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우주대스타’ 기민이와 함께 공연한다고 단원들에게 자랑하고 왔어요.” (박세은)
“어릴 때부터 세은 누나를 따라다니며 같이 춤추자고 했는데요. 그런 누나와 14년 만에 한 무대에서 다시 만나 기뻐요.” (김기민)
국립발레단 ‘라 바야데르’ 주역을 맡은 파리 오페라 발레 에투알 박세은(왼쪽), 마린스키 발레단 수석무용수 김기민이 27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인터뷰를 한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국립발레단) |
27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만난 발레리나 박세은(35), 발레리노 김기민(32)의 표정에선 미소가 사라지지 않았다. 두 사람은 각각 프랑스 파리 오페라 발레 에투알(최고무용수), 러시아 마린스키 발레단 수석무용수로 활동 중인 발레 스타다. 두 사람은 31일부터 11월 3일까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연하는 국립발레단 ‘라 바야데르’에서 객원 주역으로 호흡을 맞춘다. 11월 1일과 3일 공연에 함께 출연한다.
세계 최정상급 발레단 간판스타인 박세은, 김기민이 파트너로 한 무대에 서는 것은 무려 14년만. 두 사람은 2009년 국립발레단 ‘백조의 호수’ 주역으로 처음 호흡을 맞췄고, 2010년 한국발레협회 ‘돈키호테’, 유니버설발레단 ‘라 바야데르’까지 세 차례에 걸쳐 파트너로 춤을 췄다. 이번 ‘라 바야데르’는 첫 주역 데뷔 기회를 마련해준 국립발레단에서의 재회 무대로 두 사람에 더욱 의미가 크다. 박세은은 “기민이가 나온다고 해서 다른 일도 마다하고 왔다”고 말했고, 김기민도 “저 역시 누나와 함께 춤을 추는 게 좋다”고 답했다.
국립발레단 ‘라 바야데르’ 주역을 맡은 파리 오페라 발레 에투알 박세은(왼쪽), 마린스키 발레단 수석무용수 김기민이 27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국립발레단) |
박세은, 김기민은 공통점이 많다. 두 사람 모두 예원학교와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을 나왔다. 파리 오페라 발레, 마린스키 발레단에 입단한 해도 2011년으로 똑같다. 김기민은 2015년 수석 무용수에 올랐고, 박세은은 2021년 파리 오페라 발레 에투알로 승급했다. 모두 동양인 무용수 최초 기록이다. 무용계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브누아 드 라 당스에서 최고 여성무용수상(2018년 박세은), 최고 남성무용수상(2016년 김기민)도 각각 수상했다.
14년 만의 재회를 누구보다 기다려온 사람 또한 박세은, 김기민이다. 박세은은 “어제 기민이와 통화를 하며 작품에 대한 해석을 물어봤는데, 기민이가 ‘누나, 그건 느낌을 봐야 할 것 같아’라고 답해 놀랐다”며 “기민이가 작품을 어떻게 느끼는 대로 해석할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김기민은 “14년 전 누나와 같이 춤을 출 때는 많이 싸웠는데, 이제는 누나의 춤 스타일을 잘 알기 때문에 편안하게 춤을 추고 싶다”며 “연습 과정에서 의견 충돌도 있을 수 있겠지만 누나와의 충돌은 오히려 작품에 있어 좋은 방향이 될 것이다”라며 웃었다.
국립발레단 ‘라 바야데르’ 주역을 맡은 파리 오페라 발레 에투알 박세은(오른쪽), 마린스키 발레단 수석무용수 김기민이 27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인터뷰를 한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국립발레단) |
고국을 떠나 활동하며 서로 많은 힘이 돼줬다. 김기민이 2015년 부상을 당한 상태에서 파리 오페라 발레 ‘라 바야데르’에 객원으로 출연했을 때, 누구보다 박세은이 김기민을 물심양면으로 챙겨줬다. 김기민은 “제 경력에서 가장 심각한 부상이었는데 누나가 매일 약을 사주면서 정말 많이 신경을 써줬다”고 회상했다. 박세은은 “그때 기민이의 춤은 숨 막힐 정도로 상상 이상이었다”며 “단원들이 기민이의 영상을 반복해서 보며 ‘부상인데 어떻게 이렇게 춤을 추지’라고 말하던 기억이 생생하다”고 덧붙였다.
박세은, 김기민의 뒤를 이어 많은 한국 무용수가 외국으로 활동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그런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을 묻자 두 사람은 “후배들에게 답을 주고 싶지는 않다”고 입을 모았다. “예술은 답이 없다”는 생각에서다. 박세은, 김기민은 “후배들은 이미 너무 잘하고 있다”며 “후배들의 힘든 이야기를 들어주면서 그들이 하나의 꿈만 갖지 않게 하는 것이 선배로서의 할 일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