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관세정책 어디로
美법원 판결에 즉시 항소
연방대법원은 親트럼프 성향
상호관세 최종 무력화돼도
다른법으로 관세부과 가능성
◆ 트럼프 관세 충격 ◆
미국 연방국제통상법원이 28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세계 각국을 상대로 부과한 상호관세가 무효라고 판단하면서 일단 관세 정책에 제동이 걸렸다.
트럼프 행정부 입장에선 한창 진행 중인 관세 협상의 동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달 상호관세 발표 이후 18개국과 집중 협상을 벌이고 있고, 협상 타결에 압박을 가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일단 브레이크가 걸렸지만 백악관이 법원을 향해 맹비난을 쏟아내며 즉각 항소에 나서는 등 관세 정책을 포기할 의사가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면서 '상황 종료'라고 판단하기에는 이르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스티븐 밀러 백악관 정책담당 부비서실장이 판결이 나온 직후 자신의 SNS 엑스 계정에 "사법 쿠데타가 통제 불능 상태에 이르렀다"고 적었을 정도다.
연방국제통상법원이 10일 이내에 관세 부과를 중단하는 데 필요한 행정명령을 내릴 것을 요구한 가운데 트럼프 행정부는 즉각 항소하면서 최종적인 결론은 연방대법원이 내릴 것으로 관측된다. 현재 대법원은 6대3의 보수 우위로 구성돼 친(親)트럼프 성향이 강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미국 언론에서는 이 과정이 몇 주 내에 이뤄질 수 있다고 예측하고 있다.
주목되는 것은 트럼프 행정부가 이번에 문제가 된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 적용 대신 다른 법령이나 수단을 활용해 관세를 부과할 가능성도 있다는 점이다. 상대적으로 시일이 소요되지만 국가안보를 이유로 관세를 부과할 때 쓰이는 무역확장법 232조나 무역법 301조가 '무기'로 활용될 수 있다. 또 미국과의 교역에서 부당한 조처를 한 국가에 최고 50% 관세를 물릴 수 있도록 한 관세법 338조, 무역적자에 대응해 15% 이하의 관세를 150일간 부과할 수 있는 무역법 122조도 있다. 결국 관세 협상 불확실성은 커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난 8일 미국과 관세 협상을 타결한 영국 사례가 관심을 끌고 있다. 영국은 기본관세 10%를 유지하되 철강·알루미늄에 대한 관세를 철폐하기로 했고, 자동차에 대해서도 인하된 관세(10%)를 적용하기로 했다. 이번 판결에 따르면 영국은 기본관세 10%는 부담하지 않아도 된다.
미국 법원의 이번 판결과 관련해 허융첸 중국 상무부 대변인은 29일 브리핑에서 "중국은 미국이 국제사회의 이성적인 목소리를 직시해 일방적인 관세 부과라는 잘못된 관행을 완전히 철회할 것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한편 연방국제통상법원은 이날 IEEPA를 적용한 관세 부과는 대통령에게 부여한 권한을 넘어서기 때문에 무효라고 판단했다. 관세 부과 권한이 의회에 있다고 헌법에 명시돼 있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IEEPA를 자의적으로 확대 해석해 의회의 의결을 거치지 않았다는 취지다. 또 트럼프 대통령은 상호관세를 부과하면서 무역적자를 내세워 미국 경제가 '비상사태'라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미국의 무역적자는 지난 수십 년간 지속돼온 만성적인 문제였고, 최근 들어 갑작스럽게 크게 악화한 것도 아니라고 판단했다.
IEEPA는 트럼프 대통령이 전 세계를 상대로 벌인 관세전쟁에서 '전가의 보도'처럼 쓰여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합성마약 '펜타닐' 유입 문제를 제기하며 지난 2월 캐나다·멕시코에 부과했던 25% 관세, 한때 145%까지 달했던 대(對)중국 관세, 한국(25%) 등 사실상 모든 교역 상대국을 대상으로 부과하기로 한 상호관세에도 이 법을 근거로 썼다.
[워싱턴 최승진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