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증시가 기술주를 중심으로 급락하자 가치주 상장지수펀드(ETF)에 돈이 몰리고 있다. 가치주 ETF들은 올들어 미국 기술주 ETF가 두 자릿수대 하락율을 보이는 동안 탄탄한 주가 방어력을 보여줬다.
22일 ETF닷컴에 따르면 미국 증시에 상장된 ’뱅가드 밸류‘(VTV)에 올해 들어 64억5780만달러(약 9조4781억원)이 순유입됐다. 지난해 1년 동안 이 ETF에 유입된 자금이 81억7000만달러인데 약 80%에 달하는 금액이 3개월여 만에 들어온 것이다. 특히 증시 변동성이 커진 이번달(40억5820만달러)에 자금 유입이 집중됐다. 지난달(12억6000만달러) 대비 순유입액 규모가 6배 늘어났다. 지난 19일에는 하루 동안에만 25억4270만달러가 유입돼며 작년 9월 18일 이후 하루 기준 최대 순유입액을 기록했다.
가치주 ETF에 뭉칫돈이 몰린 것은 시장이 급락하는 와중에도 높은 주가 방어력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VTV는 벅셔해서웨이 클래스B, JP모간체이스, 엑손모빌 등 주요 가치주에 투자하는 ETF로, 올들어 지난 20일까지 2.43% 올랐다. 같은 기간 S&P500지수(-3.7%)와 나스닥100지수(-6.4%)는 하락했다.
‘투자의 대가’ 워런 버핏이 이끄는 벅셔해서웨이 클래스B는 이 기간 16.65% 오르며 기술주를 압도했다. 테슬라, 애플 등 주요 기술주인 매그니피센트(M7)을 담은 ’라운드힐 매그니피센트7‘(MAGS) ETF는 15.42% 내렸다.
벅셔해서웨이는 현금성 자산 규모를 1년 만에 두 배로 늘렸다. 지난해 4분기 재무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말 현금 보유액은 3342억달러로 역대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일각에서는 버핏이 약세장에 대비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한다.
증권가에서는 시장 변동성이 커진 만큼 당분간 비교적 방어적 성격을 띄는 가치주 ETF에 자금이 몰릴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해 기술주가 급등하면서 밸류에이션(실적 대비 주가수준)이 지나치게 높아진 반면 가치주는 아직 상승 여력이 남아있다는 것이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전쟁으로 경기 침체 우려가 나오는 등 불확실성은 여전한 상황”이라며 ”경기 방어적 성격을 띄는 가치주나 저변동 고배당주 등에 자산을 배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최근 대체로 부진한 기술주 테마형 ETF 중에서는 소프트웨어 ETF가 선방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 오라클 등 주요 소프트웨어 종목을 담은 ‘아이셰어즈 익스팬디드 테크-소프트웨어 섹터’(IGV)에 올해 들어 19억8220만달러가 순유입됐다. 반도체 관련 ETF 중 순자산 규모가 가장 큰 상품인 ‘반에크 세미컨덕터’(SMH)에서 같은 기간 10억9310만달러가 빠져나간 것과 대비된다.
맹진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