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사람이라고 해서 개개인의 지능이나 능력이 현대인에 비해 떨어진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축적된 지식·자본·시스템이 부족했을 뿐, 탁월한 실력으로 지금 봐도 감탄이 나올 정도의 결과물을 만들어낸 사례가 적지 않다. 1500년 이상 전에 제작된 삼국시대 금속공예품들이 단적인 예다. 화려함과 정교함으로 보는 이의 경탄을 자아내는 이 유물들은 최고의 장인이 만든 당시 첨단기술의 결정체다.
충남 공주 국립공주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상상의 동물사전-백제의 용(龍)’은 백제시대 금속공예의 정수를 만날 수 있는 전시다. 국보 6점과 보물 7점을 비롯해 총 174점에 이르는 유물이 나와 있다. 주제는 백제시대의 용 문양 금속공예. 용은 당시 왕족을 비롯한 지배층이 즐겨 쓴 문양이었다. 나선민 국립공주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옛사람들은 자연 현상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용이라는 존재를 만들어내고 신과 비슷한 존재로 여겼다”고 설명했다.
전시장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무령왕릉에서 나온 용 문양 유물이다. 칼자루 끝에 있는 고리 안에 두 마리 용과 용 머리가 장식돼 있는 ‘용봉황무늬 고리자루 큰칼’(사진)은 너무나도 정교해 출토 당시 학계 일각에서 “당시 선진국이었던 중국(양나라)에서 들여온 게 아니냐”는 말이 나왔을 정도다. 훗날 연구를 통해 백제의 자체 기술로 제작됐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무령왕비의 팔찌이자 발톱이 셋 달린 용이 묘사된 ‘글자를 새긴 용무늬 은팔찌’도 눈여겨볼 만하다. ‘경자년 2월 다리라는 사람이 대부인용으로 은 230주를 들여 만들었다’는 문구가 한자로 새겨져 있다. 이정근 국립공주박물관장은 “최고 권력자를 상징하는 용이 여성의 장신구에서 발견된 드문 사례”라며 “팔찌를 제작한 연대와 만든 사람의 이름을 밝혀놓은 삼국시대의 유일한 팔찌”라고 말했다. 전시는 내년 2월 9일까지.
공주=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