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27일 GS아트센터 개관공연
ABT 동료들 100여 명과 내한
“미국서 충격받을 정도로 좋았던
작품들 선보여...한국 반응도 궁금”
“후배 발레리노들 성장 무섭고 뿌듯
은퇴전 안해본 전막 없이 다 해볼것”
뼈가 부러진 큰 부상도 고국 무대는 막지 못했다. ‘발레계 할리우드’라 불리는 미국 최고의 발레단 아메리칸 발레 시어터(ABT)의 한국인 최초 남성 수석무용수 안주원(32)이 동료들과 함께 24일 한국 무대에 선다. 지난 2014년 입단 이래 발레단과 함께하는 내한은 이번이 처음이란다. 매일경제와 서면 인터뷰로 먼저 만난 안주원은 “지난해 8월 발뼈가 부러지는 사고를 당해 한동안 발레를 못했다”며 “지금도 완전히 낫지는 않았지만 제 발레단과 함께하는 한국 투어에 꼭 같이 오고 싶어서 복귀를 서둘렀다”고 근황을 전했다. 그는 “ABT를 다니면서 한국 투어 갈 일은 없을 수도 있겠다 싶었는데 기회가 생겨 너무 좋다. 자주 오고 싶다”며 설레어 했다.
ABT의 정식 내한은 13년 만이다. GS아트센터 정식 개관을 기념해 24~27일 매일 다른 프로그램을 선보인다. 지난해 ABT의 또 다른 한국인 발레리노, 솔리스트 한성우를 주축으로 일부 무용수의 내한 갈라 공연이 있었지만 이번엔 16명의 수석 무용수를 포함해 단원 총 104명이 대거 한국에 온다. 국내 발레 애호가들에게 익숙한 고전 발레부터, 현대 발레계의 첨단에 있는 컨템포러리 작품까지 다채롭다. 특히 컨템포러리 레퍼토리가 이색적이다. 공연을 기획한 GS아트센터의 규모상 전막 발레를 무대에 올리기 힘들다는 현실적 이유도 있었지만, 20세기 이후 미국 발레 황금기를 상징하는 작품들로 꾸며진다는 점은 또 다른 관전 포인트다.
안주원도 “미국에서 지내면서 봤던 작품 중 충격을 받을 정도로 좋아했던 작품들을 한국에서 선보인다는 말을 듣고 설렜다”며 “한국에서는 보기 힘든 형태의 발레라 관객 반응이 어떨지도 궁금하다”고 했다. 그의 추천작은 단연 미국 현대무용 안무가 트와일라 타프와 작곡가 필립 글래스의 협업작 ‘인 디 어퍼 룸’(1986)이다. “제가 미국에 와서 해본 작품 중 가장 미국스럽고 멋있는 발레 작품”이라며 “꼭 보시길 추천드린다”고 했다. 아쉽게도 부상 여파로 그가 직접 연기하는 현대 무용을 보긴 어렵지만, 그는 24일 고전 ‘돈키호테’ 중 그랑파드되 무대로 관객과 만날 예정이다.
이 밖에도 ABT는 1948년 세계 초연한 조지 발란친의 ‘주제와 변주’부터 지난해 신작인 ‘머큐리얼 손’까지 선보인다. ‘주제와 변주’는 차이콥스키의 선율과 함께 러시아 황실발레를 보여준다. 반면 ‘머큐리얼 손’은 현대 안무가 카일 에이브러햄이 전자 음악 리듬을 배경으로 고전 발레 동작과 자유로운 몸짓을 조화시켜 무용수들의 개성을 드러낸다.
작품뿐 아니라 개성 있는 무용수 면면은 ABT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다. 2012년 서희, 2015년 미스티 코플랜드 등 70여 년 역사 속 유리 천장을 깨고 동양인, 흑인을 수석으로 발탁해왔다. 안주원은 서희 이후로 8년 만인 지난 2020년 수석으로 승급했다. 그는 “인종과 국적에 있어선 정말 다양하게 섞여 있고 서로 편견도 없다”며 “오히려 발레단은 춤에 대한 내 편견을 깨줬다”고 말했다. “한국에선 클래식 발레로만 교육을 받다보니 제게 ‘춤=발레’였어요. 그런데 ABT에 와서는 현대무용, 컨템포러리 발레 등 다른 춤을 추는 비중이 더 클 때도 있죠. 그럴 때마다 ‘무용수’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춤 자체를 잘 추는 미국·남미 단원들을 보면서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발레 기술만 잘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더라고요.”
선화예고, 한국예술종합학교를 졸업한 그는 중학교 1학년 때 ‘발레를 배우면 키가 커진다’는 말을 듣고 발레를 시작한 일화로도 유명하다. 보통 미취학 시기부터 조기 교육을 하는 엘리트 교육과 달리, 이모가 운영하던 발레 학원에 놀러 가듯 다니며 발레를 익혔다. 지금도 그때를 “운이 좋았다”고 회고한다.
이제는 10살 넘게 차이 나는 발레리노 후배들이 세계 무대에서 주목받고 있다. 특히 올해 전민철(21)의 러시아 명문 마린스키 입단, 박윤재(17)의 스위스 로잔 콩쿠르 우승 등 발레리노 활약상이 두드러졌다. 안주원은 “미국에서도 기사로 소식을 접하는데, 제가 알기도 전에 발레단 동료들이 먼저 와서 영상을 보여주고 ‘너무 잘한다’ ‘아는 사람이냐’고 묻더라”며 “너무 뿌듯하다”고 말했다. “해외에서 한국인 발레리노는 이미 제 전 세대 선배들부터 안정적인 테크닉과 실력을 인정받고 있어요. 거기다 맡은 공연을 어떻게든 해내려고 하는 강한 면모와 책임감이 발레단 생활에서 중요하게 받아들여지죠.”
그는 “요즘 친구들 보면 유전자가 진화한 건지 발레 자체를 너무 잘한다”며 “무섭다”는 너스레도 떨었다. 그러면서도 “아직 안 해 본 전막 발레도 전부 해보고 은퇴하는 게 개인적인 바람”이라며 무용수로서의 포부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