했다”고 강조하고 있다. 국가 비상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계산된 것과 부과를 하는 것은 상당히 다르다. 당시 법원은 대통령이 무제한 관세 권한을 행사한 사건을 결정한 것이 아니며, “대통령의 행동은 대통령이 실제로 한 일에 비춰 판단해야 한다. 대통령이 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니라 실제로 무엇을 했는지에 비춰 판단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1971년 8월 세계를 상대로 관세 협박을 하면서도 닉슨 대통령은 이를 ‘일시적 조치’라고 강조했고 관세가 아닌 수입세(imported tax)라는 표현을 쓰는 등 의회의 권한을 넘어선 게 아님을 강조했습니다. 당시 법원은 닉슨 대통령의 소위 ‘톤 앤 매너’에서 행정부의 과도한 권한 일탈로 보지 않은 것이죠.
반면 54년이 흘러 동일한 사건 구조와 법적 준거의 틀이 적용되는 트럼프 사건에서 법원은 트럼프 행정부가 지난 4월 2일 상호 관세 발표와 더불어 4월 5일 0시 1분을 기해 ‘10% 기본 관세’를 발효시킨 점에 주목합니다.
트럼프 행정부는 10%를 먼저 발효하고 나머지 미국에 과도한 무역 적자를 안기는 나라들을 상대로 상호 관세(한국 15%)를 낮춰줄지를 두고 포괄적인 무역 협상을 벌이고 있습니다. 일시성과 제한성이 감지되지 않습니다.
“대통령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닌, 실제로 무엇을 했는지를 비춰 판단하라”
이번 판결문에 적시된 54년 전 법원의 표현처럼 1971년 미국 사법부는 닉슨의 관세 엄포(=일시적 조치이자 초단기 이행)를 합법으로, 2025년의 사법부는 트럼프의 관세 엄포(=일시적 조치임이 불분명하며 실제 행동으로도 옮긴)를 위법으로 결정한 것이죠.
미국 ‘해방의 날’로 명명된 4월 2일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 앞마당에서 각국 상호관세율을 적은 판을 소개하며 쏟아낸 발언의 톤 앤 매너는 아래와 같습니다.
[외국 국가들은 마침내 세계에서 가장 큰 시장인 우리 시장에 접근하는 특권에 대한 대가를 지불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지금 세계에서 가장 큰 시장이다. 나는 작년 내내 이 공약 캠페인을 벌였고 오늘 그 약속이 이뤄졌으며 약속을 지켰다. 우리의 상식적인 상호 관세에 반대하는 모든 기업에게 다시 말하다. 상호 관세는 부과된다. 그리고 나는 이런 종류의 상호주의를 호혜적이라고 부른다. 친절한 상호주의다. 만약 그들이 불만을 제기한다면, 관세율이 0이 되기를 원한다면 바로 이곳 미국에서 제품을 생산하면 된다. 미국에서 공장을 짓고 제품을 생산하면 관세가 부과되지 않는다.]
마이클 맥코넬 미 스탠퍼드대 로스쿨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의 이런 주고받기식 접근이 국가 비상 사태와 함께 발동되는 수입 규제 매커니즘의 법적 타당성을 스스로 반박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고 꼬집습니다.
반대로 브레턴우즈 2.0 시대의 문을 연 1971년 8월 닉슨 대통령의 야만적 연설은 트럼프 대통령의 연설에 비해 겸손해 보일 정도입니다. 우아한 위선과 정직한 야만의 차이일까요, 그 이상으로 트럼프 관세 정책은 야만을 넘어선 광기일까요.
54년 전 닉슨 연설로 기사를 갈무리합니다.
[지난 7년 동안 매년 평균 한 차례씩 국제 통화 위기가 발생했다. 누가 이러한 위기로부터 이익을 얻나. 노동자도, 투자자도, 진정한 부의 생산자도 아니다. 이득을 보는 사람들은 바로 국제 금융 투기꾼이다. 나는 재무 장관에게 달러화를 방어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취하라고 지시했다. 미국 달러의 전환을 일시적으로 중단하라고 나는 지시했다. 통화 안정성을 위해 그리고 미국의 국익에 가장 부합하는 것으로 판단되는 금액과 조건에서다. 이 조치의 효과는 달러 안정화다. 물론 이번 조치로 국제 금융 거래자들 사이에서 우군을 얻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주된 관심사는 미국 노동자와 전 세계의 공정한 경쟁이다. 미국은 항상 미래지향적이고 신뢰할 수 있는 무역 파트너였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안정과 동등한 대우는 모두에게 최선의 이익이다. 나는 미국 달러가 다시는 국제 투기꾼들의 손에 인질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결심했다. 나는 달러를 보호하고, 국제수지를 개선하며, 미국인의 일자리를 늘리기 위해 한 걸음 더 나아가고자 한다. 일시적인 조치로 오늘 미국으로 수입되는 상품에 대해 10%의 추가 세금(imported tax)을 부과한다. 이는 수입량을 직접 통제하는 것보다 국제 무역을 위한 더 나은 해결책이다. 이 수입세는 일시적인 조치다. 다른 국가를 겨냥한 것이 아니다. 불공정한 환율로 인해 미국 제품이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하기 위한 조치이며 불공정 대우가 종료되면 수입세는 부과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